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8:1 - 18:14 끈질긴 기도
끈질긴 믿음과 겸손한 기도의 자리
기도는 신자의 영혼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거룩한 자리입니다. 누가복음 18장 1절부터 14절까지의 본문은 예수님께서 직접 비유를 통해 기도의 본질과 자세를 가르쳐 주신 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단지 기도의 방법을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성도의 삶의 태도와 믿음의 정체성을 날카롭게 비추어 줍니다.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 성전에서 기도하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 이 두 가지 이야기 속에는 끈질긴 믿음과 깊은 겸손이라는 영적 진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본문을 구조에 따라 주해하며, 그 깊이를 묵상으로 풀어내고자 합니다.
끊임없이 구하라 – 끈질긴 믿음의 능력
예수께서는 비유를 통해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1절)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십니다. 본문에서 '항상'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πᾶν καιρὸν(pan kairon)”인데, 이는 단지 시간의 연속성이 아니라, 모든 삶의 상황 속에서라는 보다 넓은 의미를 지닙니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조건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는 우리의 삶 전반을 아우르는 지속적인 태도이며, 영적 생명력의 흐름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과부는 사회적으로 가장 약한 존재였습니다. 당시 유대사회에서 과부는 법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보호받기 어려운 처지에 있었으며, 대개는 남편이 없기에 생계 유지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재판관에게 끊임없이 간청합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끈질김’입니다. 헬라어 원어로 '끈질기게 간청하다'는 표현은 “ἐρχομένη ἐνοχλεῖ με(erchomenē enochlei me)”로, ‘계속해서 찾아와 나를 괴롭힌다’는 뜻입니다. 마치 문을 두드리며 멈추지 않는 간절함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2절) 자로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동기가 전혀 없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결국 과부의 끊임없는 요청에 굴복하여 그녀의 원한을 풀어 줍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을 이 재판관에 비유한 것이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되는 하나님의 성품을 부각시키기 위한 대비적 장치입니다. 불의한 자도 끈질긴 요청 앞에 움직이거늘, 하물며 의로우시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하신 자들의 간구를 듣지 않으시겠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은 매우 강력한 도전입니다.
여기서 ‘택하신 자들’이란 말은 구속 언약 안에 있는 자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선택된 자들을 뜻합니다. 그들은 단순한 기도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들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7절)고 반문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응답을 지연시키시는 것이 그들의 기도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마땅한 때에 더 큰 뜻과 자비로 응답하시기 위함이라는 진리를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은 정의(ἐκδίκησις, ekdikēsis)를 실행하시는 분이시며, 그분의 타이밍은 항상 옳습니다.
기도의 자리에 드러나는 내면의 실체
두 번째 비유는 성전에서 기도하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이야기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두 사람 모두 신실한 유대인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는 내면의 상태를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바리새인은 “자기 의를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9절)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는 기도 중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만, 그 감사의 내용은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자랑입니다.
“나는 토색, 불의, 간음을 하지 않으며 이 세리와도 같지 않다”는 말은 실제 감사가 아니라 타인을 비난함으로써 자신을 높이려는 교만한 말입니다. 그는 금식과 십일조라는 외적인 의를 내세우며, 자신의 경건함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의는 결국 하나님 앞에서는 더러운 누더기와 같은 자랑일 뿐입니다(사 64:6 참조). 바리새인의 기도는 실제로는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하는 독백에 불과합니다.
반면, 세리는 멀리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합니다. ‘가슴을 친다’는 행위는 고대 유대인의 회개 행위 가운데 가장 강렬한 표현 중 하나로, 자기 죄에 대한 깊은 통회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가 사용하는 표현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13절)는 단순한 연민의 호소가 아닙니다. 헬라어 “ἱλάσθητί μοι(hilastheti moi)”는 ‘나를 위한 속죄를 베풀어 주소서’라는 뜻으로, 이 표현은 히브리서에서 예수님의 대속 사역과 연결되어 사용되는 단어입니다(히 2:17 참조). 그는 하나님 앞에 자신이 아무 공로도 없음을 인정하며, 오직 은혜만을 구하는 심정으로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이 기도에 대해 “내려갔으니 오히려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14절)고 선포하십니다. 여기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헬라어 “δεδικαιωμένος(dedikaiōmenos)”는 법정적 선언으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죄 없는 자로 선언하신다는 뜻입니다. 이는 로마서에서 바울이 끊임없이 강조하는 ‘이신칭의(以信稱義)’의 핵심 구절입니다. 세리는 어떤 율법적 기준도 충족시키지 못했지만, 그의 겸손과 회개는 하나님의 의를 입는 자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 – 낮추는 자를 높이시는 은혜
기도의 자리에서 드러나는 진정한 영성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자신을 높였기에 결국 낮아졌고, 세리는 자신을 낮추었기에 하나님께서 높이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14절)는 선언은 단순한 윤리적 격언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통치 원리이며 종말론적 심판의 기준입니다.
이 원리는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에서도 반복되며,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는 항상 세상 질서와 반대되는 방식으로 살아야 함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종종 기도 속에서도 우리 자신을 포장하고 높이며, 하나님 앞에서조차 사람의 평가를 의식하려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며, 우리의 말보다 마음의 상태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본문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선명히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전적인 의존, 겸손한 마음,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태도입니다. 아무리 많은 기도를 드린다 해도 그것이 자기 자랑의 수단이 된다면, 그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낙심하지 않고,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자, 회개의 눈물로 하나님 앞에 서는 자가 참된 기도자입니다.
결론
누가복음 18장 1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은 기도의 본질을 꿰뚫는 예수님의 심오한 가르침입니다. 끈질긴 과부의 기도는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성전의 세리는 겸손과 회개의 심정을 보여줍니다. 기도는 단지 간구의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나의 위치를 바로 세우는 자리입니다. 기도는 내 뜻을 관철시키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앞에 내 삶을 내어드리는 순간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종종 바리새인처럼 자기 의에 빠지고, 과부처럼 조급함 속에 낙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8절). 이 질문은 기도에 대한 단순한 확인이 아니라, 믿음의 본질을 점검하라는 주님의 권면입니다. 참된 믿음은 기도의 자리에서 드러납니다. 낮아진 자리를 두려워하지 말고, 겸손히 주님 앞에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만나주시며, 응답하시며, 높이 드시는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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