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8:15 - 18:30 묵상, 천국은 어린아이처럼
하나님 나라를 향한 조건 – 아이처럼, 그리고 버릴 줄 아는 자
누가복음 18장 15절부터 30절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가 무엇인지 세 가지 장면을 통해 보여줍니다. 어린아이처럼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자, 율법을 다 지킨 부자 청년이지만 결국 떠나간 자, 그리고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른 제자들. 이 세 장면은 한 맥락에서 연결되며,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는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믿음의 본질을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어린아이의 품처럼 – 하나님의 나라를 받는 자의 마음
본문은 사람들이 자기 어린 아기들을 예수께 데려와 안아주시기를 바라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이때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습니다(15절). 아마 제자들은 예수님을 중요한 교사로 여기고 있었고, 그분의 시간을 귀하게 사용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행동을 제지하시며 전혀 다른 관점을 드러내십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16절)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어린아이들’이라는 말은 헬라어 “βρέφη(brefē)”로, 아직 언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고 부모의 보호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유아들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존재들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다고 선언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이들은 의심하지 않고 믿으며, 자기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본질은 은혜이며, 은혜는 자격 있는 자가 아니라 자격 없음을 인정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17절)고 하신 말씀은 강한 종말론적 선언입니다. 여기서 ‘받든다’는 동사는 헬라어 “δέξηται(dexētai)”로, 환영하다, 기꺼이 받아들이다의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나라란 논리로 따지고 조건을 붙여 계산하는 자가 아닌, 열린 마음과 순전한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의 것입니다.
믿음의 출발은 이처럼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주님 앞에 나아오는 데 있습니다. 세상은 강한 자, 이긴 자, 능력 있는 자를 환영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자들이 아닌, 주님의 손에 안겨야 살 수 있다고 고백하는 자들에게 열립니다. 우리가 날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이유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품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넘어서지 못한 청년 – 진짜 문제는 ‘가지고 있는 것’
이어서 등장하는 인물은 부자 관리로 알려진 청년입니다. 그는 예수께 묻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8절). 여기서 '선한'이라는 표현을 예수님은 바로잡으십니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19절). 이 말씀은 예수님이 자신의 선하심을 부인한 것이 아니라, 그 청년이 ‘선함’의 기준을 사람에게 두고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이 청년은 매우 모범적인 유대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계명들—간음, 살인, 도둑질, 거짓 증언, 부모 공경(20절)—은 십계명의 후반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도리를 말하는 계명입니다. 이에 청년은 “이 모든 것을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21절)라고 대답합니다. 말하자면 그는 ‘율법적 의’를 가진 자였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를 향해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22절).
이 구절에서 ‘부족하다’는 표현은 헬라어 “λείπει(leipei)”로, ‘결정적으로 빠져 있는 무언가’라는 뜻입니다. 이 청년에게는 율법의 행위는 있었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은 없었습니다. 그는 재물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재물에 종속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그 청년은 매우 근심하며 돌아갑니다(23절). ‘근심하다’는 단어 “περίλυπος(perilypos)”는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히 고민하여 죽을 지경’이라는 표현에 사용된 단어입니다(마 26:38). 말하자면 그는 자신의 문제를 깊이 깨달았지만, 그 문제를 넘어서지 못하고 돌아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24절) 그리고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25절)고 비유하십니다. 여기서 ‘바늘귀’는 실제 바늘을 말하기도 하고, 성벽에 있는 작은 문을 상징적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해석이든 본문의 요지는 분명합니다. 인간이 가진 것, 특히 소유에 대한 집착은 하나님 나라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며, 인간의 능력으로는 결코 극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버린 자들에게 주시는 약속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26절)라고 묻습니다. 그 질문은 단지 부자만이 아니라, 그 시대 유대인 전체가 가지고 있던 신앙적 전제를 드러냅니다. 당시 유대 사회는 재물과 축복을 하나님께 받은 상징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런 부자가 구원을 받기 어렵다면 도대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은 신학적 충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27절)고 대답하십니다. 구원은 행위나 재산,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복음의 핵심을 예수님은 여기서 선포하십니다. 인간은 자기 힘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만이 그 문을 여십니다.
이때 베드로가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보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28절). 예수님은 이 고백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약속으로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30절).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버리다’입니다. 헬라어 “ἀφῆκεν(aphēken)”은 단순한 포기가 아닌, 의도적이고 신앙적 결단에 의한 떠남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손해를 감수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인간이 어떤 것도 비교할 수 없는 참된 보상이 있으며,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넘치도록 채워진다는 약속입니다. 단지 물질적인 보상만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의 새로운 가족, 새로운 관계, 하나님 안에서의 깊은 만족이 포함된 것입니다.
결론
누가복음 18장 15절부터 30절까지의 말씀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세 가지 기준을 우리 앞에 세워 줍니다. 첫째,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은혜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겸손한 마음. 둘째, 세상의 재물과 의에 집착하지 않고, 오직 주님을 따르기 위해 자신을 내려놓는 결단. 셋째,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자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보상과 현재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단호하게 그러나 은혜롭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계산과 조건으로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는 가진 것으로 높아진 자가 아니라, 가진 것을 버릴 수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문은 크지 않습니다. 그러나 낮아지고 비워야 들어갈 수 있는 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어린아이처럼 주님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율법과 소유의 안정감 속에 주님을 따르는 길을 망설이고 있습니까? 주님은 여전히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와서 나를 따르라.” 그 음성 앞에 다시 결단하며,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소유하는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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