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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주일 설교, 누가복음 24:6-7 그가 살아나셨느니라

케리그마 2025.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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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라, 그가 살아나셨느니라(누가복음 24:6-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주일 아침입니다. 고난주간의 무게를 지나, 오늘 우리는 비로소 열려진 무덤 앞에 섭니다. 고요하던 그 무덤은 더 이상 죽음을 안치하는 공간이 아니라, 생명의 문을 열어젖힌 복음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6절과 7절, 짧은 두 절의 말씀 안에 복음 전체가 압축되어 있습니다.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눅 24:6-7).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붙잡고 다시 살아야 합니다. 무너졌던 믿음을 다시 일으키고, 가라앉은 소망을 다시 끌어올려야 할 아침입니다.

 

빈 무덤 앞의 놀라움, 죽음 너머의 역사(눅 24:1-5)

본문은 안식 후 첫날 새벽, 여인들이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찾아온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그들은 장례를 마저 치르려 했습니다. 그들의 발걸음은 무거웠고, 마음은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그들 앞에 놓인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눅 24:3). 죽음으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았던 무덤이 텅 비어 있었고, 그곳엔 두 사람이 번개 같은 옷을 입고 서 있었습니다(눅 24:4).

하나님은 죽음의 자리에 생명을 준비하고 계셨고, 절망의 현장에 구속의 문을 여셨습니다. 부활은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강력하게 시작되었습니다. 여인들은 놀라움과 두려움 속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눅 24:5). 이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우리는 초월의 현장 앞에서 늘 작아지고, 하늘의 역사 앞에서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하늘의 음성이 들립니다.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눅 24:5). 이 질문은 지금도 우리를 향한 물음입니다. 왜 우리는 살아 계신 예수님을 삶의 구석구석에서 찾지 못하고, 믿음 없는 현실과 절망 속에서만 주님을 이해하려 합니까? 살아 계신 예수님을 죽음의 틀 안에 가두려는 습관, 그것이 바로 믿음의 장애입니다.

기억하라, 주님의 말씀이 너희를 살린다(눅 24:6-7)

그 다음 이어지는 천사의 메시지는 오늘 설교의 중심입니다.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눅 24:6). 부활의 핵심은 단지 빈 무덤이 아니라, 말씀이 기억되는 순간입니다. 천사는 여인들에게 말합니다. ‘기억하라’고요.

신앙은 기억에서 시작됩니다. 고난의 시간 동안,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잊습니다. 주님의 약속, 주님의 위로, 주님의 재림, 그리고 주님의 부활까지.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고, 그 말씀을 기억하는 자를 살리십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며,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눅 24:7). 이것이 바로 십자가와 부활의 필연성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사고가 아니라 계획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이었고, 구속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부활은 그 구속이 완성되었음을 증명하는 승리의 선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단지 죽음을 이긴 사건이 아니라, 말씀이 이루어진 사건이자 구속사가 완결된 거룩한 선포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말씀이 살아 있는 한, 주님은 살아 계십니다.

부활의 메시지를 붙잡은 자들의 변화(눅 24:8-10)

여인들은 그 말씀을 기억하고(눅 24:8), 제자들에게 돌아가 그 모든 일을 전합니다(눅 24:9). 본래 그들은 향품을 준비한 자들이었습니다. 죽음을 마무리하려고 했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기억하자 그들의 손에 들려 있던 향품은 쓸모없어졌고, 대신 복음의 증언이 그들의 입에 담겼습니다. 부활을 기억하는 순간, 삶의 방향이 바뀐 것입니다.

신앙이란 말씀이 기억되는 순간에 일어나는 반전입니다. 우리는 복잡한 논리나 대단한 체험을 통하지 않고도 말씀 하나로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덮고, 내가 그 말씀을 다시 기억하면, 죽은 자처럼 살아가던 내 삶에도 다시 호흡이 들어옵니다. 복음은 그렇게 부드럽지만 확실하게 살아 있는 자를 만드십니다.

여인들은 두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내어 달려갑니다. 믿음이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말씀을 따라 걷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인들의 복음 선포는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달되어 부활주일을 맞이하게 한 씨앗이 되었습니다.

부활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의 부르심입니다(눅 24: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현재성을 선언하는 복음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살아 계십니다. 과거에 역사하셨고, 지금도 우리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부활은 단지 역사적 증거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는 사건입니다.

부활은 우리에게 오늘 무엇을 요구합니까? 그것은 믿음의 재건입니다. 죽은 믿음을 다시 살리고, 마른 뼈 같은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지 말라. 나는 살아 있다. 말씀을 기억하라." 이 부활의 음성 앞에서, 우리는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 저의 마음에도 다시 살아나소서. 저의 믿음도 무덤에서 나와 다시 걷게 하소서."

마무리 묵상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은 단지 빈 무덤을 확인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말씀을 다시 기억하고, 그 말씀에 따라 다시 살아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고, 그 살아 계신 주님은 오늘도 우리의 삶을 향해 다가오십니다. 죽음과 죄의 무게에 눌린 우리를 깨우시고, 사망의 돌문을 굴려내시며, 새벽을 여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이 부활주일, 다시 기억합시다. 주님이 하신 말씀을, 주님의 약속을, 십자가에서 하신 그 사랑을. 그리고 부활의 주님을 마음 깊이 맞아들입시다. 부활은 그분께만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도 일어나야 할 새로운 생명의 역사입니다. "그는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이 음성을 듣는 자마다 오늘도 다시 살아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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