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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성경신학적 고찰

케리그마 2025.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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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24장을 중심으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

'숨어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개론적인 글입니다. 개혁주의 관점에서 살펴본 글입니다. 욥기 24장을 중심으로 작성된 글로 협소하지만 하나님의 신비를 이해하는 개론적 글로 이해하고 읽기 바랍니다.

서론: 하나님의 침묵과 숨어 계심의 신비

신자의 삶 가운데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은, 고난의 한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을 때입니다. 기도는 하늘에 닿지 않는 것 같고, 하나님의 도우심은 너무 늦은 것처럼 느껴질 때, 성도는 깊은 혼란과 영적 갈등 속에 들어갑니다. 이러한 정황을 가장 실감 나게 묘사한 본문 중 하나가 욥기 24장입니다. 욥은 그 장에서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통을 묵상하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심판의 때를 정하지 않으시는지 묻습니다(욥 24:1). 이 질문은 단순한 의문을 넘어서, 숨어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학적 고뇌를 드러냅니다.

 

이 글에서는 욥기 24장을 중심으로, 성경 전체를 아우르며 하나님이 왜 숨어 계시는지를 살피고, 그 신학적 의미를 개혁주의 보수적 관점에서 정리하고자 합니다.

 

1. 욥기 24장과 하나님의 숨어 계심

욥기 24장에서 욥은 하나님의 심판이 지연되고 있음에 대해 탄식합니다. 그는 악인들이 밤에 죄를 범하고, 가난한 자들이 억압당하며, 정의가 땅에서 무너지는 현실을 바라보며 깊은 좌절감을 표현합니다. "어찌하여 전능자는 때를 정해 놓지 아니하셨는고? 그의 아는 자들이 그의 날을 보지 못하는고"(욥 24:1)라는 물음은 하나님의 정의가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절규입니다.

 

욥의 시각에서는 하나님이 그 얼굴을 숨기고 계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분은 계시되 침묵하십니다. 그분은 능히 구원하실 수 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 듯 보입니다. 욥은 자신이 의로운 길을 걸어왔음을 확신하면서도, 하나님이 그 길에서 얼굴을 숨기고 계신 것 같은 상황에서 신앙의 갈등을 겪습니다.

 

이러한 탄식은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불의가 계속되도록 허용하시고도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일 때 성도가 갖게 되는 영적 반응을 대표합니다.

 

2. 성경 전체에 나타난 하나님의 숨어 계심

하나님이 숨어 계시는 현상은 욥기뿐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반복되는 신학적 주제입니다. 대표적으로 시편 10편에서 시인은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시 10:1). 시편 22편에서도 다윗은 "내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시 22:1)라고 절규합니다. 이는 단순한 정서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가려졌다고 느껴지는 상황 속에서 성도가 겪는 깊은 신앙적 위기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는 참으로 자신을 숨기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사 45:15). 이는 하나님의 숨어 계심이 단순한 소극적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능동적으로 일어나는 신비로운 방식임을 보여줍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도 하나님의 임재와 숨어 계심이 교차되는 긴장의 연속입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명백히 나타나셨지만, 사사기나 열왕기에서는 종종 그 얼굴을 숨기십니다. 심지어 성전이 무너지고 포로로 끌려가던 바벨론 포로기에는 하나님이 철저히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신약에서도 이 주제는 계속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마지막 외침은 욥기와 시편에서 이어져온 신학적 맥락 위에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이는 하나님과 아들의 단절을 의미하기보다, 인간이 겪는 가장 깊은 하나님의 부재의 체험을 예수께서 친히 감당하신 사건입니다.

 

3. 하나님의 숨어 계심에 대한 개혁주의적 해석

개혁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숨어 계심을 하나님의 주권, 섭리, 예정의 교리 안에서 해석합니다. 하나님은 절대주권을 가지신 분이시며, 그 뜻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감춰진 뜻(Deus absconditus)과 드러난 뜻(Deus revelatus)으로 구분되며, 숨어 계시는 하나님은 바로 이 감춰진 뜻의 영역에 해당합니다.

 

칼빈은 그의 저서 『기독교강요』에서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를 시험하시기 위하여 그의 얼굴을 숨기신다"고 말합니다. 이는 신자의 믿음을 더욱 순전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의도된 시험이며, 그 과정 속에서 성도는 더 깊은 신뢰로 자라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숨어 계심은 결코 무관심이 아니며, 우리를 버리셨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부모가 아이에게 자율성을 훈련시키기 위해 잠시 물러서는 것과 같습니다. 오히려 그 숨어 계심 속에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5장 5항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여러 가지 죄를 징계하기 위하여, 그들로 하여금 시험에 빠지게 하시고, 한동안 그들로부터 그의 빛을 거두심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알게 하시고, 그들이 자신을 더욱 낮추며, 하나님을 더 사모하도록 만드신다." 이는 하나님의 숨어 계심이 단지 징벌이 아닌, 영혼의 갱신을 위한 거룩한 도구임을 보여줍니다.

 

4. 숨어 계시는 하나님과 성도의 반응

욥은 하나님의 숨어 계심 앞에서도 믿음을 놓지 않습니다. 그는 비록 하나님이 지금 보이지 않지만, "내가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라고 고백합니다. 이는 숨어 계시는 하나님을 향한 신자의 모범적인 태도를 보여줍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침묵과 숨겨진 뜻 속에서도 여전히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다윗이 그랬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 위에서 그 절정을 보여주셨습니다. 숨어 계시는 하나님 앞에 서는 성도는 눈에 보이는 것에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과 약속에 의지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고후 5:7)의 신앙입니다.

 

더 나아가, 숨어 계시는 하나님은 신자의 신앙을 성숙시키는 도구로 작용합니다. 인간의 감정과 경험에 의존하는 믿음은 일시적이지만, 말씀과 언약 위에 세워진 믿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우리가 더욱 말씀에 붙들리도록 이끄십니다.

 

결론: 숨어 계시는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신다

하나님은 때때로 숨어 계시지만, 그 침묵은 결코 부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의 깊은 섭리와 은혜가 숨어 있는 방식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욥기 24장의 욥처럼, 우리도 세상의 불의와 고통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침묵 앞에 당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욥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정의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숨어 계시지만, 버리시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멀리 계신 것 같지만, 오히려 더 가까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 숨어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더욱 겸손히 무릎 꿇고, 그분의 말씀과 언약을 붙들며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은 보는 것을 넘어서는 순종이며, 숨어 계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진정한 본질이며, 영적 성숙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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