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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2:1~12 묵상, 포도원의 주인과 악한 농부들

케리그마 2025.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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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원의 주인과 아들의 이야기: 배척당한 사랑

마가복음 12장 1절부터 12절은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포도원 농부의 이야기입니다. 이 짧은 비유는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을 향한 강력한 책망이자, 하나님의 구속 역사 속에서 배척당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과 사명을 드러내는 예언적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단지 과거의 교훈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되묻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포도원의 은혜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의 지도자들을 향해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울타리를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세운 후 농부들에게 새를 주고 타국에 갔다고 하셨습니다(1절). 이 말씀은 이사야 5장에 나오는 포도원의 노래를 직접적으로 연상케 하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어떻게 정성껏 준비하시고 가꾸셨는지를 보여주는 서사입니다.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울타리는 율법의 경계이며, 즙 짜는 틀은 제사와 예배를 위한 시스템을, 망대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선지자들의 역할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말씀 안에서 자라고 열매 맺도록 완전한 환경을 조성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의 시작은 철저히 은혜입니다. 주인의 손길은 세심하고 사랑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사랑에 대한 인간의 반응입니다.

하나님께서 때가 되매 농부들에게 포도원의 소출을 받으려 종을 보내셨으나, 농부들은 그들을 때리고 모욕하고 심지어 죽입니다(3-5절). 이는 구약 시대 선지자들을 보내시던 하나님의 인내와 애통을 상징합니다. 예레미야, 이사야, 스가랴, 세례 요한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거절당하고 핍박받았습니다. 여기서 '때가 되매'라는 말은 헬라어로 kairos로서,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은혜의 때를 의미합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다시, 또다시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기회를 배척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보낸 아들, 거절당한 사랑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보냅니다. 본문 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여기서 '사랑하는 아들'은 마가복음 1장에서 세례받으실 때 들려온 하늘의 음성과 동일한 표현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선언이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가장 귀한 것을 주셨다는 절정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그 아들을 보고 오히려 상속자라고 판단하며 죽이기로 결의합니다. "이 사람은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7절) 여기에는 무서운 자기중심성과 탐욕, 그리고 반역의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를 알면서도 죽이기로 결정한 그들은, 단지 무지해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거절하고 스스로 주인이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장면을 통해 십자가의 사건을 예고하십니다. 사랑의 절정으로 보내신 아들이, 가장 비참하게 배척당하고 죽임당할 것이라는 이 말씀은, 단순한 예측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의 중심을 이루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토록 깊고, 인간의 죄는 그토록 완고합니다. 그리고 이 사랑과 죄의 충돌은 결국 십자가 위에서 정점을 이룹니다.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다

예수님은 비유를 마치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10-11절). 이는 시편 118편의 인용으로,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버림받으셨지만 하나님께서 그분을 구속사의 중심에 두셨다는 복음의 핵심을 요약합니다.

'머릿돌'(헬라어 kephale gonias)은 건축의 구조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의 판단과 배척 속에서는 무가치한 돌로 여겨졌지만, 하나님의 눈에서는 구원의 기초였습니다. 이는 복음의 역설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방식입니다. 사람은 종종 외모와 환경, 현실적 유익에 따라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버려진 자를 통해 구원을 이루십니다.

지도자들은 이 비유가 자신들을 가리킨 것임을 알고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무리를 두려워하여 그 계획을 미루었습니다(12절). 그들은 진리를 알아보았지만, 진리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아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믿고 복종하는 것이 복음 앞에서의 참된 반응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같은 선택의 기로 앞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포도원을 내 것이라 여기며 주인 행세하고 있지는 않은지, 예수 그리스도를 존대하는 척하면서도 실제로는 배척하고 있지는 않은지 진지하게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아들을 보내시며 말합니다. "그 아들은 존대하리라."

결론

마가복음 12장 1절부터 12절은 단지 비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요약한 복음의 선언이요, 사람의 죄와 하나님의 사랑이 부딪히는 역사적 현실입니다. 하나님은 포도원을 정성껏 가꾸셨고, 많은 기회를 주셨으며, 마지막으로 아들까지 보내셨습니다. 그 모든 과정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사랑을 거절했고, 결국 아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 죽임당한 아들이 구원의 중심이 되었고, 그 버림받은 돌이 머릿돌이 되었습니다. 복음은 실패처럼 보였던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승리를 드러냅니다. 오늘 우리는 그 복음 앞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여전히 내 삶의 주인을 내가 되려 하고, 주인의 아들을 거절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포도원은 여전히 우리 삶 속에 존재합니다. 주인의 뜻을 따라 열매 맺는 삶이 아니라, 내 방식대로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자리잡고 있다면, 우리는 그 비유 속 농부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아들을 보내십니다. 그분을 존대하며, 주인 되신 하나님께 우리 삶의 모든 소출을 돌려드리는 참된 믿음의 백성 되기를 바랍니다.


[생명의 삶] 2025년 월 묵상 본문입니다.  묵상 본문을 클릭하시면 각 본문에 따라 묵상을 따라 설교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는 복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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