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1:20 - 21:28 묵상,
구속의 때를 기다리라 – 심판 속에 드러나는 소망의 징조
누가복음 21장 20절부터 28절은 예루살렘 멸망에 관한 예언과 인자의 재림에 대한 예고가 맞물려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눈앞에 임할 현실적 심판과, 그 이후 도래할 종말의 징조들을 함께 말씀하시며, 제자들이 그 가운데서 어떻게 깨어 있고 소망 중에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이 말씀은 단지 미래를 예견하신 예언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지금’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해주는 현재적 경고이며, 동시에 장차 도래할 구원의 확실한 약속입니다.
무너질 성과 피할 길 – 심판은 반드시 온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20절)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실제 역사 속에서 A.D. 70년 로마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된 사건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수도요, 하나님의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의 신앙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화려한 도성이 멸망할 것이라 단언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을 거부하고, 언약의 말씀에 불순종했던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무서운 멸망의 날을 “징벌의 날”(22절)이라 부르십니다. 헬라어로는 “ἡμέραι ἐκδικήσεως(hēmerai ekdikēseōs)”로, 이는 단순한 보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의 날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끝나는 날, 사람의 악이 쌓여 하나님의 거룩하신 공의가 실행되는 날, 그것이 징벌의 날입니다. 주님은 이를 통해 구약의 예언이 성취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날”이라는 표현은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을 비롯한 모든 예언서의 경고가 현실로 드러날 것을 뜻합니다.
이 날에는 특별히 여인들과 어린아이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23절). 이는 고통의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표현이며, 전쟁과 혼란 속에서 가장 연약한 자들이 당하게 될 비극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실제로 예루살렘의 함락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학살과 고통을 동반했습니다. 수십만 명이 굶주림으로, 칼에, 포로로 끌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 것이며 성 안에 있는 자들은 나올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라”(21절). 이것은 단순한 현실적 회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심판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순종하는 것임을 가르치십니다. 도성에 남아있지 말고, 세상의 중심이라 여겨지던 그 성에서 떠나라는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매우 강력한 영적 메시지를 던집니다. 우리가 의지하고 집착하는 모든 세상적 구조, 인간적 안전망은 결국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방인의 때, 그리고 종말의 징조
예수님은 24절에서 중요한 개념 하나를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에게 짓밟히리니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그리하리라.” 여기서 ‘이방인의 때’는 헬라어로 “καιροὶ ἐθνῶν(kairoi ethnōn)”이며,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방인들이 구원의 역사의 주 무대가 되는 시기를 말합니다. 이는 복음이 유대인을 넘어서 온 세계로 확장될 것을 뜻하며, 사도 바울이 로마서 11장에서 언급한 ‘이방인의 충만한 수’와도 연결됩니다.
즉, 예루살렘이 이방인에게 짓밟힌다는 말은 단지 정치적 현실이 아니라, 복음의 시대가 이방을 통해 확장되는 신학적 시간표임을 보여줍니다. 이 시기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하나님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 가운데서 택하신 자들을 부르시는 사역을 진행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이방인의 때’를 살아가는 세대이며, 복음 전파의 사명을 지닌 자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방인의 때가 끝나면, 하늘과 땅에 엄청난 징조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해와 달과 별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 중에 곤고하리라”(25절). 여기서 말하는 징조들은 단지 자연현상의 변화가 아니라, 창조 질서 전반에 걸친 심판의 표현이며, 인간 존재의 무력함과 종말적 두려움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여 기절하리니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26절). 하늘의 권능이 흔들리는 것, 이는 천체의 균형이 무너지고 세상의 모든 기반이 흔들릴 날이 오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표현은 예언적 이미지로서 종말의 심각성과 급박함을 드러내며, 오직 하나님의 통치만이 그 날에 서 있게 될 것임을 경고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러나 그 어두움의 절정에서 가장 빛나는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십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27절). 여기서 ‘인자’는 단순히 인류를 대표하는 존재가 아니라, 다니엘서 7장에서 말씀한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영광의 주’를 뜻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재림을 가리키는 명백한 선언이며, 심판과 동시에 구원의 날이 도래할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머리를 들라 – 구속의 날이 가까웠느니라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28절). 이 짧은 말씀은 절망 속에서 빛나는 구원의 선언이며, 주님의 백성에게만 주시는 확신의 위로입니다.
‘일어나 머리를 들라’는 말은 단순히 고개를 들라는 동작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적 태도를 말합니다. 세상이 흔들릴 때,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 때, 신자는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구원의 주님을 기대해야 합니다. 세상의 심판이 임하는 그날은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속량’이 완성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속량’이란 헬라어로 “ἀπολύτρωσις(apolytrōsis)”로, 값을 지불하고 자유케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를 사셨으며, 그 구속은 재림의 날에 완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종말을 두려움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속량이 완성되는 그날을 기다리며, 그날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거룩하고 담대하게 살아갑니다.
오늘 우리는 수많은 전쟁의 소식, 자연 재해, 세계적 불안정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어떤 이는 두려움에 빠집니다. 그러나 주님의 백성은 달라야 합니다. 우리는 이 모든 일이 임할 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들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날이 속량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자에게는 종말이 끝이 아니라 완성이며, 두려움이 아니라 영광입니다.
결론
누가복음 21장 20절부터 28절은 예수님의 예언 가운데 가장 비통하면서도 가장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무너질 것이며, 세상의 질서 또한 흔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주님의 백성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보호받고, 인도받고, 결국 구속의 완성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종말의 날은 심판의 날이자 동시에 속량의 날입니다. 세상은 무너지지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서게 됩니다. 모든 것이 흔들릴 때 믿음은 더욱 빛납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머리를 들라.” 우리의 구속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흔들리는 세상 앞에서 눈을 들어 주를 바라보십시오. 혼란의 날에도 소망을 품으십시오. 무너지는 성전이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의 영광을 소망하십시오. 그날까지 믿음을 지키며 인내하며, 주님을 기다리는 복된 성도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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