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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묵상, 마 26:17-30 마지막 만찬

케리그마 2025.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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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을 떼시고 잔을 드시며 - 고난 안에 새겨진 언약의 식탁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주간 성목요일, 오늘 우리는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 초대받은 마음으로 말씀 앞에 섭니다. 마태복음 26장 17절에서 30절까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드신 유월절 만찬의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만찬은 단순한 식사가 아닙니다. 죽음을 앞두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과 피를 떼어 주시며, 제자들에게 새 언약의 의미를 전하신 거룩한 순간입니다. 떡을 떼시고 잔을 드신 이 식탁은 단지 과거의 전통을 되풀이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언약을 선언한 하나님의 심장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고난이 단순한 운명의 비극이 아니라, 준비된 사랑의 식탁이었음을 묵상하게 됩니다. 그 식탁 위에 올려진 떡과 잔은 예수님의 몸과 피였고, 그 헌신의 향기가 오늘 우리 삶 속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월절을 준비하라(마 26:17-19)

본문은 유월절을 준비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유월절 음식을 드실 곳을 어디로 하시겠나이까"(마 26:17).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절기입니다.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받았던 그 밤을 기억하며, 어린양의 피로 죽음이 지나간 은혜의 날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한 사람을 지목하게 하시며, 그 집에서 만찬을 준비하라고 하십니다(마 26:18-19). 이 장면은 단순히 식사 준비의 의미를 넘어서, 예수님께서 구속의 시간표를 한 치의 어긋남 없이 따라가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유월절의 어린양은 지금,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어린양은 곧 자신이 될 것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나와 함께 먹는 자 중에(마 26:20-25)

예수님은 저물 때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십니다(마 26:20). 그리고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마 26:21). 제자들은 몹시 근심하며 각각 묻습니다. “주여, 나는 아니지요?”(마 26:22). 이 장면은 고통스럽도록 인간적입니다. 한 식탁에 앉아 음식을 나누는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는 예수님을 배신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마 26:23). 주님은 그 배신을 모른 채 당하신 것이 아니라, 아시면서도 끝까지 함께 먹으셨습니다. 사랑은 아픔을 안고도 품는 것입니다. 그분은 배신자와도 마지막까지 식탁을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경고하십니다.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마 26:24).

그러자 유다가 묻습니다.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십니다(마 26:25). 이 짧은 문답 속에는 무거운 침묵이 흐릅니다. 예수님은 폭로가 아닌 슬픔으로 그를 바라보십니다. 배신은 고발이 아니라, 눈물로 마주해야 할 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떡을 떼시고 잔을 드시며(마 26:26-28)

그리고 예수님은 떡을 들고 축복하시며 떼어 제자들에게 주십니다. "받아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마 26:26). 이어서 잔을 가지시고 감사 기도하신 후 제자들에게 주십니다.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7-28).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이 상징이 아니라 실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떡은 실제로 찢겼고, 잔은 실제로 비워졌습니다. 이 식탁은 단지 의식이 아니라, 구원의 현장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단순히 기념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받아 먹으라", "다 이것을 마시라" 하셨습니다. 십자가는 감상하는 대상이 아니라, 참여해야 할 생명의 통로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날 밤, 예수님은 스스로 제물이 되셨습니다. 어린양의 피로 문설주를 적셨던 유월절 밤처럼, 이제는 십자가 위에서 흘릴 자신의 피로 인류의 죄 문을 적실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이 잔은 고통의 잔이었지만, 동시에 구원의 잔이었습니다. 이 떡은 죽음의 떡이었지만, 동시에 생명의 떡이었습니다.

아버지 나라에서 새 것으로(마 26:29-30)

예수님은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마 26:29). 이 말씀은 십자가 이후의 소망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만찬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주님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다시 이 잔을 드실 그날을 바라보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성찬은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는 것만이 아니라, 미래의 잔치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떡과 잔을 받을 때마다, 십자가를 묵상함과 동시에 부활의 아침과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게 됩니다. 주님과 다시 마주할 그날, 그 잔은 다시 들려질 것입니다.

제자들과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신 예수님의 뒷모습이 떠오릅니다(마 26:30). 그는 이제 죽음의 골짜기로 걸어가십니다. 그러나 그 길은 두려움의 길이 아니라, 사랑의 성취를 향한 순례였습니다.

마무리 묵상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마지막 만찬의 식탁 앞에 섰습니다. 그 식탁에는 떡과 잔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 예수님의 고난이 얹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떡을 받아 먹고, 그 잔을 받아 마십니다. 그것은 단순한 상징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의 언약에 참여하는 신비입니다.

고난주간의 이 밤, 주님은 우리에게 다시 묻습니다. “너는 나와 함께 이 떡을 먹겠느냐? 너는 나와 함께 이 잔을 마시겠느냐?”

이 식탁은 초대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고난의 길에 참여하라는 부르심입니다. 예수님께서 떼신 떡, 예수님께서 들으신 잔. 그 속에 우리를 향한 사랑이 피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이제 그 사랑 앞에, 우리의 믿음도 함께 놓아드립시다.

"받아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마 26:26). 이 말씀이 오늘도 우리 심령 깊은 곳에 살아 있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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