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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2:9~16 묵상, 하나님께서 회막을 떠나심

케리그마 2025.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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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가운데 머무시는 하나님

민수기 12장 9절부터 16절은 하나님이 미리암과 아론의 비방에 응답하시며 미리암에게 징계를 내리시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이 징계의 중심에는 분노보다 더 깊은 하나님의 사랑과 회복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죄의 결과로 인한 징계가 단절이나 파멸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다시 거룩으로 이끄는 회복의 길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짧은 구절 속에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가 동시에 흐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떠나심과 임재의 공백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9절). 이 말씀은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회막에서 떠나셨다는 것은 공동체의 중심에 계시던 하나님의 임재가 물러갔다는 뜻이며, 이는 영적 생명의 핵심이 빠져나간 것과 같습니다. 이 장면은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에덴에서 내쫓으신 사건을 연상케 합니다.

하나님이 떠나신 자리에는 곧바로 재앙이 찾아옵니다. 미리암은 나병에 걸립니다. 성경은 그녀가 나병에 걸려 눈과 같이 희게 되었고, 아론은 그것을 보고 놀라며 “우리 누이의 살이 죽어서 모태에서 나올 때의 살과 같게 되지 않게 하소서”(12절)라고 말합니다. 이는 단순히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미리암의 상태가 공동체로부터 완전히 단절되는 죽음의 상태에 가까워졌음을 의미합니다.

나병은 구약에서 단순한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을 침해한 데 대한 상징적 징계입니다. 히브리어 '나병'(צָרַעַת, tzara'at)은 육체의 부패뿐 아니라, 영적인 오염을 의미합니다. 미리암이 범한 죄는 말의 죄였지만, 그 결과는 몸 전체를 덮는 부정함으로 드러납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의 죄가 얼마나 전인격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중보자의 간구, 회복의 시작

가장 놀라운 장면은 그 다음에 이어집니다. 바로 그 미리암을 위해 모세가 중보합니다.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13절). 이 짧은 기도 속에는 모세의 온유함과 중보자로서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자신을 비방하고 모욕한 이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을 위한 변호를 하지 않았지만, 누이를 위해서는 하나님께 강구합니다.

이 장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마땅하지만,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모세의 중보는 바로 그리스도의 모형이며, 하나님은 이 기도를 들으시고 반응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번에 고쳐주시지 않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을지라도 그가 이레 동안 부끄러워하지 않겠느냐”(14절) 하시며, 미리암을 진영 밖에 이레 동안 있게 하십니다. 이는 징계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앞에서 죄의 무게와 회복의 과정을 경험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며, 동시에 회복을 위한 시간을 허락하십니다.

여기서 ‘침을 뱉는다’는 표현은 히브리 문화에서 가장 큰 수치와 모욕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비유적 언어는 죄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무겁고 수치스러운지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수치의 시간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레 동안의 격리는 징벌이 아닌 정결의 과정이며, 다시 공동체로 돌아가기 위한 통과의례입니다. 이는 신자가 범죄했을 때 겪게 되는 회개의 시간과도 같습니다.

공동체의 기다림과 연합의 의미

본문의 마지막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백성이 그를 다시 데려오기까지 진행하지 아니하고”(15절). 미리암이 회복될 때까지 온 공동체가 행진을 멈추고 기다립니다. 이는 단순한 이동의 중단이 아니라, 공동체가 한 지체의 회복을 기다리는 사랑과 연합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공동체를 움직이실 때, 단순히 개별 인원이 아닌 전체를 보십니다. 한 사람이 죄를 범하면 공동체 전체가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회복될 때, 공동체 전체는 그 회복을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이는 신약 교회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몸의 한 지체가 아프면 온 몸이 함께 아프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누군가의 실수에 대해 너무 쉽게 판단하고, 멀리하려 하지는 않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회복을 원하시며, 공동체는 그 회복의 공간이어야 합니다. 미리암의 징계가 끝나고, 공동체는 다시 길을 떠납니다. 하나님은 회복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함께 걸어가게 하십니다. 공동체는 단지 모인 사람이 아니라, 함께 기다리고 회복하는 이들입니다.

결론

민수기 12장 9절부터 16절은 하나님의 진노로 시작되지만, 결국 회복과 공동체의 회복으로 마무리됩니다. 하나님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고, 그 결과를 분명히 보여주시지만, 동시에 그 안에 자비의 길도 마련하십니다. 모세의 중보는 하나님의 긍휼을 이끌어내고, 징계는 단절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과정으로 작용합니다.

오늘 우리도 때로는 말로, 또는 행동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공동체를 아프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마다 우리를 버리시는 분이 아니라, 회복의 길로 초청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길에는 반드시 중보와 공동체의 기다림이 함께합니다.

우리는 누구의 회복을 위해 기다려주고 있습니까? 혹은 우리는 회복을 기다림받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여전히 그 상처의 자리에서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다시 공동체와 함께 걷게 하십니다. 그 은혜를 붙들고, 우리가 주님의 몸 된 공동체로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생명의 삶] 2025년 월 묵상 본문입니다.  묵상 본문을 클릭하시면 각 본문에 따라 묵상을 따라 설교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는 복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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