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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주제

설교를 위한 창세기 2장 강해

by 케리그마 2023.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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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장 설교 포인트

 

창세기 2장의 핵심의 창조의 완성입니다. 창조의 완성의 구조는 안식일, 사람의 섬김(아바드), 하나님의 계명, 여자의 창조를 통한 가정의 완성으로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은 창조의 큰 틀 바탕을 제공한다면 2장은 그 틀 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감으로써 창조를 완성하는가를 보여줍니다.

 

창세기를 읽을 때는 항상 출애굽의 관점, 또는 출바벨론의 관점에서 읽어야 합니다. 완성은 상실의 관점으로 해석할 때 가정 정확합니다. 창세기 3장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창세기 1-2장에서 진행된 완벽한 창조를 어떻게 파괴(상실)하고 겪는 고통과 회복의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안식, 창조의 완성

 

●  안식은 끝이다.

7일째 되는 창조는 완성이 됩니다. 끝은 두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지금까지의 여정이 끝이 났다는 것과 한 회기가 끝이 났다는 의미입니다. 둘은 하나이고, 그 하나는 앞으로 일어날 종말에 대한 암시이자 역사가 운행하는 큰 원리를 제공합니다. '아 이루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카라( כָּלָה) 의 뜻은 완성되었기 때문에 마무리되었다는 개념입니다. 단순히 경과를 마치고 끝이 났다는 의미보다 포괄적인 의미로, '완성되었다'는 개념이 더 강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하신 창조는 7일째가 됨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완성은 의도한 목적으로 실현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 안식일은 일곱째 날이다.

창조는 6일 동안 완성은 7일째 되는 날입니다. 만약 7일이 없다면? 그것은 지옥을 뜻합니다. 인간의 타락이 바로 그러한 지옥입니다. 영원히 타락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에 머무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들을 추방하심으로 죽음(끝)에 이르게 합니다. 일곱은 하나님께서 의도한 바가 완전히 실현되는 것이자 창조를 시작한 목적이자 이유이며, 방향입니다. 창조는 일곱째 날, 즉 안식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 안식일은 복된 날이다.

복과 거룩이 교차합니다. 복을 주심으로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거룩의 원의는 '구별하다'는 뜻입니다. 신약의 바리새파의 어원이 '구별되다'는 뜻입니다. 구별은 다른 말로 풀어내면 '전용'입니다. 남자 전용, 여자 전용, 백인 전용, 여아 전용 등등의 개념으로 오로지 한 부류, 또는 한 존재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룩의 개념을 도덕적인 것으로 한정하여 '착하다'로 이해하며 큰 오류입니다. 거룩하다는 누군가에게 완전히 드려지다는 뜻입니다. 즉 안식일은 오직 하나님만을 위하여 사는 날입니다. 다른 무엇을 해서는 안 됩니다. 돌려서 말하면 안식을 놀거나 쉬는 날이 아니라 방향이 자신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날입니다. 이러한 개념은 신약에서 예수님의 수많은 안식일 논쟁에서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안식일은 금지가 아니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날입니다. 이것이 거룩의 개념입니다.

 

타락은 하나님의 것을 사람이 쓰는 것이고,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들은 자신들이 가지는 것입니다. 거룩을 통하여 사람은 하나님관 본질적인 부분에서 극명한 간극이 있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개념은 선악과를 만드시고 주는 계명과 맥을 같이합니다. 계명은 하나님께만 순종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진전한 안성이란 하나님께만 드려지는 거룩한 삶이라는 것을 안식일을 통해 보여줍니다.

 

소명, 창조의 완성

 

● 생령

생령은 살아 있는 영으로 후에 예수님의 살리는 영과 비교됩니다. 생령으로 번역된 네페쉬( נֶפֶשׁ) 구약에서 750번 정도 사용된 중요한 용어로, 영혼, 마음, 정신 등으로 번역됩니다. 영어 성경은 매우 다양하게 번역을 합니다. a soul, living being, life, self, person, desire, passion, appetite, emotion 이러한 단어들이 갖는 의미는 정형적 존재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며, 갈망하며, 생각하며, 활동하며, 감정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특성은 앞으로 전개될 인간의 타락과 회개, 탐욕, 갈등, 반목, 열정, 헌신 등의 다양한 의미로 보일 것입니다. 부정적 방향으로 흐르면 타락하고 탐욕스러운 존재가 되지만 긍정적 방향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갈망하고, 주님께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존재가 됩니다. 마치 하늘에서 불을 내린 엘리야처럼. 

 

● 계명

 

첫 계명은 에덴동산이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계명은 단지 그것입니다. 계명은 계명을 주는 존재와 받는 존재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은 계명을 받고 순종하는 입장이며, 하나님은 계명을 세우고 요구하는 존재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과 사람의 자리가 정해집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질적 심연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이것을 넘어서려 할 것이다. 이것을 타락이라고 말합니다. 계명에 순종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창조 의미와도 닮아 있습니다. 창조는 말씀이며, 그 말씀이 곧 존재이며, 존재는 말씀에 의존하며, 종속되어 있습니다. 그 말씀을 떠나는 순간 생명이 사라지게 됩니다.

 

● 섬기고 지키라.

 

두 번째 계명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첫 번째 계명입니다. 지키다 샤마르( שָׁמַר )는 보존하다이며, 창조되었을 상태를 그대로 보존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섬기는 것( עָבַד )입니다. 경작하다의 아바드는 영어의 service의 기원이 되는 단어입니다. 예배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창세기 2장 맥락에서는 계발하다는 뜻입니다. 계발은 다리를 건설하고 집을 짓는 것을 말하기보다, 농부가 농사를 짓는 것과 같습니다. 식물이 갖는 본연의 상태가 발현될 수 있도록 잡초도 뽑고, 거름도 주는 행위를 말합니다. 경작하고 지키라는 같은 의미로 하나님께서 주신 에덴동산을 보존하는 동시에 그 안에 있는 식물들이 잘 자라도록 하는 것을 아담이 소명으로 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개념에서 본다면 창조는 완성되었지만 동시에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완성되어 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영원히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마치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영원한 생명을 가졌지만 그것을 보존하고 계속하여 자신을 가꿈으로 구원을 성취해 나가는 것처럼 말이죠. 완성과 미완성,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긴장장을 유지하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입니다.

 

 

결혼, 사람의 완성

 

● 돕는 배필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부분이지만 성경적 의미만 살펴봅시다. '돕는 배필'에서 돕다는 '에제르'는 여성의 위치를 말합니다. 돕는 것은 단순히 힘을 보태는 정도가 아닙니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는 뜻은 '보기 싫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에제르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군사적 지원을 뜻하지만(사 30:5, 겔 12:14 등) 충분하지 않은 것에 힘을 보태는 것을 뜻합니다. 즉 아담은 혼자서 살아가는 것을 충분하지 않습니다.(WBC 주석, 고든 웬함)  사람의 완성들은 결혼을 의미하며, 결혼은 조력자를 얻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을 위한 조력자인가는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지만 창세기 1장의 '좋다'와 2장의 '좋지 않다'는 쌍을 이루며, 하나님께서 의도한 대로 완성되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즉 두 사람이 만나 결혼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한 의도에 충분히 대응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 남자의 갈빗대

 

여자의 창조는 굉장히 특이합니다. 새로운 무엇으로 창조하지 않고, 남자에게서 가져옵니다. 이것은 창조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기존의 것에서 응용된 것도 포함하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아마드-아파르-아담으로 이어지고, 여자로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여자도 결국 흙에서 왔고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왜 갈빗대일까? 중간이라서? 고대 사람들은 영혼이 창자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신약의 '긍휼히 여기다'는 뜻도 원어적 의미는 '창자가 뒤틀리다'는 뜻입니다. 즉 창자는 영혼이 있는 곳입니다. 현대과학에서도 주목하는 부분입니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 스트레스를 받으면 창자가 뒤틀려 소화가 되지 않아 밥을 잘 먹지 못합니다. 갈빗대는 창자들을 보호하는 것으로 영혼의 친밀성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갈빗대가 창자를 보호하듯, 여자는 남자를 보호합니다. 놀라운 아이러니입니다. 

 

● 아담의 고백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란 표현은 최상급 표현으로 '너는 최고다'라는 뜻입니다. 내 뼈는 당연히 갈빗대를 말하겠죠. 부부는 둘이지만 하나이고, 하나지만 둘입니다. 타락 이후 아담이 하와에 대한 고백과 비교하면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고백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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