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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1:24~35 묵상, 성령의 바람과 탐욕의 무덤 사이에서

케리그마 2025.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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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바람과 탐욕의 무덤 사이에서

민수기 11장 24절부터 35절까지의 본문은 두 개의 강렬한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성령이 장로들에게 임하는 놀라운 역사이고, 다른 하나는 백성의 탐욕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이 두 이야기는 대조적이면서도 동시에 연결되어,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욕망이 충돌하는 현장을 보여줍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거룩, 그리고 사람의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게 됩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다

모세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장로 칠십 명을 회막에 모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강림하사 모세에게 임했던 영을 그 장로들에게도 나누어 주십니다. 여기서 '영'(히브리어 רוּח, ruach)은 단지 감동이나 의욕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내려오셔서 영을 나누신다는 이 표현은, 성령의 통치를 통해 공동체가 새롭게 정돈되고 세워짐을 보여줍니다.

이 장면은 출애굽 공동체의 질서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넘어, 하나님의 영이 공동체 전체에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입니다. 여기서 장로들이 예언을 했다는 사실은 단지 미래의 일을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선포하는 사명을 부여받았음을 의미합니다. 잠깐 예언했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위임하신 사명과 권위를 상징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진영에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도 동일하게 영이 임합니다. 엘닷과 메닷이 회막에 오지 않았지만 예언했다는 이 사건은 하나님이 인간의 형식이나 구조에 매이지 않으신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장소와 형식이 아닌, 마음의 중심과 뜻에 따라 역사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이며, 성령의 자유하신 역사입니다.

이 일로 인해 여호수아가 모세에게 엘닷과 메닷을 말리라고 하자, 모세는 오히려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선지자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모세는 영적 지도자의 진정한 자세를 보여줍니다. 권위를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영적 은혜가 널리 퍼지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참된 리더십입니다. 모세의 이 고백은 신약에서 성령이 모든 믿는 자에게 임하시는 오순절의 사건을 예표합니다.

바람에 실려온 고기, 그리고 심판

성령의 바람이 불었던 바로 다음 장면에서는 또 다른 바람이 등장합니다. "여호와께서 바람을 일으켜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곁 이쪽 저쪽 곧 진영 사방으로 날아와"(31절)라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바람'(히브리어 ruach)은 동일한 단어이지만, 이번에는 은혜가 아닌 심판의 전조로 사용됩니다. 하나님의 손이 고기를 몰아오게 하셨지만, 그 이면에는 백성의 탐욕을 향한 하나님의 징계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백성은 그 고기를 욕심껏 모읍니다. 하루 종일, 또 그 다음 날도 쉬지 않고 고기를 모으는 장면은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무제한으로 흐를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히브리어로 '탐욕'(תַּאֲוָה, taavah)는 단순한 욕망을 넘어서, 절제하지 못하고 하나님보다 무언가를 더 사랑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결국 그 탐욕은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킵니다.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진노하시고, 백성 가운데 심히 큰 재앙을 내리십니다. 그리고 그 땅은 '기브롯 핫다아와' 즉 '탐욕의 무덤'이라 불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손은 짧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손은 은혜만을 위한 손이 아니라, 거룩을 지키기 위한 심판의 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고기를 주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드러내셨습니다. 이는 고기를 요구한 백성에게 내리신 재앙이 단지 음식을 탐한 데 대한 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무시한 데 대한 심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받지 못하고, 그것을 욕망으로 치환할 때 그 끝은 무덤일 수밖에 없습니다.

공동체 안에서의 질서와 영적 경계

이 본문은 하나님의 공동체가 어떻게 세워져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공동체는 질서와 사명 안에서 세워집니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이 그 중심에 들어서면, 동일한 공동체가 곧 무너질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었던 바로 그 장소에서, 탐욕의 심판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두렵고 떨림으로 신앙을 점검하게 합니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두 가지의 경계에 서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영이 이끄시는 예언과 섬김의 자리요, 다른 하나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내는 파멸의 자리입니다. 어느 자리에 설 것인지는 공동체 전체의 방향뿐 아니라, 우리 각자의 선택에도 달려 있습니다.

모세는 백성의 짐을 홀로 지지 않기 위해 장로를 세웠습니다. 하나님은 그 장로들에게 동일한 영을 부으셨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공동체 안에는 여전히 탐욕이 꿈틀거렸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며, 하나님 없는 종교가 얼마나 쉽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되, 그 임재가 단순한 감정이나 능력의 체험이 아니라 거룩함과 순종으로 연결되어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이 거룩하길 원하십니다. 거룩은 단순히 죄를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고 따라가는 삶입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의 진정한 열매입니다.

결론

민수기 11장 후반부는 극적인 대조를 통해 우리에게 진리 하나를 분명히 새깁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할 때에 공동체는 살아납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이 자리 잡을 때, 공동체는 무너집니다. 성령의 바람은 예언과 섬김을 낳지만, 탐욕의 바람은 죽음을 불러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어느 바람에 귀 기울이고 있는가? 성령의 바람인가, 탐욕의 바람인가?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우리의 마음에 성령을 부으소서. 사람의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좇게 하소서."

성령이 임하신 자리는 반드시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예언과 섬김, 거룩과 질서, 그리고 공동체를 살리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들리는 백성의 울음은 오늘날의 교회가 다시 들어야 할 경고의 나팔소리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바람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생명의 삶] 2025년 월 묵상 본문입니다.  묵상 본문을 클릭하시면 각 본문에 따라 묵상을 따라 설교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는 복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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