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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1:10~23 묵상 하나님의 손이 짧으냐

케리그마 2025.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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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에서 은혜로: 하나님의 손이 짧으냐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은 단지 이동의 기록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신뢰와 불신, 은혜와 징계의 교차점 위에 선 인간의 실존을 드러내는 이야기입니다. 민수기 11장 10절부터 23절까지의 본문은 인간의 불평과 하나님의 응답, 그리고 중보자의 고뇌를 통해 하나님 백성의 신앙 여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본문을 통해 오늘 우리 안에 있는 불만과 낙심, 그리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묵상합니다.

하나님의 백성, 불만을 쏟아내다

"백성이 온 가족을 두고 각기 장막 문에서 우는 것을 모세가 들은지라" (민 11:10). 여기서 '우는 것'(히브리어 bakah)은 단순한 감정의 표출이 아닙니다. 이는 원망, 불신, 탐욕이 뒤섞인 울부짖음이며, 애굽을 그리워하는 퇴행적 신앙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내려주시며 그들의 피로를 채워주셨지만, 백성은 고기를 요구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고 자기 욕망을 절대화한 행동입니다.

백성이 울며 말한 고기의 요구는 사실상 애굽으로의 회귀를 의미합니다. 그들이 말한 “애굽에서 갑없이 먹던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이 생각난다”(5절)는 회상은 단순한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노예 상태였던 과거를 낭만화하는 왜곡된 기억입니다. 이는 은혜로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속사를 부정하는 반역입니다.

불평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급을 거절하고, 그분의 선하심을 의심하는 행위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에 담기는 작은 불만이, 결국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불순종으로 자라날 수 있음을 본문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무거운 짐, 중보자의 고통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백성의 원망과 하나님의 진노 사이에 놓인 중보자였습니다. 그는 “이 백성에게 내가 잉태하였나이까”라며 자신에게 부어진 짐의 무거움을 토로합니다(12절). 모세는 백성을 책임지겠다는 태도를 갖고 있었지만, 인간적인 한계에 도달하여 절규하는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일꾼이 감당해야 하는 중보적 고통을 봅니다. 모세의 고백은 단순한 불평이 아니라 진실한 부르짖음이며, 이는 곧 중보자의 기도입니다. 이 구절에서 “차라리 내 생명을 취하소서”라고 말하는 모세의 외침은 엘리야의 절망(왕상 19:4)과도 통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 부르짖음을 책망하지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일흔 명의 장로를 세우시며 짐을 나누게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긍휼이요, 중보자의 기도를 통한 은혜의 응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가 겪는 사역의 무게와 고난을 아십니다. 때로는 그 짐이 너무 무겁게 느껴질지라도, 하나님은 동역자를 붙이시고 은혜를 부어 주심으로 그의 사역을 지속 가능하게 하십니다. 모세의 기도는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께 토로하는 자의 본보기가 됩니다.

하나님의 손은 짧지 않으시니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23절). 히브리어 원문에서 "짧다"(קָצַר, qatsar)는 단어는 능력의 제한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이 제한받지 않음을 선포하십니다. 이 구절은 불신과 의심으로 가득한 백성에게, 그리고 한계에 도달한 모세에게 주시는 선언입니다.

이 선언은 단순한 수사의 반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계시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짧지 않다는 말씀은, 그분의 섭리와 주권, 그리고 자비가 인간의 눈에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고기를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단 하루도, 이틀도 아닌, "한 달 동안" 먹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19절). 이는 단지 고기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이 헛되지 않음을 보여주시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이 안에는 경고도 함께 있습니다. 백성이 요구한 고기는 응답되지만, 그것은 복이 아니라 심판의 도구가 됩니다. 그들이 고기를 탐하다가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겪게 되는 곳, 그 이름이 ‘기브롯핫다아와’(탐욕의 무덤)로 불리게 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급은 언제나 목적이 있으며, 그것이 탐욕으로 왜곡될 때 그것은 은혜가 아닌 심판이 됩니다.

결론

민수기 11장의 이 장면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닙니다. 이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 거울입니다. 우리 안에 자리한 탐욕, 불신, 왜곡된 기억은 여전히 하나님을 거스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급을 당연하게 여기며, 눈앞의 현실이 불편할 때마다 불평으로 반응하는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책망하시되, 동시에 긍휼히 여기십니다. 모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장로를 통해 짐을 나누게 하시며, 능력으로 말씀을 이루십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이 물음은 오늘 우리에게도 향해져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지연되는 것 같고, 사역의 길이 벽에 부딪힌 것처럼 느껴질 때, 이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하나님의 손은 짧지 않으며, 그의 계획은 사람의 연약함을 넘어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그 손은 짧지 않으며, 지치지 않으며, 결코 우리를 놓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불평 대신 믿음으로 그분을 바라보십시오. 은혜는 늘 광야 한가운데서 피어오르며, 거기서 하나님의 신실하신 손이 우리를 이끄십니다.


[생명의 삶] 2025년 월 묵상 본문입니다.  묵상 본문을 클릭하시면 각 본문에 따라 묵상을 따라 설교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는 복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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