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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5:39~47 묵상,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케리그마 2025.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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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아래에서 시작된 고백과 장례의 순종

마가복음 15장 39절부터 47절은 예수님의 죽음 이후 벌어지는 반응들과 장례의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짧은 본문이지만, 이 안에는 십자가 아래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믿음의 반응, 제자들의 숨은 헌신,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준비된 장례가 담겨 있습니다.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이 장면은, 구속의 절정이자 동시에 믿음의 시작점이 되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참된 고백, 조용한 섬김,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질서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닌, 오늘 우리의 신앙의 자리에서 되묻게 되는 실천적 요청이기도 합니다.

이방인의 고백, 믿음의 시작이 되다

예수님의 운명 직후, 가장 먼저 반응한 이는 놀랍게도 로마 백부장이었습니다.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운명하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39절). 이 고백은 마가복음 전체의 흐름을 요약하는 믿음의 선언이며, 복음서의 신학적 중심을 이루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백부장은 로마 군대의 장교로, 유대인들과는 문화적, 종교적으로도 거리가 먼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죽음의 방식, 곧 침묵과 고통, 저주받은 자의 자리에서 끝까지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을 목격하며, 단순한 인간이 아님을 직감합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진실로”(alēthōs)는 확신을 담은 강조의 표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은 단순한 경외를 넘어 신앙 고백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는 마가복음 1장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선언하신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1:11)와 연결되며, 마가복음의 첫 구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1:1)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복음의 시작은 로마 병정의 입에서, 십자가 아래서 선언된 이 한마디로 완성됩니다. 역설적이게도, 이방인인 백부장은 유대인들이 거부한 메시야를 알아보고 고백한 최초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복음은 종종 우리가 생각하는 신실한 무리로부터가 아닌, 뜻밖의 자리, 뜻밖의 사람을 통해 시작되기도 합니다.

십자가 아래에서의 고백은 단지 감정의 반응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 앞에 엎드리는 믿음의 첫걸음입니다. 고통과 침묵의 십자가는 구원의 능력이 되었고, 그 앞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종종 기적을 통해 믿음이 자란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고통과 죽음을 통해 생명의 씨앗을 뿌리십니다. 백부장의 고백은 그 증거입니다. 그리고 이 고백은 오늘 우리에게도 던지는 질문이 됩니다.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어떤 고백을 하고 있는가? 그 고백이 삶의 방향을 바꾸는 진정한 믿음의 출발점이 되고 있는가?

묵묵히 지켜본 여인들, 십자가의 증인이 되다

예수님의 죽음 앞에 제자들은 모두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40절)라고 기록합니다. 마리아, 또 다른 마리아, 살로메. 이들은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며 섬기던 자들로, 예수님의 사역을 실제로 뒷받침했던 조용한 동역자들이었습니다.

여기서 “섬기던”이라는 표현은 헬라어로 diakoneō로, 단순한 봉사가 아닌, 헌신적 사역을 의미합니다. 이는 마가복음 10장 45절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섬기러 오셨다”고 말씀하신 것과 동일한 어근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 섬김의 정신이 이 여인들 안에도 뿌리내려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여인들은 그 어떤 대단한 행위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자리를 지킨 자들이었습니다. 고통의 현장을 떠나지 않고, 멀리서나마 주님의 죽음을 지켜본 증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부활의 첫 목격자이자 전달자가 되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부활 이전의 시간은 여전히 어둠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킨 이 여인들의 모습은, 믿음의 정체성을 가장 명확히 드러냅니다. 신앙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교회와 사역 현장, 고난의 자리, 침묵의 순간에서도 주님 곁에 머무는 자들이 진정한 증인입니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억되지 않는 곳에서 믿음의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부활의 소식을 처음 알리십니다. 이는 신앙 공동체 안에서 여성의 역할과 신실한 증언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 두려움 속의 담대한 헌신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나타난 이는 아리마대 출신의 요셉이었습니다. 본문은 그가 “존귀한 공회원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였다고 소개합니다(43절). 이 표현은 그가 산헤드린이라는 유대 최고 의결기구의 일원이었으나, 예수님께 대한 확신과 소망을 품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인물은 요한복음과 누가복음을 통해 그가 비밀 제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그는 더 이상 숨어 있을 수 없었고, 신앙을 실천하는 용기를 냅니다.

그는 빌라도에게 담대히 나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요청합니다. “담대히”(tolmaō)라는 단어는 단순한 요청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이는 사회적 지위, 정치적 입지, 종교적 위험을 모두 무릅쓰고 드러낸 신앙의 고백이었습니다. 당시 로마법 아래서는 십자가 처형자는 반역자였고, 그 시신을 요구한다는 것은 그와 연관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누리던 권위와 안락함을 내려놓고, 죽은 주님의 몸을 직접 감싸 안는 헌신을 선택합니다. 그는 세마포를 사서 예수님의 시신을 정결하게 감싸고 바위 속 무덤에 안치합니다. 이는 부자만이 감당할 수 있었던 장례 방식이며, 이사야 53장 9절 “그의 무덤이 부자와 함께 되었다”는 예언의 성취입니다.

요셉의 행동은 단지 인도주의적 장례가 아닙니다. 이는 믿음의 고백이며, 메시야를 향한 경외의 표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던 자가, 그 나라를 여신 왕의 시신을 받아 안고 장례를 치르는 장면은 역설이자 신앙의 깊은 묵상거리입니다. 우리는 요셉을 통해 배웁니다. 신앙은 종종 조용히, 그러나 담대하게 손을 내미는 행위로 표현됩니다. 주님의 죽음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제자의 진정한 표지입니다.

결론

마가복음 15장 39절부터 47절까지는 예수님의 죽음 이후의 이야기지만, 그 죽음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생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방 백부장의 고백, 여인들의 묵묵한 지지, 요셉의 장례 헌신까지, 모두가 십자가 앞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믿음에 반응합니다. 그리고 그 반응들은 모두가 복음을 향한 작은 고백들이며, 교회를 세우는 씨앗이 됩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묻게 됩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고백하고 있는가? 주님 곁에 묵묵히 머물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과 여론, 두려움 속에 숨어 있는가? 하나님은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통해 복음의 문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길을 따르는 자들을 부르십니다. 복음은 고난을 통해 세워지고, 그 고난을 감싸 안는 자들을 통해 이어집니다.

십자가는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그 아래에서 고백이 일어났고, 증인이 세워졌고, 헌신이 드려졌습니다. 이제 우리도 그 자리에서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고백하고, 머물며, 장례까지 감당할 각오로 주님을 따르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 길이 단지 눈물과 헌신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아침을 향해 나아가는 길임을 기억하며, 오늘도 십자가 곁에 서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생명의 삶] 2025년 월 묵상 본문입니다.  묵상 본문을 클릭하시면 각 본문에 따라 묵상을 따라 설교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는 복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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