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2:1 - 22:23 묵상, 유월절 어린양
유월절 어린양, 그리고 배반의 밤 – 사랑의 식탁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뜻
누가복음 22장 1절부터 23절은 예수님의 공생애가 십자가를 향해 마무리되어 가는 긴장감 속에서 전개됩니다. 유월절을 맞아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며 자신의 죽음과 새 언약을 선언하시고, 그 가운데 한 제자의 배반까지 예고하십니다. 본문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정점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복음의 심장입니다. 주님은 고난과 죽음을 앞두고도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시며, 자기를 주시는 사랑으로 새로운 언약을 맺으십니다.
유월절의 시작, 죽음을 준비하시는 예수님
본문은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다가오매”(1절)로 시작합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출애굽의 은혜를 기념하는 절기이며, 어린양의 피로 죽음의 심판이 넘어갔던 날입니다(출 12장 참조). 무교절은 유월절과 연결되어 있으며, 누룩 없는 빵을 먹으며 정결한 삶을 다짐하는 절기였습니다. 그러나 이 절기의 중심에는 언제나 ‘어린양의 피’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 유월절을 앞두고, 예수님은 자신이 참된 어린양이 되어 죽음의 심판을 대속하실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본문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도로 죽일까 궁리하니 이는 그들을 두려워함이러라”(2절)고 기록합니다. 그들은 백성의 반응을 의식하여 예수를 음모로 제거하려 합니다. 사람들은 절기를 준비하지만, 그 중심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제거하려는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유월절의 참된 의미가 왜곡된 현실입니다.
이 시점에서 사탄이 가룟 유다에게 들어가고(3절), 유다는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습니다. 그는 돈을 받고, 예수님을 팔기로 합의합니다. ‘사탄이 들어갔다’는 표현은 단순한 감정적 동요가 아니라, 악한 영의 실질적인 영향 아래 놓인 상태를 의미합니다. 유다는 물질적 욕망과 잘못된 기대 속에서 그리스도를 거부한 인물이며, 하나님의 구속계획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비극적인 인물입니다.
이처럼 유월절을 배경으로, 예수님의 죽음을 향한 분위기가 점차 구체화되고 있음을 누가는 의도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모든 음모와 배반을 알고 계시면서도,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준비하십니다. 그 만찬은 심판과 죽음이 아닌, 은혜와 사랑이 흐르는 자리였습니다.
준비된 식탁, 나누신 떡과 잔
6절부터 13절은 예수님께서 유월절 만찬을 준비하시는 장면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우리가 유월절을 먹을 수 있게 하여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라”(8절) 하십니다. 이때 예수님은 ‘물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라 하시며, 그를 따라가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이 장면은 모든 것이 주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아무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심지어 만찬 장소마저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유월절을 준비하고, 드디어 식탁이 차려집니다.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14-15절). 예수님은 이 마지막 식탁을 ‘간절히 원했다’고 하십니다. 헬라어로 ‘ἐπιθυμίᾳ ἐπεθύμησα(epithymia epethymēsa)’라는 표현은 ‘마음 깊이 갈망하다’는 뜻으로, 그분의 깊은 사랑과 소망이 담긴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이 식탁에서 단순히 식사를 나누신 것이 아닙니다. 떡을 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19절) 하시고, 잔을 주시며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20절)고 하십니다. 이는 단지 상징이 아니라, 곧 이루어질 십자가 사건의 구체적인 해석입니다. 주님의 몸은 찢기고, 피는 흘려질 것이며, 그것은 모든 신자들을 위한 대속의 행위가 될 것입니다.
특히 ‘새 언약’이라는 표현은 예레미야 31장 31절 이하의 예언을 성취하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옛 언약, 곧 율법에 근거한 언약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새로운 언약을 맺으시며, 사람들의 마음판에 하나님의 율법을 새기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잔은 그 약속의 실현이며, 우리가 믿음으로 그 언약에 참여하게 되는 길입니다.
성만찬은 단지 과거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삶 속에 끊임없이 적용되는 복음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매번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식탁은 단지 위로의 자리가 아니라, 헌신과 결단을 요구하는 자리입니다.
배반의 예고, 그러나 끝내 사랑하신 주님
그러나 이 사랑과 은혜의 식탁 한가운데서, 예수님은 충격적인 선언을 하십니다.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21절). 가장 친밀한 자리, 가장 복된 은혜의 현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배반자를 지목하십니다. 배반은 멀리 있는 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자가 합니다. 주님은 그것을 알고 계셨고, 그 고통을 감내하고 계셨습니다.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22절). 이 구절은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책임이 동시에 존재함을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던 일이었지만, 유다의 배반은 그의 책임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도덕적 책임을 면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거스르지 못하지만, 그 안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책임을 피할 수도 없습니다.
이 예고에 제자들은 서로 누구일까 하며 수군거립니다(23절). 그러나 이 장면 속에서 그들은 아직 자신을 돌아보는 영적 깊이에 이르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 대화는 결국 제자들 사이의 다툼(24절 이후)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이 가장 큰 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었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고난의 길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미숙한 제자들과 끝까지 식탁을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그 식탁은 바로 은혜의 자리, 죄인들을 위한 잔치의 시작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장면을 통해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를 다시금 확인합니다. 배반자도, 미성숙한 제자들도, 의심 많은 이들도 품으시고, 말씀을 나누시고, 자신의 몸을 내어주십니다.
결론
누가복음 22장 1절부터 23절까지의 말씀은 십자가를 앞둔 예수님의 사랑과 순종, 그리고 그 가운데 드러나는 인간의 연약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유월절은 오랜 전통 속에 이어져 왔지만, 이제 예수님 안에서 그 의미는 완전히 성취되고 완성됩니다. 그분은 친히 어린양이 되시고, 그 피로 새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유다는 그 식탁에서 배반의 길을 택했지만, 주님은 여전히 그를 향한 사랑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성만찬은 그런 사랑의 극치에서 시작된 은혜의 예식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식탁에 앉은 자로서, 주님의 살과 피를 기념할 뿐 아니라, 그 십자가를 나의 삶에 살아내는 책임을 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은 여전히 예수님을 외면하고, 종교는 때로 주님을 배반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도 식탁을 차리시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이 사랑 앞에, 우리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응답하며, 주의 길을 따르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식탁의 은혜가, 오늘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고, 끝까지 주님을 따르도록 이끌어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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