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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주일 설교, 고린도전서 15:12-22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케리그마 2025.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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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이 날은 교회력의 중심이요, 신앙의 심장이 뜨겁게 뛰는 날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과연 무엇을 기념하고 있는가를 깊이 묵상하지 않으면, 이 절기조차도 관습과 상징의 연극으로 지나가 버릴 수 있습니다. 부활은 단지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류 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선언이며, 우리의 믿음과 영생의 기초가 되는 구속사의 핵심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본문은 고린도전서 15장 12절부터 22절까지입니다. 바울은 이 본문에서 우리 신앙의 기반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가정 하나를 던집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면"(고전 15:14) 이 가정은 곧, 우리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분이 부활하셨다면? 그렇다면 그 이후의 모든 현실은 새롭게 정의됩니다.

부활 없는 신앙은 공허한 울림입니다 (고전 15:12-14)

바울은 먼저 고린도 교회에 퍼지고 있던 잘못된 주장 하나를 언급합니다. "너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고전 15:12) 당시 헬라철학에 익숙했던 고린도인들은 육체의 부활을 비합리적이라 생각했습니다. 영혼만의 구원, 또는 일종의 신비적 해탈을 선호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고전 15:14) 여기서 ‘헛것’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케노스, 즉 본질이 없는 껍데기를 뜻합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복음은 껍데기요, 설교는 허공의 메아리요, 믿음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 찬양, 기도, 모든 헌신과 희생이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전제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그 전제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허물어집니다. 그러나 그 전제가 참되면, 우리 삶 전체가 부활의 논리로 다시 써지게 됩니다.

증인의 거짓됨, 그 치명적 모순 (고전 15:15-16)

바울은 이어서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라"(고전 15:15) 여기서 ‘거짓 증인’이란 단순한 착오가 아닙니다.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속이는 자, 가장 중한 신성모독자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사도들 모두가 지금까지 전해 온 복음이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환상을 본 것이 아니라, 거대한 사기를 저질렀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성도 여러분, 사도들은 거짓말쟁이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순교하였습니다. 불에 타 죽고, 칼에 찔리고,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자신이 본 것을 부정하지 않고, 들은 것을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허구가 만들어 낼 수 없는 믿음의 굳건함입니다.

부활의 목격자들은 진실이었습니다. 그들이 본 예수님은 죽음에서 일어나신 분이셨고, 그 사실은 모든 역사의 해석을 새롭게 했습니다.

죄 가운데 있는 자들이 되리라 (고전 15:17-18)

바울은 계속해서 부활이 없다면 어떤 결과가 뒤따르는지를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라"(고전 15:17-18)

여기서 ‘여전히 죄 가운데 있다’는 말은, 예수님의 죽음이 무의미해진다는 뜻입니다. 십자가는 단지 비극적 순교가 되고, 피 흘림은 아무 힘 없는 희생이 되며,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구속의 정점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안에서 죽은 자들은 ‘망했다’고 말합니다. 부활이 없다면, 그들은 그냥 흙으로 사라졌을 뿐입니다. 위로는 사라지고, 소망은 무너지고,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 됩니다. 이 얼마나 암담한 현실입니까.

그러나 그 반대의 진리가 있다면, 즉 부활이 실제라면, 우리는 결코 죄 가운데 있지 않으며, 죽은 자들은 결코 망하지 않았다는 선언이 됩니다.

부활하신 첫 열매 (고전 15:20-22)

그러나 바울은 드디어 그 침묵을 깨는 결정적 선언을 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여기서 ‘첫 열매’라는 표현은 히브리 전통의 맥락을 담고 있습니다. 유월절 다음 날, 초실절에 첫 곡식을 하나님께 드릴 때, 그것은 곧 전체 추수의 시작이자 보증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첫 수확입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모든 성도는 두 번째, 세 번째 열매가 되어 결국 하나님 나라의 거대한 추수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개인적 사건이 아니라, 종말적 사건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아담의 타락 이후 무너졌던 생명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 ‘새 창조의 첫 파문’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아담은 대표성이 있었습니다. 그의 타락으로 온 인류가 죄 아래 놓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대표성이 있습니다. 그분의 부활로 모든 믿는 자들이 생명 아래 놓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구속사의 역설입니다. 아담의 정원에서 시작된 죽음의 역사, 그것이 예수님의 빈 무덤에서 생명의 역사로 전환된 것입니다.

마무리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부활주일, 우리는 이 강력한 질문 하나 앞에 서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면?”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분은 다시 살아나셨고,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그분이 살아나셨기에 우리의 믿음은 공허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죄는 용서받았고, 죽음은 끝이 아니라 잠시 잠든 것입니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활은 단지 역사 속의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지배하는 능력이며, 미래를 보증하는 약속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만날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그리고 그분 안에서 먼저 떠난 이들을.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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