어린이 주일 설교 모음
어린이 주일 설교 모음
어린이 주일에 설교할 수 있는 다양한 설교 주제와 설교문입니다. 어린이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러한 주제들을 가지고 접급하면 좀더 은혜롭고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가정의 달의 첫 주이자 어린이 주일인 5월 첫 주일 설교를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를 사랑하셨어요
– 마태복음 19장 14절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서 특별히 의미 있는 날입니다. 어린이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가장 순수한 생명, 가장 투명한 눈망울을 가진 존재들을 기리며,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바라보게 하시는 날입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내일이며, 동시에 오늘의 축복입니다. 그들을 축복하는 것은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주님께서 어린이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셨는지를 함께 묵상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19장 14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19:14). 이 말씀은 단순한 권면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명령이며,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제시하는 말씀입니다.
어린이는 하나님 나라의 거울입니다 (마태복음 19:14)
예수님께서 아이들을 천국의 모델로 삼으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어린이의 순수함, 그들의 신뢰, 그리고 가식 없는 정직함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단지 어린이에게 자격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어린이와 같은 심령, 그 겸손하고 투명한 마음이 천국의 본질이라는 뜻입니다.
어린이는 거울과 같습니다. 그들의 말과 행동 속에는 우리 어른들이 잊어버린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어른들은 상황에 따라 감정을 숨기고, 말을 포장하지만, 아이들은 마음속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합니다. 그들의 눈동자는 거짓을 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천국의 모형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천국은 완전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상처입은 이들이 치유받고, 겸손한 자가 높아지며, 마음이 가난한 이가 위로받는 곳입니다. 그런 점에서 어린이는 이미 천국을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교훈보다 사랑에 반응하며, 논리보다 진심에 감동합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삶의 본질이 그들에게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를 중심에 두셨습니다 (마태복음 19:14)
복음서 속 장면을 떠올려 보십시오. 제자들이 중요한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아이들이 예수님께 달려옵니다. 제자들은 그들을 막습니다. ‘지금은 어른들의 시간’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 반대였습니다. “그들을 용납하라, 금하지 말라”고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아이들을 주변이 아니라 중심에 두셨습니다. 세상은 강자를 중심에 둡니다. 지식 있는 자, 권력 있는 자, 성공한 자가 중심에 설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장 작고, 가장 연약한 자를 하나님의 관심의 중심으로 옮기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윤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구조 자체를 드러내는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아이들의 머리에 손을 얹으시고 축복하셨다는 것은 단순한 제스처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임재, 하나님의 인정을 상징하는 장면입니다. 그 한 명 한 명의 이마에 손을 얹으시며, 예수님은 하늘의 시선을 이 땅 위에 찍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가장 먼저 아이들을 품고 축복하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19:14)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조건적인 사랑에 익숙해집니다. 잘해야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전혀 다른 방식입니다. 예수님은 아이들이 무엇을 하든,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사랑하셨습니다.
아이들은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사랑받아야 합니다.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단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십니다. 우리의 존재가 이미 사랑받을 이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이들이 오기만 해도 기뻐하셨고, 안아주시고, 축복하셨습니다. 그 안에는 조건도, 전제도 없었습니다.
그 사랑은 일방적입니다. 먼저 주어지는 사랑, 변함없는 사랑, 기다려주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랑을 통해 복음이 무엇인지 다시 배우게 됩니다. 복음은 단지 교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고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우리가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그들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평생 그들의 신앙의 뿌리가 될 것입니다.
아이들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시편 127:3)
시편 127편 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아이들은 단지 자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유산이며,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맡기신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이들을 맡기셨다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통해 하나님을 배우고,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라는 부르심입니다. 아이는 소유물이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외함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그들을 길러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아이들은 단순한 프로그램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들은 신앙의 동역자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이뤄가는 공동체의 일원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미래의 주인공’이라 말하지만, 사실 그들은 ‘오늘의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복음을 배우며,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귀하게 여깁시다. 그들의 기도를 무시하지 맙시다. 어린아이의 입술에서 나오는 찬양이 하늘 보좌를 흔든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시편 8:2). 그들의 웃음은 교회의 빛이고, 그들의 질문은 진리를 향한 본능이며, 그들의 존재는 하나님 나라의 확증입니다.
마무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마태복음 19장 14절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마음, 그 깊고 넓은 사랑을 다시금 발견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이 말씀은 단순한 조언이 아닙니다. 주님의 가슴에서 흘러나온 외침이며, 우리가 반드시 붙들어야 할 교회의 사명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어떤 자세로 어린이를 대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이들은 교회의 끝자락이 아니라, 심장이어야 합니다. 그들을 품을 때, 우리는 천국을 품는 것입니다. 그들을 사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진실하게 실천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향한 우리의 태도는 곧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태도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아이들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오길 원하십니다. 가식 없이, 계산 없이, 순전한 마음으로 그분을 바라보길 원하십니다. 그렇게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어린이 주일에, 다시 결단합시다. 아이들을 품고,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신앙 여정을 함께 걸어주는 공동체가 되기로. 그리고 그들을 통해 다시 배우기로. 하나님 나라의 진실한 표정을, 그 순전하고 깨끗한 심령 속에서.
예수님은 어린이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사랑하십니다. 우리도 그 사랑으로 아이들을 축복하며, 함께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복된 교회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예수님은 어린이를 사랑하셨어요
– 마태복음 19장 14절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예배당 안을 가득 채운 천사 같은 아이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귀하고 거룩한 생명, 그 한 명 한 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이들의 맑은 웃음과 투명한 눈동자 속에서 우리는 천국의 기운을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런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깊이 묵상해보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19장 14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19:14). 짧은 한 구절이지만, 이 말씀에는 예수님의 마음,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 그리고 우리 교회의 사명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어린이를 귀엽게 여기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하나님 나라의 본보기로 삼으셨습니다. 그들의 심령 안에 깃든 순전함, 그들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깊은 기쁨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어린이는 하나님의 거울입니다 (마태복음 19:14)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여러분, 이 말은 단순히 어린이들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들의 존재 방식, 그들의 순수하고 열린 심령, 그리고 신뢰하는 태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보셨습니다.
어린이는 거울입니다. 그 거울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잃어버린 천국의 얼굴을 다시 봅니다. 어린이의 눈에는 욕심보다 감사가 먼저이고, 계산보다 정직이 앞서며, 두려움보다는 신뢰가 깊습니다. 이런 마음이 천국을 이루는 토양입니다.
주님은 어린이를 가까이 하시고, 그들 안에 깃든 천국의 향기를 깊이 들이마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아이들을 대할 때, 단순한 양육의 대상이 아닌, 하나님의 얼굴을 비추는 존재로 존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이들을 진심으로 품으셨습니다 (마태복음 19:14)
복음서 곳곳에서 예수님은 아이들과 눈을 맞추시고, 그들을 안으시고, 축복하셨습니다. 당시 사회는 아이들을 미성숙하고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여겼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을 품에 안으시고 “하나님 나라가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 장면을 떠올려 보십시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고, 제자들이 분주히 예수님을 보호하고 있을 때, 아이들이 다가옵니다. 제자들은 “아이들은 지금 오면 안 돼”라고 막았지만, 예수님은 그 반대였습니다.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금하다’는 말은 단순히 막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제한하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단호히 거부하셨습니다.
아이들을 축복하시는 주님의 손길, 그것은 가벼운 제스처가 아닙니다. 하늘의 문을 여는 손길이며, 하나님의 관심이 가장 낮은 곳을 향하고 있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 같은 사람의 것입니다 (마태복음 19:14)
천국은 누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까? 그것은 높은 자가 아니라, 자신을 낮추는 자의 것입니다. 계산이 빠른 자가 아니라, 믿음으로 순수하게 나아가는 자의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이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아이들은 믿음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열쇠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열쇠는 단순함이고, 진실함이며, 의존함입니다. 어른들이 잃어버린 그 열쇠를, 아이들은 여전히 손에 쥐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아이들을 훈련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이들을 통해 배워야 하는 학교입니다. 그들의 말 속에서, 그들의 기도 속에서, 그들의 눈물 속에서 우리는 천국의 언어를 다시 배웁니다.
아이는 축복이 아니라 사명입니다 (시편 127:3)
시편 127편 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아이들은 우리가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기업입니다. 하나님의 유산이요,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아이들을 축복하셨고, 우리는 그 축복을 이어갈 사람들입니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교회에서는 공동체 전체가 함께 이 사명을 짊어져야 합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세상의 기준보다 먼저 하나님의 시선으로 사랑받고, 인정받고,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교회의 ‘내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늘’입니다. 그들의 예배, 그들의 기도, 그들의 찬양은 오늘 이 교회를 밝히는 빛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이들을 축복한다는 것은, 교회의 미래를 세우는 동시에 오늘의 예배를 온전하게 드리는 행위입니다.
마무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아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사랑하셨고, 그 사랑은 천국의 구조를 다시 그리시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분은 가장 작고 연약한 자들을 품으시며, 하나님 나라가 그런 자들의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9:14).
이제 우리가 그 사랑을 이어받을 차례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교회 안에서 진심으로 사랑받고, 존중받고, 하나님의 기쁨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고 헌신합시다. 그리고 우리 어른들도 그 아이들처럼 순수한 믿음으로, 열린 마음으로, 천국을 향해 다시 걸어가기를 결단합시다.
예수님은 지금도 어린이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 모두를 향한 사랑의 축소판이자, 하나님 나라의 본질입니다. 그 사랑 안에서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하나님은 너의 이름을 기억하세요
– 이사야 49장 16절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자라가는 우리 아이들을 축복하며,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약속을 함께 되새기는 날입니다. 아이들이란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심어주신 희망의 씨앗이며, 내일의 교회이고, 오늘의 기쁨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은 이사야 49장 16절입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이사야 49:16). 이 구절은 바벨론 포로 시절, 절망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그분은 결코 그 백성을 잊지 않으신다고, 그들의 이름을 자기 손바닥에 새기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특히 우리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용기를 주는지 함께 묵상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너의 이름을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 그것은 단지 “잊지 않는다”는 말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지키시고 사랑하신다는 약속이며, 존재의 존귀함에 대한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 사랑입니다 (이사야 49:16)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생각해 보십시오. 단순히 “내가 너를 기억한다”가 아니라, “내 손바닥에 새겼다”는 것입니다. 이건 메모지에 적은 것이 아닙니다. 지워질 수도, 바뀔 수도 없는 기억입니다. 하나님의 피부에 새긴 기억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쉽게 잊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약속도 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생채기로 새긴 사랑입니다. 마치 조각칼로 새기듯, 예수님의 손바닥에는 못 자국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 손바닥은 십자가의 흔적이며, 바로 그 사랑이 우리 이름을 지워지지 않게 새기신 증거입니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너를 잊지 않으셔. 네 이름은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져 있어.” 얼마나 든든한 말입니까? 세상이 외면할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이것이 복음의 힘입니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닙니다 (이사야 43:1)
이사야 43장 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사야 43:1). 성경에서 이름은 단지 부르는 호칭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체성이고, 존재의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름을 부르신다는 것은 그 존재 자체를 깊이 알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어린아이들의 이름을 지을 때, 부모들은 얼마나 기도하며 정성을 들입니까? 한 자 한 자에 사랑과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이름을 알고 계시고, 그 이름을 부르십니다. 그 이름에는 단지 ‘소리’가 아니라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실 때는 그냥 “야” 하고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내 딸아” 하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 이름에는 축복과 소명이 담겨 있고, 그 부름에는 하나님의 기대와 기쁨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그 이름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줘야 합니다. 그 이름은 세상에서 불려지는 단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부르시는 영혼의 이름이라는 사실을요.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이사야 49:16)
본문 후반부를 다시 봅시다.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성벽은 공동체의 상징이자, 보호의 대상입니다. 이 말씀은 단지 ‘기억’하는 정도가 아니라, ‘항상 주목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눈을 떼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의 시선에서 멀어진 듯 느낄 때가 있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아이들은 누군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엄마 아빠가 운동회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 발표회 때 눈을 맞춰준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아이는 힘을 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늘 우리를 바라보신다고 하신다면, 얼마나 큰 위로입니까?
하나님은 단 한순간도 시선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잘할 때만이 아닙니다. 넘어질 때도, 실수할 때도, 울 때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그분의 시선은 비난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교정이 아니라 위로입니다.
아이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될 때, 세상에서 어떤 위기와 혼란이 와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일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바닥은 생명을 감싸는 손입니다 (요한복음 10:28)
요한복음 10장 28절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하나님의 손은 기억의 손일 뿐 아니라, 보호의 손입니다. 아이를 낳은 어머니가 그 작은 손을 감싸듯, 하나님은 우리를 손바닥으로 덮어 보호하십니다.
그 손은 창조의 손입니다. 흙으로 사람을 빚으신 손, 바람을 멈추신 손, 눈 먼 자의 눈을 여신 손. 그 손이 지금도 우리를 덮고 계십니다. 아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손은 연약함을 덮는 담요 같고, 어둠 속에서 빛을 감싸는 등불 같고, 거친 세상에서 길을 안내하는 목자의 지팡이 같습니다.
우리는 그 손 안에서 안식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가며 여러 불안과 두려움을 마주할 때, “하나님이 너를 손으로 감싸고 계셔”라는 진리를 붙잡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손이 있기에, 우리는 안전하고 평안한 것입니다.
마무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사야 49장 16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기억하시고, 어떻게 바라보시며, 어떻게 보호하시는지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잊지 않으시고, 그 이름을 손바닥에 새기셨습니다. 그 손은 사랑의 상징이며, 지워지지 않는 언약의 자리입니다.
이 어린이 주일, 우리 아이들에게 꼭 전해줍시다. “하나님은 네 이름을 알고 계셔. 너는 잊힌 존재가 아니라, 기억된 존재야.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귀한 생명이야.” 그리고 우리 어른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진 존재입니다.
아이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그들이 자라며 세상의 평가가 아닌, 하나님의 기억 안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이름이 불릴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이 떠오르도록. 그 이름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도록.
하나님은 너의 이름을 기억하세요. 이보다 더 놀라운 복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 사랑 안에서 오늘도 우리 모두가 살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에 숨겨야 해요
– 시편 119편 11절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우리 사랑스러운 아이들,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귀한 날, 어린이 주일입니다. 이 시간은 단지 아이들을 축복하는 시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다시 배우고, 그 순수한 마음을 되찾는 복된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어린 생명들 속에 얼마나 크고 놀라운 뜻이 담겨 있는지, 오늘도 우리는 그 진리를 함께 나누려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은 시편 119편 11절 말씀입니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시편 119:11).
이 말씀은 단순한 암송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생명을 지키는 길, 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 그리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가장 확실한 통로에 대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둔다’는 이 표현, 여기에는 깊고도 풍성한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말씀은 마음의 보물입니다 (시편 119:11)
‘마음에 둔다’는 이 말은, 원어적으로 보면 ‘숨기다’, ‘감추다’라는 뜻도 포함합니다. 여러분, 사람은 가장 소중한 것을 감추어 둡니다. 금은보화를 깊이 묻어두듯,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그 사람과의 추억을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하듯, 하나님의 말씀은 그토록 귀하고 신성한 보물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살아가는 길에서 가장 강력한 나침반입니다. 삶의 어두운 골목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인도해주는 등불입니다. 그래서 이 보물은 책장에만 있어선 안 되고, 머리로만 외워서는 안 됩니다. 그 말씀은 반드시 ‘마음’에 숨겨져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라는 금고 안에 넣어두고, 그 말씀을 꺼내 읽고, 되새기고, 씹고,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너에게 보내주신 사랑의 편지란다. 그 편지를 마음속 깊이 넣어두면, 인생의 어느 순간에도 길을 잃지 않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어.”
말씀은 죄를 이기는 방패입니다 (시편 119:11)
시편 기자는 분명히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시편 119:11). 이 말씀은 죄의 유혹이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알고 있는 고백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말씀을 마음에 두면 죄를 이길 수 있다는 선포이기도 합니다.
죄는 어둠처럼 다가옵니다. 때로는 달콤한 목소리로, 때로는 의심의 그림자로 스며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그 모든 어둠을 밀어내는 빛입니다. 그 말씀이 마음 안에 있을 때, 우리 아이들은 유혹을 분별하고, 죄의 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길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방패와 같습니다. 마음속 깊이 말씀을 간직한 아이는 세상의 유혹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그 아이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때문입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나의 자녀다. 그 길이 아니란다.”
말씀은 자라는 씨앗입니다 (마가복음 4:20)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떠올려 보십시오.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자라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4:20).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그 씨앗입니다. 그런데 그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좋은 땅’이 필요합니다.
좋은 땅이란, 바로 준비된 마음입니다. 겸손하고, 깨끗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아이들의 마음은 얼마나 좋은 땅입니까? 욕심과 미움으로 굳어지지 않은, 순수한 흙 같은 마음.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잘 자랄 수 있는 밭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이 시기가 가장 중요합니다.
아이들의 마음에 말씀이 심겨질 때, 그 말씀은 자라고, 열매 맺고,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됩니다. 그 말씀이 심겨진 아이는 세월이 지나도 믿음을 잃지 않고, 어려움 속에서도 소망을 말할 수 있는 존재로 자라게 됩니다.
말씀은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신명기 6:6–7)
신명기 6장 6~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신명기 6:6–7). 말씀은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대화이고 교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긴다는 것은, 하나님과 계속해서 대화하겠다는 뜻입니다.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위로하고, 깨우치고, 일으킵니다. 그래서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에게 성경을 읽게 하는 것은 단지 교육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이를 하나님과 대화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듣고,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러내며, 말씀 속에서 그 사랑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음에 숨긴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우정을 가슴속에 간직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아이들에게 성경 지식을 전달하는 데서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하고, ‘사랑하게’ 하고, 결국 하나님을 ‘닮아가게’ 해야 합니다.
마무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어린이 주일에 우리는 다시 한 번 아이들의 마음에 무엇을 심을 것인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시편 119편 11절,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고, 아이들의 고백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의 보물이며, 죄를 이기는 방패이며, 생명을 자라게 하는 씨앗이며, 하나님과 대화하는 살아 있는 음성입니다. 그 말씀을 마음에 숨길 때, 우리의 아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귀한 자녀로 자라날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말해줍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의 마음에 숨겨야 할 보물이란다. 그 보물을 간직하면, 네 삶은 하나님의 빛으로 가득 찰 거야.” 그리고 우리 모두의 마음에도 그 말씀을 새기며, 하나님과 더욱 가까이 걷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주의 말씀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깊이 심겨지기를, 그래서 그 말씀이 그들의 인생을 이끌고 보호하는 등불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에요
– 에베소서 6장 1절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우리 귀한 아이들,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오늘은 특별한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과 교회 공동체에 맡기신 생명의 선물인 어린이들을 축복하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다시 새기는 어린이 주일입니다.
우리는 이 시간을 통해 단지 어린이들을 축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이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고, 하나님의 뜻을 함께 나누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나눌 말씀은 에베소서 6장 1절입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에베소서 6:1).
이 짧은 구절은 단순한 가정의 질서나 도덕적 권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 말씀 안에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 사랑의 구조,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른들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모두 중요한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순종은 단순한 복종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6:1)
본문의 '순종'이라는 말은 단순히 부모님의 말에 "네"라고 대답하는 외적인 행동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원어적으로 '히포아쿠오'라는 이 단어는 '귀 기울이다', '주의 깊게 듣다'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복종이 아니라, 사랑과 존경에서 비롯된 전인격적 반응입니다.
순종은 억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부모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따르는 마음의 태도입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말을 단순히 무서워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로 인정하고 순종할 때,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과 같은 아름다움이 됩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쳐야 합니다. “순종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같단다. 부모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은 하나님이 너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연습이야.”
하나님은 질서를 통해 사랑을 가르치십니다 (에베소서 6:1)
하나님께서는 가정 안에 아름다운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으로 돌보고, 자녀는 부모를 존경하며 순종하는 관계입니다. 이 질서는 억압을 위한 구조가 아니라, 사랑이 흐르는 방향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혼란 가운데 두시지 않습니다. 창조의 질서도 그러했고, 가정도 그러합니다. 자녀가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 사는 것이고, 그것은 곧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는 길입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가장 먼저 순종을 배우는 대상이 부모입니다. 그리고 그 순종을 통해 결국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은 무질서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아이가 부모의 말씀을 듣고 따라가며, 때로는 혼나기도 하면서 올바른 길을 배워가는 그 과정 속에 하나님의 뜻이 녹아 있습니다.
순종은 가정을 천국으로 만듭니다 (에베소서 6:1)
사랑하는 여러분, 순종은 단지 아이의 덕목이 아니라, 가정을 천국으로 만드는 열쇠입니다. 부모가 사랑으로 말씀하고, 자녀가 존경으로 순종할 때, 그 집은 더 이상 단순한 집이 아닙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장소가 됩니다.
순종하는 자녀가 있는 집은 평안이 깃들고, 사랑이 흐르고, 기쁨이 넘칩니다. 왜냐하면 순종은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가정 안에서 실제로 살아 움직이며, 순종을 통해 그 능력이 드러납니다.
아이들에게 순종을 가르친다는 것은 단순히 얌전하게 만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질서를 심어주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영적 유산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축복을 여는 열쇠입니다 (에베소서 6:2–3)
본문 바로 다음 구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에베소서 6:2–3).
하나님은 순종에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단순한 물질의 복만이 아닙니다. 마음의 평안, 삶의 형통함, 그리고 관계의 축복까지 모두 포함됩니다. 부모님께 순종하는 아이는, 하나님의 축복을 향해 열린 문을 가진 아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삶은 안전합니다. 왜냐하면 그 길은 하나님의 손길이 동행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순종은 구속이 아니라 자유의 길입니다. 그것은 억압이 아니라 생명의 통로입니다.
아이들이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그것은 단지 가정에서만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나아가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도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작은 훈련이 결국 큰 믿음의 성장을 이루게 합니다.
마무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에베소서 6장 1절을 통해 순종이라는 아름다운 주제를 어린이 주일에 함께 나누었습니다. 순종은 단순히 아이들에게 요구되는 도덕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원리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질서요, 사랑을 배우는 학교이며, 복을 여는 열쇠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말해줍시다. “순종은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예배야. 부모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는 거야.” 그리고 우리 어른들도 이 말씀 앞에 함께 서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믿음의 본을 보이고, 존중과 사랑으로 권위를 세울 때, 아이들은 그 안에서 기쁨으로 순종하게 될 것입니다.
이 어린이 주일에, 하나님께서 주신 가정의 질서를 다시 세우고,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가르치며, 함께 축복의 통로로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안에서 순종하며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되기를, 그리고 그런 자녀들을 사랑으로 품는 부모님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