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81 - 119:96 내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말씀의 기다림, 고난 속의 소망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며 기다리는 영혼의 고백은 언제나 깊은 고난 속에서 더욱 절실해집니다. 시편 119:81-96은 고난의 때에 더욱 순전하게 주의 말씀을 의지하는 자의 내면을 섬세하게 드러내며, 말씀의 영원성과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노래합니다. 본문을 따라 우리는 고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자의 신앙의 중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영혼의 갈망
“내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오히려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81절). 시인은 깊은 피로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합니다. 여기서 ‘사모하다’는 히브리어 “כָּלָה”(칼라)로, ‘소멸되다’, ‘끝나다’는 뜻도 함께 내포합니다. 이는 단순한 기다림을 넘어, 기다림 가운데 자신의 모든 에너지가 소진될 만큼의 절박함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시인은 피곤함 속에서도 “주의 말씀을 바라본다”고 고백합니다. 인간적인 고갈을 느끼면서도, 마음의 시선은 여전히 말씀을 향해 고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는 단지 인내의 미덕이 아니라, 말씀의 절대성과 신뢰성에 대한 신자의 반응입니다.
이어지는 82절, “내가 주의 말씀을 언제 위로하실까 하며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였나이다”에서 우리는 반복되는 ‘피곤함’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 피곤함은 절망이 아니라 여전히 말씀을 향한 지속적인 시선입니다. 믿음이란 이러한 끈질김을 동반한 것입니다. 말씀은 단순히 위안을 주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있는 약속이며, 그 약속을 붙잡고 사는 삶은 고난 속에서도 끊어지지 않는 끈입니다. 시인은 “연기 속의 가죽 부대 같이 되었을지라도” 자신은 주의 율례를 잊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83절). 고난의 이미지가 생생합니다. 연기 속에 매달린 가죽 부대는 태양에 말라비틀어지고 쭈그러든 형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외형은 초라하고 쓰러질 듯하나, 내면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는 이 대조는 우리 신자의 삶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핍박 속의 질문, 그러나 변치 않는 율례
84절에서 시인은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리이까?” 이 질문은 단순한 생의 연수를 묻는 것이 아니라, 고난의 끝이 어디인지, 하나님의 개입이 언제일지를 묻는 탄원입니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원수들의 핍박 속에서도 율법을 지킨다고 말합니다(85-87절). ‘교만한 자들이 나를 해야 할 함정을 팠으니’라는 고백은 세상의 불의한 구조 속에서 의인이 당하는 억울함을 묘사합니다.
여기서 ‘함정’은 히브리어로 “שִׁיחוֹת”(쉬호트)이며, 이는 땅을 파서 설치한 덫을 뜻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주의 모든 계명은 신실하니이다”(86절)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신실’하다는 말은 히브리어 “אֱמוּנָה”(에무나)이며,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뜻합니다. 인간적인 판단으로 보면 고난이 불합리하게 느껴지지만, 말씀은 늘 신실하며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땅에서 나를 거의 멸하였으나 나는 주의 법도들을 버리지 아니하였사오니”(87절)라는 고백은 고난이 믿음을 파괴하지 못했음을 드러냅니다. 말씀은 고난을 넘는 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영원함과 한계 없음
“여호와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89절). 이 고백은 시편 119 전체에서 가장 중대한 신학적 선포 중 하나입니다. ‘굳게 섰다’는 히브리어 “נָצַב”(나차브)은 흔들림 없이 서 있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변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영원까지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은 대대로 임한다고 시인은 고백합니다(90절).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의 역사와 세대의 한계를 넘어서며, 변함없는 그분의 성품은 창조 질서 속에서도 드러납니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율법 조항이나 문자적 규범이 아니라, 창조의 질서를 유지하는 능동적인 힘입니다.
91절에서는 “만일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라는 고백이 이어집니다. 여기서 ‘즐거움’은 히브리어 “שַׁעֲשֻׁעַי”(샤아슈아이)로, 유희나 기쁨의 대상을 뜻합니다. 말씀은 단지 의무적으로 지키는 법도가 아니라, 내 영혼을 살리는 기쁨이 됩니다. 고난이 깊어질수록, 시인은 말씀을 생명과 같이 여깁니다. “나는 주의 법도들을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들로 나를 살게 하셨음이니이다”(93절). 여기에 ‘살게 하셨다’는 말은 히브리어 “חָיָה”(하야)로,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영혼을 소생시키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근원이며, 영혼을 다시 일으키는 힘이 됩니다.
결론: 한계 있는 인간, 무한한 말씀
시인은 “내가 주의 구원의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94절)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존재를 하나님의 소유로 고백하는 이 말은 종교개혁자들이 강조한 ‘하나님의 주권’과 깊이 연결됩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공로나 행위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소유로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분의 은혜에 있습니다. “악인들이 나를 멸하려고 엿보오나 나는 주의 증거들만 생각하나이다”(95절). 세상의 악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람을 공격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말씀을 붙잡음으로써 이길 수 있습니다. 시인은 말씀을 단순한 정보나 교훈이 아닌, ‘증거’로서 붙잡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품과 약속의 보증이라는 뜻입니다.
마지막 96절,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은 심히 넓은 이이다.” 인간의 완전함에는 끝이 있고,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의 계명, 즉 말씀이 가지는 깊이와 넓이는 무한합니다. 여기서 ‘넓다’는 히브리어 “רָחָב”(라하브)는 물리적인 넓음만을 의미하지 않고, 의미의 깊이와 적용의 범위, 영적 통찰의 풍성함을 말합니다. 결국, 고난 중에 시인은 말씀으로 돌아갑니다. 말씀을 통해 구원을 기대하고, 말씀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누립니다. 이것이 고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자의 삶입니다. 말씀은 단지 읽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뚫고 살아내는 힘이며, 영혼을 소생시키는 하나님의 숨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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