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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9:97-112 묵상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케리그마 2025.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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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사랑하는 자의 삶

시편 119:97-112은 말씀을 사랑하는 자가 경험하는 지혜와 승리, 그리고 말씀을 따라 걷는 삶의 안전함을 증언합니다. 이 구절들은 단지 외적인 순종이 아니라, 말씀을 향한 깊은 애정과 내면의 일치를 드러냅니다. 말씀과 하나 된 삶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지혜롭게 하고, 죄로부터 보호하며, 고난 중에도 흔들림 없이 주님을 따라가게 합니다.

 

말씀을 사랑함에서 오는 지혜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97절). 이 고백은 단순한 감정의 표현을 넘어서,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하는 삶의 태도를 전제합니다. 여기서 ‘사랑한다’는 말은 히브리어 “אָהַבְתִּי”(아합티)로, 깊은 애착과 열정적 헌신을 나타냅니다. 사랑은 감정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지며, 그 행동은 ‘종일 묵상함’으로 표현됩니다. 묵상은 히브리어 “שִׂיחָה”(시하)로, 단지 생각하는 수준이 아니라, 입으로 중얼거리며 되뇌는 행위입니다. 말씀은 그저 한 번 듣고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하루 종일 마음과 입술을 떠나지 않는 생명줄이 됩니다.

 

그 사랑에서 비롯된 결과는 지혜입니다.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98절). 시편 기자는 말씀을 단순히 도덕의 규범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의 모든 순간에 그 말씀이 함께하는 인격적 동행으로 인식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인간의 경험이나 세상적 지식보다 더 뛰어난 지혜를 가져다줍니다. 여기서 ‘지혜롭게 하다’는 히브리어 “חָכַם”(하캄)은 단지 머리가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을 바르게 통찰하고 분별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99절에서도 “내가 주의 증거들을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라고 고백합니다. 스승은 지식의 전달자일 뿐이지만, 말씀은 마음을 밝히고 길을 여는 지혜의 샘입니다.

 

이어서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내가 노인보다 나으니이다”(100절)라고 고백합니다. 나이 많은 자보다 더 나은 통찰은 단지 연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삶으로 살아낸 결과임을 보여줍니다. 이는 지혜의 근원이 여호와 경외에 있다는 자문서의 진리와 깊이 연결됩니다. 말씀을 사랑하면 사람은 변하고, 지혜로워지고, 온전한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죄에서 나를 지키는 말씀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101절). 발을 금한다는 표현은 의지를 가지고 자기 행동을 조절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겠다는 결단은 실제 삶의 방향을 바꿉니다. 여기서 ‘금하다’는 히브리어 “כָּלָא”(칼라)는 억제하고 차단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는 단순히 소극적으로 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거룩을 추구하는 태도입니다.

 

또한 102절에서는 “주는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말씀을 가르치시는 분은 단지 문자로 기록된 성경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가르치시다’는 히브리어 “יָרָה”(야라)로, 방향을 정해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정보를 제공하는 분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잡아주시는 인도자이십니다. 그 인도는 우리가 죄악의 길에서 벗어나 진리의 길을 따르게 합니다.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는 말씀 자체가 달콤하게 여겨집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103절). 여기서 꿀보다 달다는 표현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실제 체험에서 비롯된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쓴 현실 속에서도 영혼을 달게 하고, 진리의 단맛을 입에 남깁니다.

 

“주의 법도들로 말미암아 내가 명철하게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104절). 말씀은 명철, 즉 통찰력을 줍니다. 그리고 그 통찰은 죄에 대한 분별력을 낳고, 죄를 미워하게 합니다. 죄와 싸우기 위한 첫걸음은 말씀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내 안에 뿌리내릴 때, 나는 죄를 분별하고 거룩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어두운 길을 비추는 말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105절). 이 구절은 시편 전체 중 가장 유명한 고백 중 하나입니다. 등과 빛은 모두 인도함과 계시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등’은 히브리어 “נֵר”(네르), ‘빛’은 “אוֹר”(오르)로 기록되어 있는데, 등불은 바로 앞을, 빛은 좀 더 멀리 있는 앞날을 밝히는 역할을 합니다. 말씀은 즉각적인 지침이면서 동시에 장기적인 인생의 방향을 비춰줍니다.

 

시인은 그 말씀을 따라 맹세하고, 확정하였다고 고백합니다(106절). “나는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맹세하다’는 히브리어 “שָׁבַע”(샤바)은 자기 자신에게 맹세한다는 강한 결단을 의미합니다. 말씀을 따라 살겠다는 다짐은 흔들리는 감정이 아니라 확고한 신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고난의 연속입니다.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107절). 시인은 말씀을 지키겠다고 맹세하지만, 고난은 끊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말씀은 생명을 살리는 능력으로 간절하게 요청됩니다. ‘살아나게 하소서’는 “חָיָה”(하야), 앞서 나왔던 단어입니다. 고난 속에 말씀은 생명을 다시 불어넣는 하나님의 호흡입니다.

 

시인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찬양을 드립니다(108절).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 입의 자원하는 찬물을 받으시고 주의 규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 자원하는 마음, 즉 ‘자원제’는 레위기의 헌물에서 기쁨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말씀은 억지로 지켜야 하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기쁨으로 드리는 자발적 헌신이 됩니다.

 

109절에서는 “내 생명이 항상 위기에 있으나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생명이 위태롭고, 악인의 올무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지만(110절), 말씀을 잊지 않고 떠나지 않겠다는 시인의 태도는 오직 말씀만이 유일한 길임을 고백하는 신자의 믿음입니다.

 

말씀은 단지 오늘의 위기를 넘기는 도구가 아니라, 영원한 유산입니다. “주의 증거들을 내가 영원히 내 기업으로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111절). 히브리어 ‘유산’은 “נַחֲלָה”(나할라)로, 분깃 혹은 할당된 땅을 뜻합니다. 말씀은 영혼의 기업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안정, 소망을 말씀이 주십니다.

 

결론: 기울어진 마음을 바로 세우는 말씀

시인은 마지막으로 “내가 주의 율례들을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항상 끝까지 행하리이다”(112절)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기울이다’는 히브리어 “נָטָה”(나타)는 방향을 바꾸고 몸을 향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말씀을 향해 기울어졌다는 고백은 단지 일시적인 열심이 아니라, 인생 전체의 방향성을 말합니다. ‘항상’, ‘끝까지’란 표현은 신실한 인내를 보여줍니다.

 

신자의 삶은 말씀을 향해 기울어진 마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세상의 소리에 흔들릴지라도, 말씀을 향해 기울어진 그 마음은 결국 하나님의 길로 걸어가게 합니다. 그 말씀은 우리를 죄에서 보호하고, 고난 중에도 살게 하며, 인생의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됩니다.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가장 확실한 인도이며, 그 말씀을 사랑하는 자는 결국 승리하게 됩니다.

 


매일성경 5월 본문입니다. 일별 묵상 본문을 클릭하시면 각 본문에 따라 묵상을 따라 설교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매일 말씀 묵상을 통해 은혜로운 5월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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