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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주일 설교, 누가복음 24:13-35 엠마오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다

케리그마 2025.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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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불타오른 심장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 그 위대한 날, 우리는 그 사건의 증언이 어떻게 우리의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누가복음 24장 13절부터 35절까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이야기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낙심한 자들의 여정 가운데 찾아오시고, 그들의 눈을 여시고, 다시 소망의 사람으로 회복시키시는지를 깊이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단지 어느 날 일어난 한 장면이 아닙니다. 그것은 부활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길 위에서, 인생의 혼란과 허탈함 속에서 주님을 놓쳐버린 우리의 심장에, 다시 불이 붙는 장면입니다. 부활은 교리 이전에 만남이며, 기적 이전에 눈뜸입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바로 ‘길 위’에서 시작됩니다.

 

낙심한 자의 발걸음 (눅 24:13-24)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 오 리 되는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면서"(눅 24:13)

엠마오로 가는 길은 도망치는 길이었습니다. 기대했던 예수가 죽으셨고, 무덤은 비어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 의미를 알 수 없었습니다. 두 제자의 발걸음은 무거웠고, 말들은 실망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과거를 복기하고 있었지만, 미래는 전혀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생의 한 장면을 봅니다. 우리의 신앙도 어느 순간 ‘엠마오’로 향할 때가 있습니다. 실망한 채 교회를 떠나고, 기도의 입술을 닫고, 부활의 메시지를 들었지만 믿지 못한 채 뒷걸음질치는 순간 말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조용히 우리 곁으로 다가오십니다.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눅 24:15-16)

 

예수님은 동행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은 가려졌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그들 곁에 계셨지만, 절망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이럴 때가 있습니다. 주님은 가까이 계시지만, 우리는 보지 못합니다. 슬픔은 눈을 흐리게 하고, 낙심은 인식을 왜곡시킵니다. 그러나 주님은 침묵하지 않으십니다. 질문하십니다. “무슨 일이냐?”

 

예언 속을 지나치며 (눅 24:25-27)

그들이 실망을 토로하자, 주님은 책망처럼 그러나 은혜로 말씀하십니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눅 24:25-26)

예수님은 그들에게 성경을 풀어 주십니다. 모세와 선지자들로부터 시작하여, 구약의 모든 구속사의 실타래를 푸시며, 메시야가 고난을 받아야 했던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종종 성경을 정보로 읽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그 말씀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성경은 부활의 영광을 증언하는 약속의 책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약속을 이루신 분이십니다. 말씀은 이론이 아니라, 살아 계신 그분을 만나는 통로입니다.

 

떡을 떼실 때에 눈이 열리다 (눅 24:28-31)

그들이 목적지에 다다르자, 예수님은 더 가시려는 듯 행동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을 강권하여 함께 머물게 합니다. 그리고 식탁에서 떡을 떼시는 순간, 그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눅 24:30-31)

 

얼마나 놀라운 순간입니까. 말씀으로 심장을 데우셨던 주님이, 떡을 떼실 때 그들의 눈을 여십니다. 떡을 떼심은 단지 식사의 제스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생명을 나누시는 구속의 행위였고, 최후의 만찬에서 흘렀던 사랑의 연장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성찬의 예고이며, 교회 공동체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자리의 상징입니다. 떡을 떼며 우리는 다시 믿음을 얻고, 다시 눈이 열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손에 쥐어진 떡이 우리의 메마른 심령을 깨우는 은혜의 조각이 되기를 바랍니다.

 

불붙는 가슴, 되돌아가는 길 (눅 24:32-35)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눅 24:32-33)

 

그들은 곧바로 일어나,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어둠이 내린 시간임에도, 그들은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그들의 심장은 불타오르고 있었고, 그 불은 새로운 사명을 안겨주었습니다. 낙심의 여정이 이제는 복음의 길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은 방향을 바꾸는 사건입니다. 실망의 길에서 믿음의 길로, 퇴장의 길에서 사명의 길로, ‘나는 더 이상 못 하겠습니다’의 자리에서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의 자리로 돌이키게 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주님의 말씀과 떡에서 시작됩니다.

 

그들이 돌아갔을 때, 다른 제자들과 함께 부활의 소식을 나누며 고백합니다.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고"(눅 24:34) 이제 그들의 믿음은 체험이 되었고, 체험은 증언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사명입니다.

 

마무리

사랑하는 여러분, 엠마오의 길은 슬픔에서 시작되었지만, 부활의 주님을 만남으로 인해 불붙는 가슴으로 바뀌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도 어쩌면 엠마오의 길을 걷고 있을지 모릅니다. 실망, 두려움, 낙심, 이해되지 않는 사건들 속에서 우리의 발걸음은 무겁고, 눈은 가려져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그런 우리 곁으로 오십니다. 질문하시고, 말씀하시고, 떡을 떼시며, 우리 안에 믿음의 불꽃을 다시 피워주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일어나라.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이 엠마오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동행하며, 그분의 말씀에 마음이 뜨거워지고, 그분의 손에 나눠주시는 떡으로 눈이 열리고, 다시 사명의 길로 나아가는 증인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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