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113-128 묵상 내가 두 마음 품은 자들을 미워하고
말씀에 대한 사랑과 악에 대한 미움
시편 119:113-128은 말씀을 향한 순전한 사랑과 세상의 거짓과 악에 대한 분명한 분리를 고백하는 시인의 내면을 깊이 있게 보여줍니다. 이 본문은 말씀을 지키는 자가 세상 속에서 어떻게 분별하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경건한 고백의 언어로 풀어냅니다. 신자는 말씀 앞에서 자신을 바르게 세우며, 그 말씀을 기준으로 삶을 분별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말씀 앞에서 분열된 마음을 거부하다
“내가 두 마음 품은 자들을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113절). 여기서 ‘두 마음 품은 자들’은 히브리어 “סֵעֵפִים”(세에핌)으로, ‘마음이 나뉜 자들’, ‘결단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자들’을 뜻합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한 전심을 드리지 못하고 세상과 하나님 사이를 오가는 자들을 시인은 분명히 거부합니다. 반대로 시인은 주의 법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이 사랑은 단지 감정이 아니라 전 존재의 방향을 결정짓는 결단입니다.
이어서 그는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114절)라고 고백합니다. 은신처와 방패는 모두 위협으로부터의 보호를 의미합니다. 세상이 그를 흔들어대고, 죄가 끊임없이 유혹해도 말씀은 피난처이며 보호막이 됩니다. 말씀이 단지 교훈이 아니라 실제로 삶을 지켜주는 방패로 경험될 때, 우리는 어떤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시인은 “너희 행악자들은 나를 떠날지어다 내가 내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리로다”(115절)라고 선언합니다. 여기에는 단호한 분리가 있습니다. 죄의 길을 따르려는 자들과의 동행을 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떠날지어다’라는 명령은 세상 속에서 신자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는 신앙은 결국 무너지고 맙니다.
“주의 말씀을 바라보았사오며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고 주의 율례들에 항상 주의하리이다”(116절). 시인은 말씀을 바라보는 눈과 동시에 하나님께 붙들어달라고 간구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붙들다’는 히브리어 “סָעַד”(사아드)은 지탱해주고 부축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스스로 설 수 없는 인생의 여정에서 말씀은 곧 하나님의 손입니다.
또한 “나를 붙들어서 구원하게 하시며”(117절)라고 반복적으로 고백합니다. 구원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며, 말씀을 끝까지 따르는 자에게 주어지는 약속입니다.
말씀 앞에서 드러나는 하나님 심판의 정의
시인은 이어서 “주의 규례들에서 떠나는 자는 주께서 다 멸시하셨으니”(118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법에서 떠나는 것은 단지 규칙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멸시하다’는 “שָׁגָה”(샤가)로, 속이다, 미혹되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말씀에서 떠나는 자는 결국 스스로를 속이는 자입니다.
“주의 법도들을 지키지 아니하는 그들의 속임수는 허사로움이니이다”(118절 하반). 하나님의 진리를 떠난 자들의 전략과 생각은 궁극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허사’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שָׁוְא”(샤브)로, 공허함과 무가치함을 뜻합니다. 인간이 아무리 똑똑하고 전략적으로 산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길이라면 결국 무의미하게 끝납니다.
“주께서 세상에서 악인들을 찌끼 같이 버리시므로 내가 주의 증거들을 사랑하나이다”(119절). ‘찌끼’는 포도주를 만들고 남은 쓸모없는 찌꺼기를 의미하며, 히브리어로 “סִיגִים”(시깃임)이라 표현됩니다. 하나님은 죄악 가운데 있는 자들을 심판하셔서 정결케 하시고, 그 과정 속에서 오히려 시인은 말씀에 대한 사랑을 더욱더 강하게 고백합니다.
시인은 이 말씀 앞에서 두려움을 느낍니다. “내 육체가 주를 두려워하여 떨며 내가 또 주의 심판을 두려워하나이다”(120절). 경외는 단지 무서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 앞에서 나를 낮추고 순종하는 자세입니다. ‘떨다’는 “פָּחַד”(파하드)는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경외의 반응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무섭지만, 그것이 있기에 말씀은 더욱 소중하고 절대적인 기준이 됩니다.
고난 중에도 말씀을 붙드는 자의 기도
“내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였사오니 나를 박해하는 자들에게 나를 넘기지 마옵소서”(121절). 시인은 자신이 행한 정의와 공의를 근거로 하나님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물론 이것은 자기의 공로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 산 삶에 대한 진실된 고백입니다. 정의는 히브리어 “מִשְׁפָּט”(미쉬파트), 공의는 “צֶדֶק”(체데크)로, 하나님 성품의 반영입니다.
“주의 종을 보증하사 복을 얻게 하시고 교만한 자들이 나를 박해하지 못하게 하소서”(122절). 여기서 ‘보증하사’라는 말은 히브리어 “עָרַב”(아라브), 누군가의 손에 내 삶을 맡긴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사람은, 교만한 자들의 공격 속에서도 지켜짐을 경험하게 됩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바라며 주의 의로운 말씀을 사모하나이다”(123절). 시인은 눈이 기다리도록 말씀을 바라보고, 의로운 구원이 임하기를 사모합니다. 이 구절은 단지 기다림이 아니라, 눈이 멀어지도록 기다리는 지극한 갈망을 담고 있습니다. ‘바라다’는 히브리어 “קָוָה”(카와)로, 기다리되 소망을 품고 고대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주의 인자하심대로 주의 종에게 행하사 주의 율례들을 가르치소서”(124절). 하나님께서 친히 가르치시는 그 율례는 단지 정보의 습득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인자하심’은 히브리어 “חֶסֶד”(헤세드), 언약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깨뜨리지 않으시고, 그 사랑 안에서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시인은 또한 “나는 주의 종이오니 나를 깨닫게 하사 주의 증거들을 알게 하소서”(125절)라고 고백합니다. 깨닫게 하신다는 표현은 히브리어 “בִּין”(빈)이며, 단순한 이해를 넘어서 깊은 통찰로 나아가게 하는 은혜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그들이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께서 일하실 때니이다”(126절). 세상이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자의대로 살아갈수록,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갈망하게 됩니다. ‘폐하다’는 히브리어 “פֵּרֵרוּ”(페레루)는 찢고 버리다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말씀을 무시하고 자신이 주인이 된 듯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시간은 그들을 심판하시는 때로 도래합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들을 금 곧 순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범사에 주의 모든 법도들을 바로 여기고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127-128절). 말씀은 금보다 귀하고, 세상의 거짓은 혐오스러운 것입니다. 이분법적 태도는 회색지대를 거부하는 영적 결단이며, 이 시대 신자에게 요구되는 삶의 기준입니다.
결론
시편 119:113-128은 말씀에 대한 절대적 사랑과 죄와의 분명한 구별을 고백하는 신자의 심령을 깊이 있게 보여줍니다. 말씀을 따라 사는 자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서 전심으로 살아가기를 갈망합니다. 그 삶은 세상의 시선과는 다르지만, 오히려 하나님께서 보증하시는 복된 삶입니다. 악을 미워하는 마음은 말씀을 사랑하는 데서 비롯되며, 이 말씀은 고난 속에서도 신자를 보호하고 인도합니다. 이 땅에서 말씀이 우리의 방패가 되며, 말씀이 기준이 되는 삶이 결국 하나님 나라의 길로 이끄는 참된 길임을 시인은 고백합니다. 말씀 앞에서 전심을 다하는 삶, 그것이 이 시대에도 필요한 신자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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