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묵상, 요 13:1-17, 발을 씻기신 주님,
발을 씻기신 주님, 십자가를 향한 고요한 사랑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주간을 맞아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요한복음 13장의 말씀을 중심으로 주님의 깊고 고요한 사랑의 길을 함께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세족(洗足)'의 사건이지만, 이 장면에는 십자가를 향한 예수님의 내면의 분투와, 죄를 대속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속사가 절절히 녹아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장면 속에서, 말씀의 틈새마다 숨어 있는 주님의 마음과 우리의 길을 함께 발견하려 합니다.
사랑의 절정에서 펼쳐진 침묵의 은혜 (요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 13:1)
이 말씀은 마치 고요한 물 위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평범한 문장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만유의 중심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떠나실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아셨습니다. 죽음이 문턱까지 이른 이때, 주님은 놀라운 일을 하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오히려 더 깊어지고, 더 따뜻해지고, 더 겸손해집니다.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이 구절 속에는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내어주시는 그분의 순결한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사랑의 절정이 고난의 절정과 겹치는 이 지점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구속사적 사랑의 무게를 느낍니다. 이는 단순한 인간적 정이 아니라, 인류를 향한 하늘의 전적인 헌신입니다.
배반을 품으신 손 (요 13:2-5)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른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요 13:2-5)
주님은 자신을 팔 유다를 알고 계셨습니다. 마귀가 그의 마음속에 들어왔다는 것도 아셨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그 유다의 발도 씻기십니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의 배신 앞에 서면 마음의 문을 닫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히려 무릎을 꿇고 수건을 두르십니다. 이 장면은 사랑의 가장 고요한 혁명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파는 자의 발도 씻기십니다. 이는 우리 모두의 죄를,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용납하신다는 메시지입니다.
주님은 손에 수건을 드신 채, 대야에 담긴 물을 뿌리시며, 인간의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십니다. 그곳은 먼지가 쌓이고, 수치가 스며 있는 자리입니다. 주님의 손끝에서 흘러내리는 물방울은 곧 그분의 피가 될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은 말없이 죄인들의 발을 씻기시며, 십자가의 길을 앞당겨 보여주십니다.
베드로의 당혹과 주님의 침묵 (요 13:6-11)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요 13:6-8)
베드로는 당혹스럽습니다. 주와 종의 질서가 완전히 뒤집힌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이 말씀은 단순한 의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구속의 은혜를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베드로는 결국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달라"고 고백합니다. 주님은 그에게, 이미 목욕한 자는 발만 씻으면 된다고 하십니다. 이는 이미 구속받은 자가 날마다 발을 씻어야 함을 뜻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 장면은 우리의 신앙 여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미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받았으나, 세상의 먼지가 묻은 채로 살아가는 우리들. 주님은 날마다 우리의 발을 씻기길 원하십니다. 그것은 단지 깨끗해지는 문제가 아니라, 주님과 상관있는 자로 살아가기 위한 깊은 영적 친밀함의 행위입니다.
본을 보이신 사랑의 역설 (요 13:12-17)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요 13:14)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 옷을 입고 다시 자리에 앉으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라. 이것은 단순한 섬김의 권면이 아닙니다. 이는 십자가의 사랑을 계승하라는 부르심입니다. 주님은 권위와 지위의 정점에 서 계셨으나, 가장 낮은 종의 자리로 내려가셨습니다. 사랑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야 하며, 높아짐이 아니라 낮아짐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몸소 보이신 것입니다.
이 사랑은 역설적입니다. 높아지려면 낮아져야 하고, 살기 위해선 죽어야 하며, 얻기 위해선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는 십자가의 방식이요, 주님의 방식입니다. 우리가 이 세족의 본을 따를 때, 우리는 단순히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을 따르는 제자가 됩니다.
마무리 묵상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주간은 단순히 예수님의 고통을 '기억'하는 시간이 아니라, 그 고통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구속의 사랑을 '동행'하는 시간입니다. 요한복음 13장의 이 장면은 십자가로 향하는 주님의 마지막 사랑의 리허설과도 같습니다. 물로 씻기신 그 발은 곧 피로 물들 것이며, 수건으로 닦으신 손은 곧 못에 박히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길은 침묵과 겸손으로 이루어졌고, 끝까지 사랑하신 마음에서 출발한 길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고난주간에 우리의 발을 씻기시는 주님의 손을 묵상해야 합니다. 주님은 여전히 오늘도 우리의 발을 씻기기를 원하십니다. 더럽고 피곤하고 외롭고 배신당한 우리의 삶을 만지시고, 그 속에 당신의 십자가의 생명을 심으시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서로의 발을 씻기길 바랍니다. 이해하지 못할 이들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들을,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자들을 향해 허리를 굽히는 일이야말로, 십자가의 사랑을 따르는 길입니다. 주님의 손이 우리를 만지셨듯, 우리도 누군가의 발을 씻기는 제자의 길로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고난은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동행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 길을 걸으셨고, 오늘 우리에게 그 길을 따르라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의 고요한 사랑 앞에, 우리도 무릎 꿇을 수 있기를. 아멘.
'성경토픽 > 절기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난주간 묵상, 마 26:47-56 유다의 배반의 키스 (0) | 2025.03.30 |
---|---|
고난주간 묵상, 마 26:36-46 겟세마네의 기도 (0) | 2025.03.30 |
고난주간 묵상, 고전 11:23-26, 성만찬 제정 (0) | 2025.03.30 |
고난주간 묵상, 마 26:17-30 마지막 만찬 (0) | 2025.03.30 |
고난주간 묵상, 마 26:14-16, 은 삼십의 거래 (0) | 2025.03.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