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주일 설교, 고전 15:55-57 사망 앞의 절규에서 부활의 노래로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고린도전서 15:55-5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주일 아침이 밝았습니다. 고난주간을 지나며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눈물로 엎드렸고, 그분의 피와 못 자국을 깊이 묵상하며 우리의 죄를 되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부활은 그 고난을 넘어선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그리고 오늘 고린도전서 15장의 말씀은 그 부활이 단지 예수님 한 분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한 승리의 선포라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이 외침은 단순한 신앙 고백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새롭게 다시 시작된 구속사의 절정입니다.
사망 앞의 절규에서 부활의 노래로(고전 15:55)
바울은 부활의 절정을 고백하면서 외칩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이 말씀은 호세아서 13장 14절의 인용입니다. 이 구약의 말씀은 원래 이스라엘의 배역과 회개 없는 상태에 대한 경고의 맥락이었지만,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의 궁극적인 회복의 약속으로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사망은 늘 인간의 공포의 실체였습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실, 피할 길 없는 결말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이 사망의 독을 뽑아내셨고, 죽음의 쏘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셨습니다. 이 외침은 마치 전장에서의 승전가 같습니다. 바울은 사망 앞에서 무릎 꿇지 않고 오히려 그 사망을 향해 승리를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고난주간을 지나며 십자가의 깊이를 묵상했습니다. 그 고난의 의미는 부활 없이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활은 단지 감정의 회복이 아니라, 실체적인 역사이며, 하나님의 약속 성취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이 외침은 신앙의 도취가 아니라, 영적 현실을 선포하는 선언입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이 외침을 오늘 우리 마음속에서도 다시 울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죄의 독침, 율법의 무게를 넘은 복음(고전 15: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 15:56). 이 말씀은 단지 설명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을 요약하는 핵심 진술입니다. 사망은 죄를 통하여 권세를 행사하고, 죄는 율법을 통하여 그 정죄력을 강화합니다. 율법은 선하고 거룩하지만, 죄로 인해 율법은 오히려 인간을 정죄하는 도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사망 앞에서 무기력한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이 구조를 단숨에 뒤흔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 아래 나심으로 율법의 모든 요구를 이루셨고, 죄 없으신 그분이 죄를 짊어지심으로 죄의 대가를 대신 치르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통하여 사망의 권세를 무너뜨리셨습니다. 이것이 고난주간의 핵심이고, 부활의 영광이 가져온 반전입니다.
율법이 무겁게 짓눌렀던 그 어깨에, 이제는 은혜의 옷자락이 덮입니다. 죄가 쏘아올린 그 독침은 주님의 상처에서 제거되었고, 그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로 우리는 정결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사망이 쏘는 것은 죄지만, 그 죄는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 죄의 독을 자기 몸 안에 다 흡수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서 이긴 자의 찬송(고전 15:57)
바울은 이렇게 외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7). 이 구절은 부활절의 가장 명확한 고백입니다. 승리는 우리가 얻은 것이 아닙니다. 승리는 주님께서 얻으셨고, 우리는 그것을 '받은' 자입니다. ‘주신다’는 표현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소유권의 이전을 의미합니다. 이제 우리는 죽음에게 진 자가 아니라, 예수 안에서 이긴 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패배의 기억이 아니라, 승리의 노래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죽음을 이긴 확정된 미래’를 선물하신 것이며, ‘의의 옷’을 입혀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아픔 속에 있지만, 그 아픔은 끝이 아닙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그 끝에서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기에 선 부활의 사람들(고전 15:55-57)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은 단지 저 먼 미래의 소망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실현되어야 할 능력입니다. 바울은 부활을 이야기하면서 단지 죽음 이후의 삶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땅에서의 신앙의 여정을 승리의 삶으로 재정의합니다. 고난주간의 깊은 고통을 지난 우리에게, 이제 부활은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절망 앞에서 말해야 합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우리는 실패 앞에서 고백해야 합니다. “감사하노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 이 고백이 있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부활의 사람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기는 싸움이 아니라, 이미 이긴 싸움을 살아가는 여정입니다. 주님은 이미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그 승리를 우리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죄를 붙들고 있지 않으며, 율법 앞에 위축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자유로운 자요, 승리한 자입니다.
마무리 묵상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부활주일 아침에 다시 고백합시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주님께서 그 쏘는 것을 빼앗으셨고, 그 독을 제하셨으며, 그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죽음에 사로잡히지 않고, 죄에 눌리지 않으며, 율법 아래 매이지 않는 자들입니다.
주님은 고난의 십자가로 길을 내셨고, 그 길 끝에서 부활로 생명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그 부활의 승리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그 승리를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마지막 날까지.
이 부활의 확신이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르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그 승리의 고백으로, 삶의 모든 어둠과 싸워 이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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