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9:1~14 주해 및 묵상
하나님의 시간을 따라 걷는 순례자들
출애굽의 광야 길에서 하나님은 단지 백성들을 이동시키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그분은 백성들의 시간을 다스리시고, 그들의 걸음을 조율하시며, 그들의 마음을 정결케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민수기 9:1-14는 출애굽 이후 첫 번째 유월절을 맞이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명령과 예외 조항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단순한 절기 지침이 아니라, 언약 백성이 하나님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깊이 있게 가르쳐 줍니다.
유월절의 재명령: 언약의 시간을 기억하라
본문의 시작은 유월절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시는 장면입니다. “애굽 땅에서 나온 다음 해 첫째 달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민 9:1).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단순한 기념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기억하는 시간이며, 언약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새롭게 각인시키는 절기입니다.
히브리어로 유월절은 ‘페사흐’(פֶּסַח)라 하여 ‘넘어가다’, ‘건너뛰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는 출애굽 당시 하나님께서 어린양의 피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장자들을 치지 않으시고 넘어가신 사건을 말합니다(출 12장 참조). 민수기 9장에서 하나님은 이 구속의 사건을 잊지 말고 시내 광야 한가운데서도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구절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에 있든 하나님의 은혜의 시간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광야라고 해서 유월절을 생략할 수 없습니다. 환경이 아니라 언약이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부정한 자와 먼 길에 있는 자: 자비의 시간도 준비하라
본문 중반부(민 9:6-12)는 한 가지 상황을 다룹니다. 시체로 인해 부정하게 된 사람들이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에게 나아와 그 사정을 알리고, 모세는 하나님께 여쭙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한 달 뒤에 유월절을 지킬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십니다.
이 부분은 하나님의 율법이 냉정한 율법주의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율법을 지키는 데에 단지 형식적으로 머물지 않고, 진정한 마음으로 참여하길 원하십니다. 히브리어 ‘타메’(טָמֵא)는 ‘부정하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의 단절된 상태를 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자들에게도 ‘기회’(moed, מוֹעֵד: 정한 때)를 주십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실수하고 넘어졌을지라도, 하나님의 은혜의 시간은 다시 찾아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회개의 기회는 닫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진실한 믿음으로 나아올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은 예비하고 계십니다.
타국인과 함께하는 유월절: 구원의 시간은 차별이 없다
본문의 마지막 절인 14절은 언뜻 보기에는 부가적인 지침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의 구원의 보편성이 담겨 있습니다. “너희 중에 타국인이 거류하면서 여호와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한 법도에 따라 행할지니라.” 이 말씀은 언약이 혈통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도와 방식대로라면,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언약의 자리에 참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 즉 "너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복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의 연장선입니다. 복음은 민족이나 계층을 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시간은 누구든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방식에 따라 순종하는 자에게 열려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이 정신을 회복해야 합니다. 출신, 과거, 문화의 장벽을 넘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에 순종하며 사는 삶
민수기 9장의 전체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시간에 반응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시간 개념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카이로스’(καιρός), 즉 특별하고 정하신 시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삶입니다. 유월절은 매년 돌아오는 정기적인 절기지만, 그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믿음의 순례자에게 다시 한 번 정체성을 일깨우는 사건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시간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달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 달력에 맞춰 살아가고 있는지 묻는 것입니다. 부정함에 머물러 회복의 기회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우리의 공동체가 타국인을 향한 배려 없이 폐쇄적인 공동체로 전락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야 합니다.
결론
광야에서도 유월절을 지켰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도 이 땅의 삶이라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시간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삶의 여정은 여전히 멀고 험할지라도, 하나님의 명령과 시간에 순종하는 자는 길 위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단지 무엇을 하라고만 명령하시는 분이 아니라, 어떻게 기다리고 어떻게 돌아오며, 어떻게 이방인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시는 분이십니다.
민수기 9장은 단순한 절기 지침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걸어가야 할 삶의 방식이며, 구속의 시간을 살아가는 영적 리듬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서 순례자로 살아갑니다. 그 시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날마다 회복과 순종과 환대를 실천하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생명의 삶] 2025년 4월 묵상 본문입니다. 묵상 본문을 클릭하시면 각 본문에 따라 묵상을 따라 설교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는 복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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