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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강해

시편 1편 강해

by 케리그마 2022.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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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편 강해

[설교] 복 있는 사람은(1) ~을 하지 않는다.

시편은 포로기 이후에 편집이 완성된 것으로 봅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자들은 비록 선민이라 할지라도 징벌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들은 고국으로 다시 돌아와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지키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그동안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했던 자신들의 고백을 담은 내용들을 다섯 권의 책으로 편집하게 됩니다.(시편은 5권으로 되어 있음) 모세의 기도나 노래, 다윗의 고백 등을 담은 조상들의 고백을 정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편 전체를 대표할만한 시편을 정하게 되는 데 그게 바로 시편 1편입니다. 시편 1편은 시편 전체의 요약이자 정의이며, 시편을 여는 문이기도 합니다. 시편 1편을 통해 그들은 하나님께 사랑받는 비결이 무엇이 고민하며 지금까지의 모든 고백을 담게 됩니다. 핵심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해야 한다'는 2절입니다. 시편 전체는 시편 1편 2절의 해석이자 주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는 자들은 먼저 버려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 내용이 1절에 담겨 있습니다. 세 가지를 말합니다. 악인들의 꾀, 죄인들의 길, 오만한 자들의 자리입니다.

 

1)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는다.

가장 먼저 버려야할 것은 '악인들의 꾀'입니다. 꾀의 히브리어 '에차-'는 조언, 상담, 지혜, 생각, 계획 등을 말합니다. 여기서 '따르다'는 히브리어 '할라크'로 걷는다는 뜻입니다. 영어 성경은  walk로 번역한 곳이 많습니다. 복된 사람이 되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악인들의 생각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 그들의 조언, 그들이 지식 등을 버려야 합니다. 걷는다는 표현은 행동하다 실천하다를 말합니다.

 

잘못된 생각이나 계획을 갖고 있는 한 절대 하나님께 복을 얻지 못합니다. 먼저 악인들의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모든 행동은 마음으로부터 나옵니다. 생각이 잘못되었으면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2)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는다.

두 번째 버려야할 것은 '죄인들의 길에 서는 것'입니다. 동사 '로(not)'는 악인들의 꾀와 죄인들의 길을 함께 부정합니다. 즉 두 가지는 한 곳에 묶여 있습니다. 하여튼 죄인들의 길에서 '길' '데렉크'는 방법, 행동, 길 등을 말합니다. 삶의 방식을 말합니다. 처음에는 그들의 말을 듣고 몇 번 따라 해 봅니다. 몇 번 따라 하다 이제는 그것이 자신의 습관이 되고 버릇이 됩니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은 쉽습니다. 모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처음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되돌아 봅시다. 우리 안에 나쁜 습관, 나쁜 삶의 방식이 있다면 지금 빨리 그만두어야 합니다.

 

3)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

세 번째 버려야할 것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악인들이 마지막 모습은 고정된 자리에 있습니다. 몇 번 따라한 것이 삶의 습관이 되고, 나중에는 고착이 되어 더 이상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오만은 조롱하다 비웃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들을 조롱하고 비웃습니다. 전형적인 악인의 모습니다.

 

악인은 하루 아침에 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천천히 서서히 변해갔습니다. 결국 그는 더 이상 나빠질 수는 악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의 속 생각까지 완전히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모든 모든 것을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결론

마지막 결론은 '그럼 우리를 무엇을 해야 하는가?'입니다. 성경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대안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말씀이 채워질 때 모든 악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설교] 복있는 사람은(2) ~을 해야 한다.

시편 1편 두 번째 시간입니다. 두 번째는 복 있는 사람의 특징이 '하지 말아야 한다'의 부정적 측면이 아닌 이제는 '~을 해야 한다'는 긍정적 측면을 보도록 합시다. 그것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2절은 두 개의 문단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1) 여호와의 법(토라)를 즐거워한다. + 낮과 밤으로 묵상한다.(하가-)

두 문장은 인과 관계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이 너무 즐겁기 때문에 밤낮으로 묵상(즐기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두 문장을 통해 복 있는 사람의 본질, 또는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오직(키-임)

오직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키-임은 인과형 접속사 형태이니다. 특히 임(אִם)은 부정형으로 영어로는 But으로 번역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부정과 동시에 '오직(only)'로 번역해야 합니다. 하지만 but 역시 내포하고 있습니다. 2절은 앞선 1절과 반대의 주제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 단어를 통하여 우리가 진정한 복을 받으려면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가를 분명히 알려 줍니다. 이 단어는 단호함, 또는 명확함을 의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당연히 여호와의 율법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수많은 신들 중의 한 신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오직 유일한 신이시며, 유일한 답이며, 유일한 구원자로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본문이 의도하는 바입니다.

 

2)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라.

두 번째는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두 문장 중에서 첫 번째 문장에 속합니다. 첫 번째 문장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라'입니다. 여기서 '즐겁다'는 3인칭 단수 남성 명사 형태로 그가 즐거워한다.입니다. 우리는 이 문장에서 곧바로 공자의 <논어>의 한 구절을 떠 올릴 있습니다. 논어(論語)옹야편(雍也篇)에 보면 이런 표편이 있습니다.

  • 知之者는 不如好之者요, 好之者는 不如樂之者니라.
  • 지지자는 불여호지자요, 호지자는 불여락지자니라.
  •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좋아함이 얼마나 큰 능력인지를 보여주는 고사성어입니다. 하지만 시편은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갑니다. 1절에서 악인은 악인들의 꾀를 좋아했습니다. 그것에 푹 빠져 결국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의인은 악인들의 꾀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좋아합니다. 좋아하니 끌리고 그것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본질이 다른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양의 문 또는 목자로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요 10:1-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결국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자들,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지 않는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약적으로 표현하면 성령이 내주 하심으로 거듭난 영혼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것입니다. 2절은 엄밀하게 선언이자 심판입니다.

 

3) 여호와의 율법을 묵상하라.

세 번째는 여호와의 율법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묵상하다'의 히브리어 '하가-'는 되네이다.는 뜻으로 입으로 중얼거린다는 뜻입니다.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입으로 중얼거리는 것입니다. 현대는 묵독이 일반화되었지만 불과 한 세기만 해도 읽기는 곧 낭독, 즉 소리 내어 읽는 것을 말했습니다. 이것이 묵상하다의 뜻입니다.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고, 몸으로 실천하는 방법이 히브리인들의 되새김, 하가의 뜻입니다. 입을 통해 고백함으로 여호와의 율법이 우리에게서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주야는 계속 항상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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