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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1:1~9 주해 및 묵상

케리그마 2025.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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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의 불평, 마음의 불신

광야에서의 삶은 단순히 지리적 이동이 아니라, 영적 여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의 기적을 경험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민수기 11:1-9은 그들의 불평이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고, 또 어떤 영적 상태를 드러내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만나조차 싫증 내며 애굽의 기억을 그리워했던 백성들의 모습은, 오늘 우리 안에도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불만과 욕망의 실체를 드러냅니다.

불평의 시작: 감사하지 못하는 입술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11:1). 이 구절은 단순한 불만 표현이 아닙니다. ‘악한 말’로 번역된 히브리어 ‘רַע’(ra‘)는 도덕적으로 잘못된,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태도를 뜻합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은 단순히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거스르는 죄였습니다. 입술로 드러난 그들의 불만은 결국 마음속 깊은 불신과 반역의 표시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원망을 “들으셨다”고 하십니다. 이는 단순한 청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감정과 판단을 동반한 듣기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즉각적으로 임하며, 진영 끝을 태우는 불로 나타납니다. 그 불은 ‘다베라’라는 이름의 장소로 기록되는데, 이는 “타오름”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단지 징계가 아니라, 그들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거룩한 응답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크고 작은 상황 속에서 쉽게 입을 열어 불평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불평은 단순한 푸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의심하고, 하나님의 공급을 무시하는 심각한 불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말은 우리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결국 입술의 불평은 마음의 불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기쁨의 기억을 그리워하다: 왜곡된 과거의 유혹

4절 이하에서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섞여 살던 무리가 탐욕을 품고 울며 말합니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그리고 그들은 애굽에서 먹었던 생선과 오이, 참외, 부추, 파, 마늘을 떠올립니다. 이 장면은 매우 아이러니합니다. 그토록 괴로워하며 하나님께 부르짖던 애굽의 노예생활이, 지금은 풍요의 상징처럼 그려지고 있습니다.

‘탐욕을 품었다’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הִתְאַוּוּ תַּאֲוָה’(hit’avu ta’avah)로, 문자 그대로는 ‘욕망을 욕망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단순한 욕구가 아니라, 욕망 그 자체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 탐욕은 공동체 전체에 전염되며,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시선을 빼앗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곡된 기억의 위험성을 봅니다. 인간은 현실이 어렵고 힘들 때, 과거의 일부만을 과장하여 기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노예로서의 고통은 지워지고, 음식의 맛만 남습니다. 이는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교만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매일같이 만나를 내려 주셨지만, 그들은 그것을 무가치하게 여깁니다.

하늘의 양식에 대한 경멸: 은혜에 대한 무감각

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쇠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이 말 속에는 하나님의 공급에 대한 불만과 함께, 은혜를 일상으로 전락시켜버리는 인간의 무감각이 담겨 있습니다.

만나는 하늘에서 내린 음식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6장에 따르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백성을 먹이시기 위해 내리신 기적이었습니다. ‘만나’는 히브리어로 ‘מָן’(man)이라 하며, “이것이 무엇이냐?”는 의미를 갖습니다. 백성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완전한 양식이었습니다. 7절 이하에서는 만나를 ‘베델리움 같고 그 모양은 진주와 같다’고 설명합니다. 즉, 그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담긴 신령한 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백성은 이 만나를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익숙해져서 더 이상 감격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은혜가 은혜로 느껴지지 않을 때, 인간은 필연적으로 세상 것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손길은 더 이상 감사의 대상이 아니며, 비교와 불만의 대상으로 전락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렇게 권태가 무섭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공급, 하나님의 임재가 너무 익숙해져서 아무 감동 없이 지나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매일 아침 새롭게 부어지는 자비를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무감각 속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해야 합니다.

결론

민수기 11:1-9은 광야의 혹독함보다 더 무서운 것이 불평하는 마음, 왜곡된 기억, 그리고 은혜에 대한 무감각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친히 먹이시고 인도하시는 백성이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공급에 싫증을 내며 세상의 풍요를 그리워했습니다. 그들의 불평은 곧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이었고, 결국 그들의 영혼은 점점 더 메말라 갔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광야와 같은 시간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기억하며, 무엇을 갈망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늘 우리 가운데 있지만, 우리가 그 은혜를 은혜로 느끼지 못할 때, 삶은 메마른 사막이 됩니다. 그러나 입술의 불평을 멈추고, 주신 은혜를 새롭게 바라볼 때, 우리는 다시금 하늘의 만나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불만은 현실을 바꾸지 못하지만, 감사는 마음을 바꾸고,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꿉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주어진 만나에 감사하며, 앞으로 인도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걸어가는 자들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의 만나를 바라보며, 만족함과 기쁨으로 광야를 지나가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생명의 삶] 2025년 월 묵상 본문입니다.  묵상 본문을 클릭하시면 각 본문에 따라 묵상을 따라 설교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는 복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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