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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2:54 - 22:71 묵상, 베드로의 고백

케리그마 2025.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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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자리에서 피어나는 회복 – 부인과 심문 사이의 주님의 시선

누가복음 22장 54절부터 71절은 예수님의 체포 이후 대제사장의 집에서 진행된 첫 심문과, 그 장소에서 벌어진 베드로의 세 번 부인을 중심으로 구성됩니다. 이 본문은 겉으로 보면 실패와 좌절, 배신과 고통이 가득한 장면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인간의 연약함을 깊이 이해하시는 예수님의 눈길이 있고, 진리를 굽히지 않으시는 메시아의 위엄이 있으며, 결국 십자가의 길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흐르고 있습니다. 고난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붙들고 살아야 할지를 이 말씀은 분명히 보여줍니다.

 

따르되 멀찍이, 그리고 부인의 시작

예수께서 붙잡히신 직후 “그들이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54절)고 누가는 기록합니다. ‘멀찍이 따라간다’는 이 표현은 단지 물리적인 거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상태를 상징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버리진 않았지만, 함께 고난을 받기엔 두려웠습니다. 그는 따르되 안전거리를 두고, 손해 보지 않는 범위에서 주님을 지켜보는 신앙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이 장면은 우리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손해를 보거나 불이익이 생길 때는 신앙을 감추고 거리를 두려 하지 않습니까? 믿음이란 단지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멀찍이 따르는 신앙은 결국 시험 앞에 무너지게 됩니다.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집 뜰에 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둘러앉은 곳에 함께 앉습니다. 그 순간 한 여종이 그를 알아봅니다.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56절). 베드로는 곧바로 “여자여 나는 그를 알지 못하노라”(57절)고 부인합니다. 첫 번째 부인은 갑작스러운 상황 속에서 나온 반사적 반응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에도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조금 후 다른 사람이 베드로를 지목합니다. “너도 그 도당이라”(58절). 베드로는 이번에도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라”라고 부인합니다. 그리고 약 한 시간쯤 지나 또 다른 사람이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59절)고 말합니다. 세 번째 부인입니다. “이 사람아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60절). 이 부인은 단순한 거절이 아니라, 거의 맹세에 가까운 부정입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이 장면은 예수님의 경고가 현실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61절). 누가는 매우 섬세한 기록을 덧붙입니다. “닭이 곧 울더라.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을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주님의 시선이 베드로를 향합니다. 책망이 아닌, 정죄가 아닌, 사랑과 기억의 눈빛. 예수님은 그를 미워하지 않으셨고, 그의 실패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시선은 베드로의 마음을 꿰뚫고 들어와, 주님의 말씀이 기억나게 하셨고, 그로 하여금 통곡하게 만드셨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말씀을 기억할 때 시작됩니다. 통곡은 부끄러움의 감정이 아니라, 사랑 앞에서의 진실한 고백입니다. 그 자리가 회복의 시작입니다.

 

조롱받으시는 예수, 말없는 순종의 주님

그 시각, 예수님은 안에서 조롱과 고문을 당하고 계십니다. “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며”(63절), “그의 눈을 가리고 묻되 선지자 노릇하라”(64절), “네게 침 뱉는 자가 누구냐 알아맞혀 보라”는 조롱과 함께, “많은 다른 말로 욕하더라”(65절). 메시아를 향한 이 조롱은 인간의 악함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없이 그것을 견디십니다. 이 침묵은 무능이나 무감각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철저한 순종의 표현입니다. 주님은 변명하거나, 복수하지 않으시고, 고난을 침묵으로 받으십니다. 이사야 53장의 예언대로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 침묵은 곧 순종이며, 그 순종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길을 여는 열쇠가 됩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사람들에게 오해받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변명하고, 억울함을 풀기 위해 더 큰 소리를 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한 길에서 오히려 침묵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에 더 큰 관심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위해 말할 때가 있고, 때로는 진리를 위해 침묵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침묵은 진리의 후퇴가 아니라, 진리의 완성이었습니다. 그분은 조롱당함으로 높아지셨고, 침묵함으로 영원한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공회 앞에 선 진리, 그러나 굴복하지 않으시는 왕

날이 새자 공회, 즉 유대인의 최고 종교 재판기관이 예수님을 심문합니다. 그들은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67절)고 묻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진리를 알고자 하는 순수한 갈망이 아니라, 이미 결론을 내리고 그에 맞는 정죄를 찾기 위한 형식적 절차였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67절). 이는 단호한 선언입니다. 그들은 마음이 닫혀 있었고, 어떤 답변도 받아들이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그들에게 놀라운 진리를 선포하십니다. “이후에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하시니”(69절). 이는 다니엘 7장과 시편 110편을 종합하여 인용하신 것으로, 예수님께서 심판받는 자로 서 계시지만, 결국은 심판주로 다시 오실 분이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금은 공회 앞에서 재판받고 계시지만, 그날에는 온 인류가 그분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신성모독처럼 들렸습니다. 그들은 곧바로 묻습니다.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헬라어 표현은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기록되었지만, 그 의미는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곧 메시아이심을 결코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말합니다. “더 물을 것이 없도다. 친히 그의 입에서 들었노라 하더라.”(71절) 그들은 스스로 증거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예수님의 입술을 통해 구원의 복음이 선포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들은 고발하려 했지만, 주님은 스스로 구속사의 증거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진리 앞에 물러서지 않으셨고, 그 진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으셨습니다. 복음은 타협하지 않는 진리이며, 동시에 죄인을 향한 끝없는 사랑입니다. 그 진리를 향한 믿음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 비록 그 길이 고난의 길일지라도, 주님은 끝까지 그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결론

누가복음 22장 54절부터 71절은 베드로의 부인과 예수님의 심문이 교차되며 전개되는 매우 극적인 장면입니다. 베드로는 두려움 속에서 주님을 부인했지만, 주님의 시선을 통해 회복의 시작점을 맞이합니다. 예수님은 침묵 속에 조롱당하시고, 진리를 선포하며 자신을 희생의 길로 내어놓으십니다. 이 본문은 인간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보여주는 복음의 거울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처럼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시선은 여전히 우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 시선은 정죄가 아니라 회복의 시작이며, 실패 위에 다시 세우시는 은혜입니다. 또한 우리는 세상 앞에 진리를 말할 책임이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말없이 참을 때가 있고, 때로는 복음을 위해 담대히 말할 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분의 길을 따르고 있는가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모른다고 하지 말고, 나를 따르라.” 실패해도 괜찮습니다. 다시 돌아오면 됩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가 되십시오. 그 길의 끝에는, 침묵하시며 고난당하셨던 주님이 영광 중에 다시 오시는 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날, 우리도 담대히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매일성경 4월 본문입니다. 일별 묵상 본문을 클릭하시면 각 본문에 따라 묵상을 따라 설교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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