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묵상, 눅 22:3-6, 유다의 배신
어둠 속에 열리는 문 - 유다의 거래, 우리의 그림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주간 수요일을 우리는 전통적으로 '배신의 수요일'이라 부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본문은 유다 이스가리옷이 예수님을 팔기로 결심하고, 대제사장들과 은밀한 거래를 시작한 장면입니다. 짧은 네 절이지만, 이 본문은 고난주간의 결정적인 전환점이자, 십자가의 서막이 되는 무거운 시간입니다.
본래 조용해야 할 예루살렘 성 안에서, 거룩한 유월절을 준비하던 그 시간에, 한 제자의 마음에 사탄이 들어갑니다. 빛이신 예수님이 가장 치열하게 사랑하셨던 제자 중 한 사람, 그 마음의 문이 열리고, 그 문을 통해 어둠이 들어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유다의 내면을 통해 우리 마음 깊은 곳의 그림자를 마주하게 됩니다. 유다는 우리와 너무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들어가니(눅 22:3)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눅 22:3).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 복음을 전파하던 사람, 기적을 보았던 사람, 함께 떡을 떼던 그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매우 충격적인 선언입니다. 사탄이 낯선 외부에서 침입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미 준비된 마음, 탐욕과 실망, 좌절과 냉소로 문이 열려 있었던 그 내면에 들어온 것입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팔기 위해 갑자기 악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금전과 권력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은 그가 돈궤를 맡은 자로서 도둑질하였다고 말합니다(요 12:6). 그의 마음에 탐욕의 씨앗이 있었고, 사탄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것입니다. 고난주간, 주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도 물으십니다. “너의 마음에는 어떤 문이 열려 있느냐?”
의논하는 자들, 거래되는 주님(눅 22:4)
유다는 가서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과 상의합니다. "예수를 어떻게 넘겨줄까 의논하매"(눅 22:4). 여기에 사용된 ‘의논’이라는 단어는 마치 사업 계약을 협상하는 어투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은밀한 대화 속에서 '값을 매겨지는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생명의 주님이 가격표에 매달립니다. 얼마나 비극적인 장면입니까.
이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자부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입술은 생명을 제거하는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유다는 그들과 아무 거리낌 없이 대화에 참여합니다. 이는 단순한 배신이 아니라, 구속사의 아이러니입니다. 생명을 죽이려는 자들 사이에, 가장 가까이 있던 제자가 앞장서고 있습니다.
주님은 팔리십니다. 단지 은 삼십에, 노예의 값에, 우리가 세상 속에서 자주 거래하듯 그렇게. 우리 역시 신앙의 이름으로, 사역의 명분으로, 관계의 습관 속에서 주님을 거래하는 때가 있지 않습니까?
기뻐하고 약속하다(눅 22:5)
그들은 기뻐합니다. "그들이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눅 22:5). 이것이 사람의 본질입니다. 거룩을 제거하는 일에 기뻐하고, 생명을 팔면서도 만족을 느낍니다. 사탄은 유다의 마음에 들어갔고, 대제사장들의 기쁨은 그 사탄의 열매를 받아들이는 반응이었습니다.
이 짧은 구절 속에 인간의 타락이 너무도 정직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거룩한 유월절을 준비하던 자들이, 유월절 어린양 되신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해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어둠의 거래는 은밀하게, 그러나 확정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일에 기뻐하고 있습니까? 우리 안에도, 복음을 잃어버린 자리가 어쩌면 즐거움으로 위장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기회를 찾더라(눅 22:6)
유다는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눅 22:6). 여기서 ‘기회’라는 단어는 헬라어 ‘유카이라’인데, 원래는 ‘좋은 시간, 적절한 순간’을 뜻합니다. 얼마나 비틀린 단어의 사용입니까. 유다는 예수님을 팔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지 못한 자는, 결국 사탄의 시간을 기다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회는 항상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어떤 이는 그 기회를 통해 주님을 증언하고, 어떤 이는 그 기회를 통해 주님을 부인합니다. 유다는 기회를 선택했지만, 그 선택은 곧 절망의 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시간은 어떤 기회입니까? 예수님과 동행하는 기회입니까, 아니면 그분을 멀리하는 기회입니까?
마무리 묵상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주간의 수요일은 무겁고도 조용한 날입니다. 대중들은 아직 모르고, 제자들도 알지 못하지만, 유다의 마음 안에서 이미 십자가는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둠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사탄은 그 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유다의 배신도, 사탄의 계략도, 대제사장들의 음모도, 예수님을 멈추게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 어둠 한가운데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점점 더 뚜렷하게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둠 속에서도 자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에 열린 문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유다의 문은 어둠을 향했고, 예수님의 문은 십자가를 향했습니다. 우리는 어느 문을 열고 있습니까?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눅 22:3).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두려운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주여, 내 마음에 빛을 비추소서. 유다의 그림자를 제거하시고, 십자가의 순결한 사랑으로 나를 채우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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