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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설교, 마태복음 21:1-11 예루살렘 입성

케리그마 2025.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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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위한 길 위에 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이 날, 우리는 단순히 나귀 타신 왕의 모습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이 땅에 임하셨는지를 깊이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루살렘으로의 입성은 마태복음이 전해주는 하나님 나라 복음의 절정이요, 구속사의 물줄기가 고요히 그러나 강력하게 흘러가는 순간입니다.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21장 1절부터 11절까지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 무리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외쳤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마 21:9) 이 장면은 축제의 모습 같지만, 그 이면에는 고통과 눈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 영광의 순간은 곧바로 십자가의 어두운 골짜기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본문을 통해 예수님의 왕 되심, 그리고 그 왕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나귀를 타신 역설의 왕 (마 21:1-5)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을 때,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마 21:2) 우리는 여기서부터 이미 하나님의 방식이 세상의 방식과 다르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분은 전차를 타고 금관을 쓰고 군사를 거느리며 입성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작고 연약한 나귀를 타고, 겸손하게, 조용하게 오십니다.

여기서 마태는 스가랴서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매는 짐승의 새끼를 타셨도다 하라"(마 21:5, 슥 9:9) 이 구절은 단지 한 예언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정체성 그 자체를 드러냅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은 세상의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짐을 나누어 지는 왕이십니다. 그는 연약함을 품고 오시며, 겸손 속에 능력을 숨기신 분이십니다.

이 장면은 하나의 상징적 행위, 곧 "성육신의 연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연약함을 의도적으로 입으십니다. 우리가 짐승의 새끼로 여기는 것조차 하나님의 영광을 담는 그릇이 됩니다. 그 나귀 위에 앉으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와 같은 몸을 입고, 너희의 왕으로 오노라."

호산나의 외침, 이해되지 않은 메시아 (마 21:6-9)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령대로 나귀를 가져오고, 그 위에 자기 겉옷을 얹고 예수님을 태웁니다. 그리고 무리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펴며,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흔듭니다. 그들은 외칩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마 21:9)

'호산나'는 히브리어로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이 외침은 단순한 환호가 아니라 간절한 절규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구원 요청은 정치적 해방과 민족적 회복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민족주의적 메시야로 오해했습니다. 그들이 기대한 왕은 로마를 물리치고 다윗 왕국을 회복할 권력의 메시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원하는 칼과 방패의 메시아가 아니라, 피와 눈물의 길을 가는 십자가의 메시아셨습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인간의 기대와 하나님의 구속 방식 사이의 간극을 봅니다. 우리도 종종 예수님을 나의 필요와 기대에 맞는 존재로 만들려 합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분은 내 욕망을 채우는 분이 아니라, 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기 위해 오신 구속의 왕이십니다.

성의 문을 흔든 조용한 혁명 (마 21:10-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 성이 소동합니다. 마태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마 21:10) 여기서 '소동하다'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세이오(seio)'인데, 이는 지진이 일어나는 것처럼 흔들리는 상태를 말합니다. 즉, 예수님의 입성은 겉으로는 조용했지만, 내면에는 영적 지진과 같은 충격을 일으킨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방식입니다. 겉으로는 고요하고 비폭력적이지만, 그 중심에는 세상의 질서를 전복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입성은 무력으로 성을 점령한 것이 아니라, 진리와 사랑으로 인간의 심장을 정복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분의 나라는 보이지 않게 오지만, 오히려 세상 무엇보다 강력하게 존재합니다.

예수님의 발자국이 닿는 곳마다 흔들립니다. 성전은 뒤집히고(마 21:12), 종교지도자들은 분노하며(마 21:15), 아이들은 계속 외칩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이 외침은 더 이상 군중의 목소리가 아니라, 천국의 아이들이 드리는 찬양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한 것입니다.

그 길 위에 우리도 서 있다 (적용의 시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예루살렘 입성의 장면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문이 어떻게 열리는지를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환호 속에 그러나 고난을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그분의 길은 승리의 행진이 아니라, 죽음을 향한 순례였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야말로 참된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우리도 지금 그 길 위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왕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세상의 영광을 가져다줄 왕입니까, 아니면 나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왕입니까? 우리는 예수님께 "호산나"를 외치지만, 정말 그분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오늘도 조용히 우리 마음의 성문 앞에 서 계십니다. 그분은 세상의 방식으로 우리의 인생을 뒤흔들지 않으십니다. 대신 우리 안에 진리의 지진을 일으키십니다. 겉으로는 고요해 보여도, 그분이 들어오시는 순간 우리의 가치와 삶의 중심이 뒤집힙니다.

지금, 주님은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내가 너의 왕이 될 수 있겠니?" 우리는 그 질문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대답해야 합니다. "예, 주님. 겉옷을 길에 펴듯, 제 마음을 주 앞에 펴오니, 오셔서 제 삶의 주인이 되어 주옵소서."

마무리 묵상

사랑하는 여러분, 종려주일은 단지 하나의 절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왕을 영접할 준비가 되었는지를 묻는 날입니다. 종려나무 가지는 말라버릴 수 있지만, 우리의 믿음은 시들지 않아야 합니다. 외침은 잦아들 수 있지만, 우리의 순종은 이어져야 합니다. 그분은 오셨고, 또 오실 것입니다.

그날에도 나귀를 타신 주님이셨고, 오늘도 겸손히 우리의 삶에 들어오십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오시는 그날에는 흰 말을 타신 심판의 주로 오실 것입니다. 그날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그분을 맞이하겠습니까?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를 타셨도다."(마 21:5) 이 말씀이 우리의 오늘과 영원을 울리는 진동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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