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1:10~23 주해 및 묵상
짐을 나누시는 하나님
광야에서의 삶은 언제나 믿음의 시험대가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은 끝이 없었고, 그들의 탐욕은 모세를 점점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민수기 11:10-23은 인간의 한계 앞에서 하나님의 인도자였던 모세가 얼마나 깊은 좌절에 빠졌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절망의 자리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짐을 나누고 은혜로 감싸주십니다. 이 본문은 리더십의 짐, 하나님의 응답, 그리고 은혜의 공급이라는 주제로 우리 삶에도 깊은 교훈을 줍니다.
무너지는 인내, 지쳐버린 지도자
“모세가 백성이 각기 자기의 장막에서 우는 것을 들을 때에 여호와의 진노가 심히 크고 모세도 기뻐하지 아니하여” (11:10). 이 장면은 이스라엘 백성의 집단적 원망이 얼마나 무질서하고 파괴적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각기 자기의 장막에서 우는 것'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회개가 아닌, 탐욕으로 인한 불평과 분노의 표출입니다. 그 소리는 하나님을 향한 반역의 소리였습니다.
모세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어로 ‘רַע’(ra‘)는 ‘악하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괴로움, 고통’의 의미로도 이해됩니다. 모세는 공동체의 무게에 짓눌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드린 고백은 처절합니다.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나는 이 모든 백성을 낳은 아버지입니까?” (11:11-12). 모세의 고백은 낙심한 목회자의 심정이자,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한 절규입니다.
그는 스스로에게 주어진 책임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임을 고백합니다. ‘짐’이라 번역된 히브리어 ‘מַשָּׂא’(massa)는 무게 있는 책임, 부과된 의무를 뜻합니다. 모세는 이 짐을 혼자 짊어지는 데 한계를 느낍니다. 그래서 “차라리 죽여 주십시오”라고까지 기도합니다(11:15). 여기서 우리는 신앙의 영웅처럼 보이는 모세조차도 연약한 인간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완벽한 자가 아니라, 지치고 낙심한 자리에서도 여전히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입니다.
나누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고통을 들으시고, 그 짐을 나누어 주십니다. “너를 위하여 내가 알리는 장로 칠십 명을 모으라…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그들에게도 임하여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나누리니” (11:16-17). 이 말씀은 참으로 놀라운 은혜의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네게 임한 영’을 장로들에게도 나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영’은 히브리어 ‘רוּחַ’(ruach)로,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 통치를 상징합니다. 이는 모세에게 주셨던 리더십의 능력을 하나님이 장로들에게도 동일하게 나누어 주신다는 뜻입니다. 단지 행정적 부담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영적 권위를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사역이 공동체적이라는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리더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기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항상 동역자와 협력자를 세우셔서 사역이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하십니다. 이는 교회가 한 사람의 은사나 리더십에만 의존하지 않고, 함께 짐을 지는 공동체로 서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하나님의 이 응답은 모세가 구하지 않은 영역까지 이르렀습니다. 모세는 단지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했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에게 더 넓은 은혜의 길을 여셨습니다. 이는 기도의 본질이 우리의 바람을 관철시키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위로와 공급을 얻는 데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손이 짧으냐
하나님은 모세에게 장로들을 세우는 것 외에 또 다른 약속을 주십니다. 백성의 불평에 대해 고기를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나 이때 모세는 다시 한번 자신의 시선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의심을 드러냅니다. “이 백성의 수가 육십만인데 내가 어디서 고기를 얻어 그들에게 주겠습니까?” (11:21-22).
모세의 의심은 인간의 계산에 기반합니다. 수많은 백성을 위해 고기를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호히 대답하십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11:23). 이 구절은 민수기 전체뿐 아니라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선언입니다. 히브리어 ‘קָצַר’(qatsar)는 ‘짧다’, ‘부족하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능력의 제약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불신 앞에 다시금 자신이 전능자이심을 선포하십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다가옵니다. 우리도 상황 앞에서 자주 계산합니다. 이만큼의 자원으로, 이만큼의 사람으로, 이만큼의 조건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조건보다 주님의 손을 보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손이 결코 짧지 않다는 믿음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능력을 동반하며, 그분의 약속은 현실의 논리를 초월합니다.
결론
민수기 11:10-23은 인간의 한계와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본문입니다. 지쳐 쓰러진 모세는 자신의 무능함을 토로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동역자를 세워주시고, 능력을 나누어 주시며, 다시금 전능하신 손으로 역사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 본문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리더라 할지라도, 때론 무너질 수 있고 지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자리에서조차 일하시는 분이라는 것.
오늘 우리의 삶에도 때로는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는 사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 벅찰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짐을 나눌 동역자를 세우시며, 그분의 영을 부어주십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손이 결코 짧지 않다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보기엔 불가능해 보여도, 하나님의 손은 광야 가운데서도 공급하시고, 광야 끝에서도 길을 내십니다.
모세처럼 낙심한 자리에서 드리는 기도라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시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일어서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이 질문은 곧 하나님의 위로이며, 능력이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믿음의 출발점입니다.
[생명의 삶] 2025년 월 묵상 본문입니다. 묵상 본문을 클릭하시면 각 본문에 따라 묵상을 따라 설교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는 복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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