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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8:15 죄를 범한 형제를 대하는 자세

케리그마 2025.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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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은 형제를 회복하는 복음의 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각 성도는 그 몸을 구성하는 지체입니다. 그러므로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는 단지 인격적 유대가 아니라, 신학적 의미를 지닌 유기적 연합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5절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죄와 갈등 상황 속에서, 어떻게 복음적인 방식으로 회복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인간 관계의 처세술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지켜가는 원리이며,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랑을 반영하는 실제적 적용입니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 죄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여기서 ‘형제’는 헬라어 ‘아델포스’(ἀδελφός)로, 단지 혈육의 의미가 아니라, 같은 믿음 안에서 한 가족이 된 공동체의 지체를 말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형제’는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 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가장 친밀한 용어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교회 안에서 실제로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 간의 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죄를 범하거든’이라는 표현은 헬라어 ‘하마르테세’(ἁμαρτήσῃ)로 쓰였는데, 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어긴 명백한 죄를 가리킵니다. 이 죄는 단지 개인적인 잘못이라기보다, 공동체 안에 해를 끼치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을 해치는 죄입니다. 그렇기에 이 말씀은 누군가가 죄를 지었을 때,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죄의 인식과 대처의 주체가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개인주의적 해결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거룩한 책임을 강조합니다. 형제가 죄를 범했을 때, 우리는 외면하거나 수군거릴 것이 아니라, 복음에 입각한 회복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타인의 죄를 방관할 권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진실과 사랑으로 대면할 의무가 있습니다.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 사랑 안에서의 책망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이 구절은 교회 안에서의 책망과 회복의 원리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가서’는 헬라어 ‘훕아게’(ὕπαγε)인데, 이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의지적이고 의도적인 접근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회복을 위한 첫 걸음은 피하거나 미루는 것이 아니라, 먼저 찾아가는 주도적 사랑입니다.

‘너와 그 사람과만’이라는 표현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이는 그 문제를 공개적으로 다루기 전에, 먼저 사적인 만남 속에서 진심을 다해 권면하라는 뜻입니다. 복음은 창피를 주거나 망신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인격적인 만남과 사랑의 권면을 통해 죄를 다룹니다. 여기서 ‘권고하라’는 헬라어로 ‘엘렝쏘’(ἐλέγξον)인데, 이는 단지 비판이나 책망이 아니라, 죄를 드러내어 회개로 이끄는 복음적 책망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곧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왜곡하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도록 초청합니다. 진리를 말하되, 상대를 죽이지 않고 살리는 방식으로. 죄를 분명히 지적하되, 정죄가 아니라 회복을 목적으로.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방식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죄를 묵과하지 않으셨지만, 동시에 죄인을 배척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균형이 바로 우리가 따라야 할 회복의 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많은 교회 안에서 문제는 죄를 묵과하거나, 반대로 죄인을 정죄만 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방식은 은혜의 칼날입니다. 죄는 도려내되, 생명은 보존하는 칼날. 우리가 그런 사랑의 외과의사가 되어야 합니다.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 회복의 열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여기서 ‘얻는다’는 헬라어 ‘에케르데사스’(ἐκέρδησας)는 상업적인 용어에서 비롯된 단어로, 무언가를 값지게 되찾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잃어버린 관계가 복구되었다는 의미를 넘어서, 영혼을 다시 살아나게 했다는 영적 기쁨을 나타냅니다.

이 표현은 복음의 가장 아름다운 열매입니다. 복음은 단지 죄를 용서받는 데서 끝나지 않고, 관계의 회복, 공동체의 일치, 그리고 하나님과의 화목으로 이어집니다. 그가 너의 말을 듣는다면, 그가 회개하고 돌아온다면, 그것은 단지 한 사람의 변화가 아니라, 하늘의 기쁨이 되는 사건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잔치를 벌였습니다. 죄인을 얻는 것은 천국을 확장하는 일이며,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가는 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질문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외면하고 있는 형제는 누구인가? 마음속으로 정죄하거나, 피하고 있는 누군가는 없는가? 그리고 나는 먼저 가는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기다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가라고 하셨습니다. 피하지 말고, 사랑으로 대면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제자된 삶의 길이며, 하나님 나라의 원리입니다.

결론

마태복음 18장 15절은 한 구절이지만, 그 안에 담긴 복음의 깊이는 참으로 큽니다. 이 말씀은 죄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 사랑 안에서의 책망, 그리고 회복의 기쁨을 한줄기처럼 이어줍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고통스러운 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사랑으로 해결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공동체는 죄 없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곳이 아니라, 죄를 서로 지적하고, 회개하며, 용서하는 과정을 통해 점점 거룩해져 가는 장소입니다.

이 고난주간, 십자가를 묵상하는 우리는 복음이 단지 개인적 구원의 메시지가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의 회복과 사랑의 방식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단 한마디의 정죄도 없이, 오히려 용서를 선포하신 그 순간, 우리는 그 방식의 최고봉을 보았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주님의 음성은 오늘 우리가 들려주어야 할 음성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는 복음의 원리를 들었고, 그 안에 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갈등이 없는 교회는 없습니다. 그러나 갈등을 복음으로 끌어안고, 회복으로 나아가는 교회는 분명 존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교회를 이루어가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태복음을 장별로 요약하고, 구조분석을 따라서 강해 설교를 작성했습니다. 마태복음을 예수님의 왕되심을 선포하며,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소개가 됩니다. 각장을 중요한 주제를 뽑아서 설교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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