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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주일 설교, 하나님의 손끝에서 빚어진 걸작

케리그마 2025.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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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너를 특별하게 만드셨어요

– 시편 139편 14절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우리가 너무도 소중하게 여기는 어린이 주일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보내주신 귀한 선물, 우리 아이들을 기억하며 예배하는 이 날에, 우리는 한 아이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놀라운 존재임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고자 합니다. 어린이는 하나님의 꿈이자, 미래이며, 이 땅에 심겨진 작은 천국의 씨앗입니다.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시편 139편 14절입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시편 139:14). 이 말씀은 다윗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존재에 대해 깊은 경외의 마음을 고백하는 시입니다. 그 안에는 창조주의 손길을 따라 빚어진 인간의 위대함과 그 안에 숨겨진 신비로움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끝에서 빚어진 걸작 (시편 139:14)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는 수많은 예술 작품이 있습니다. 화려한 그림, 정교한 조각, 때로는 단순한 선 하나에도 작가의 숨결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 기자는,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런 예술작품이라는 겁니다. 그것도 대충 만든 모형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끝에서 섬세하게 빚어진 걸작품, ‘기묘한’ 작품이라는 선언입니다.

‘기묘하다’는 말은 시적 언어입니다. 그 안에는 기이함, 신비로움, 그리고 감탄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칭찬을 넘어, 창조주 앞에서의 경외를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몸 하나하나가 얼마나 오묘하게 창조되었는지를 깨닫고, 이 고백을 드린 것입니다.

아이 하나하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의 웃음소리, 조그마한 손, 반짝이는 눈동자 속에는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경이로움이 담겨 있습니다. 아이들은 단순히 작기 때문에 귀여운 것이 아닙니다. 그 존재 안에 하나님이 담아두신 의도와 시적인 언어가 있기 때문에 존귀한 것입니다.

아이를 품에 안고 눈을 맞추는 순간, 우리는 창조주의 숨결을 느낍니다. 아이가 무엇을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있는 그 자체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가치 (시편 139:14)

요즘 세상은 아이들에게 자꾸 묻습니다. “넌 커서 뭐가 될 거니?” “성적은 어때?” “몇 등을 했니?” 세상은 결과로 사람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은 본질을 바라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미 기묘하게 지어진 존재다.”

이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기준은 파도처럼 변덕스럽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바위처럼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는 기준은 언제나 같습니다. 그것은 존재의 이유에 대한 사랑, 곧 하나님이 먼저 주신 사랑입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부모의 마음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갓난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 그 아이가 무엇을 했기 때문에 사랑하나요? 아닙니다. 그저 존재하기에, 그 생명이 내게 왔기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 하나님도 그러십니다. 우리는 그의 자녀로, 창조된 그 자체만으로도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교회는 그 가치를 일깨워주는 곳이어야 합니다. 비교와 경쟁이 아닌, 고유한 존귀함을 발견하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주일학교는 공부를 잘 하는 아이를 칭찬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각 아이의 존재를 축복하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어야 합니다. “넌 하나님의 눈동자야. 네가 특별한 건 너만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이야.”

하나님은 마음속 깊은 곳까지 아세요 (시편 139:1–3)

다윗은 시편 139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나의 모든 길을 익히 아시나이다” (시편 139:1–3).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습뿐 아니라, 깊은 속내, 말하지 못한 마음의 움직임까지 아시는 분이십니다.

아이들도 알고 보면 깊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순수하고 천진난만해 보일지 몰라도, 아이들의 마음에는 거대한 감정의 호수가 있습니다. 그 호수는 기쁨으로도 출렁이고, 때로는 슬픔과 외로움으로 조용히 흔들립니다. 하나님은 그 호수 속 깊은 바닥까지 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종종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에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눈치가 빠르고, 마음이 예민합니다. 친구와 다투었을 때, 부모에게 실망했을 때, 선생님의 말 한 마디에 상처받았을 때… 하나님은 그 모든 순간을 아시고,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아이들의 ‘정신적 안식처’가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울 수 있는 곳, 솔직히 말할 수 있는 곳, 하나님의 위로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어른들은 말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네 마음을 잘 아셔. 네 눈물이 하나님께는 기도가 된단다.”

하나님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세요 (에베소서 2:10)

에베소서 2장 1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에베소서 2:10). 이 구절은 우리 존재의 목적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여기서 ‘그가 만드신 바’는 헬라어로 ‘포이에마(poiēma)’, 곧 ‘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처럼 빚으셨습니다. 문장의 배열 하나까지 의미 없는 것이 없듯이, 우리의 생애도 하나하나 의미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자신의 시를 읽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그 시의 제목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아이들이 삶의 시를 아름답게 써 내려가도록 도와주는 존재입니다. 쓰임받기 위한 재료가 아니라, 하나님의 예술 작품임을 먼저 선포해야 합니다.

세상은 아이를 비교하고, 등급 매기고, 심지어는 쓸모없는 존재로 낙인찍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 하나의 실수도 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아이는 그의 계획 아래 조각된 유일무이한 보석입니다. 우리는 그 가치를 발굴하는 광부요, 격려하는 시인입니다. 아이들에게 말해줘야 합니다. “너는 하나님의 시야. 너는 잊힌 것이 아니라, 숨겨진 것이란다.”

아이의 눈에 눈물이 고이도록 외롭던 하루도, 하나님의 붓끝에선 아름다운 구절이 됩니다. 그 구절이 모여 인생이 되고, 그 인생은 하나님 나라를 밝히는 등불이 됩니다.

마무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시편 139편 14절을 통해 아이들의 존재가 얼마나 기이하고, 특별하고, 경이로운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 존재 하나하나에 하나님의 설계가 있고, 마음이 있고, 예술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경이로움을 찬양해야 합니다.

어린이 주일은 단지 ‘아이들을 위한 날’이 아닙니다. 그들을 하나님의 눈으로 다시 바라보는 날입니다. 아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신비를 다시 발견하고, 나 자신도 하나님의 포이에마임을 되새기는 날입니다. 이 날은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함을 다시 가슴에 품는 날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처음 지으셨을 때의 기쁨을 회복하는 날입니다.

아이들에게 전해주세요. “하나님은 너를 특별하게 만드셨어. 너는 하나님의 시야. 네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것만으로 이 땅은 조금 더 따뜻해졌단다.”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도 말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작품이다. 나는 실수가 아니라, 계획이다. 나는 쓰임받기 위한 그릇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기쁨이다.”

아이와 어른 모두, 하나님의 걸작으로 이 땅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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