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6:13 - 8:4 묵상,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여
사랑의 무르익음, 연합을 향한 열망
아가서 6장 13절부터 8장 4절까지의 본문은 신랑과 신부 사이의 사랑이 단순한 감정의 교류를 넘어, 영적 연합과 구속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깊은 흐름을 담고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의 춤과 아름다움을 향한 찬사, 사랑의 완숙함을 표현하는 대화, 그리고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친밀한 사랑의 열망은 모두, 교회와 그리스도, 그리고 성도의 내면에서 자라나는 하나님과의 연합에 대한 복음적 그림을 보여줍니다.
돌아오라 술람미야, 사랑의 춤을 추는 자여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여, 돌아오라 우리가 너를 보게 하라” (아가 6:13)
본문은 다시 한 번 술람미 여인을 부르는 목소리로 시작됩니다. 술람미는 ‘평화의 사람’이라는 의미로, 히브리어 ‘슐로밋(שׁוּלַמִּית)’은 ‘샬롬’에서 파생된 이름입니다. 이는 회복된 교회의 정체성이며, 하나님의 평강 가운데 거하는 신부를 상징합니다. 그녀는 단지 혼자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라, 공동체로부터 부름받는 존재입니다.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움은 공동체적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할 사랑의 춤입니다.
이 춤은 단순한 유희가 아닙니다. 이는 “마하나임에서 춤추는 것”이라고 표현되는데, 마하나임은 창세기 32장에서 야곱이 하나님의 군대를 만난 장소입니다. 따라서 이 춤은 예배적이고 신비로운 성격을 가집니다. 사랑은 공연이 아니라 예배입니다. 교회는 세상에 보여주기 위한 무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마하나임의 춤터입니다.
신랑은 신부의 춤을 찬양하며, 그녀를 두 진영으로 나뉘는 군대처럼 장엄하게 여깁니다. “두 진영을 향한 듯한 모습이로구나”라는 말은 히브리어 ‘כִּמְחֲלֻקֹת מַחֲנָיִם(킴하룩옷 마하나임)’으로, 하나님의 진군과 질서 있는 사랑을 상징합니다. 이는 성도의 공동체가 질서와 순결 안에서 하나님 앞에 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무르익은 사랑, 전인격적 찬미
“네 발이 신을 신고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아가 7:1)
7장에서는 신랑의 사랑이 더욱 세밀해지고 구체적으로 묘사됩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가 아니라, 오히려 발에서 머리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찬사가 이어집니다. 이는 신부의 존재 전체를 세밀하게 바라보고, 영혼의 깊이를 찬미하는 주님의 시선을 나타냅니다. ‘신을 신고 아름답다’는 표현은 행위와 삶의 걸음을 칭찬하는 것이며, 믿음의 길을 걷는 신부의 삶이 얼마나 주님 앞에서 존귀한지를 말합니다.
허리와 배, 가슴, 목, 눈, 코, 머리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의 묘사는 단순한 외모의 묘사가 아니라, 영적 상징이 가득한 고백입니다. 배는 풍요와 열매, 가슴은 양육과 생명의 보존, 목은 권위와 존엄을 의미합니다. 이 모든 표현 속에는 신부가 그리스도와의 연합 속에서 완성된 존재로 자라났다는 선언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7장 10절의 고백,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는 본문의 정점입니다. 이전에 “그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다”고 했던 고백에서 이제는 순서가 바뀝니다. 신부의 자아는 온전히 사랑하는 이 안에서 존재하게 됩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사모하다’로 번역된 “תָּשׁוּקָה(타슈카)”는 창세기 3장 16절과도 연결되는 단어로, 죄 이전의 순수한 갈망과 헌신을 뜻합니다. 이 고백은 단지 인간의 연애적 감정을 넘어, 구속받은 자가 주님을 향해 품는 전인격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사랑은 감추지 않는다, 은밀한 곳에서 공개되는 사랑
“오 내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자” (아가 7:11)
신부는 신랑에게 들로 나가자고 제안합니다. 이는 사랑이 개인적인 닫힌 공간에서 사회적인 영역으로 확장됨을 보여줍니다. 사랑은 감추는 것이 아니라, 열매 맺는 것이며, 사회적 책임을 포함합니다. 들판은 노동과 생명의 공간이며, 신랑과 함께 그곳을 거닐며 사랑의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신부의 의지는 곧 사명의 고백입니다.
그녀는 “이른 아침에 포도원으로 가자”고 제안합니다. 이는 단지 농사의 비유가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함께 가꾸자는 제안이며, 예배와 기도의 자리로 주님을 초청하는 언어입니다. 무화과가 열렸는지, 포도꽃이 피었는지를 확인하는 장면은 성도의 내면에서 자라나는 은혜의 열매를 돌보는 모습이며, 사랑이 구체적인 열매로 나타나야 한다는 진리를 말합니다.
이제 사랑은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성숙한 상태로 도달합니다. “사랑은 향기로 가득한 문 곁에 두었다”는 표현은 은밀했던 사랑이 이제는 드러나며, 자연스럽게 삶의 문턱을 넘는 사랑으로 성숙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사랑의 완전한 개방, 그리고 영적 친밀감이 완성되었음을 암시합니다.
마무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가서 6장 13절부터 8장 4절까지의 말씀은 사랑의 정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랑은 감정의 순간을 넘어서, 예배가 되고, 연합이 되며, 사명이 됩니다. 술람미 여인의 춤은 예배자의 춤이며, 마하나임의 은혜 안에서 드러나는 영광의 퍼포먼스입니다. 주님의 시선은 우리의 걸음 하나하나를 귀히 여기시며, 우리의 삶 전체를 찬미하십니다.
우리가 주님께 속하였다는 고백은 단지 신학적 선언이 아니라, 실제적인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신랑 되신 주님은 우리의 외면뿐 아니라 내면까지도 감찰하시며, 모든 상처와 과거를 덮으시고, 오히려 찬미의 언어로 회복시키십니다.
그리고 이제 그 사랑은 감추지 말아야 할 때입니다. 들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배의 문을 넘어, 삶의 포도원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거기서 주님과 함께 열매를 맺으며, 세상 앞에서 사랑의 향기를 풍기며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신부는 간청합니다. “내가 너를 붙잡고 내 어머니의 집으로, 나를 잉태한 이의 방에 이끌어 들이리라.” 이는 사랑이 삶의 뿌리까지 닿기를 바라는 기도이며, 하나님과의 연합이 내 모든 시작점으로 연결되기를 원하는 깊은 소원입니다. 사랑은 돌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다시 모시고, 처음의 자리로, 본질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짜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우리는 쉼을 얻습니다. “내가 너로 잔에 향기로운 술을 마시게 하리라.” 이 말은 곧,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실 때 비로소 사랑의 잔치가 완성된다는 복음의 언어입니다. 사랑은 자라고, 피고, 열매 맺고, 드러나고, 마침내 주님의 안식으로 들어갑니다. 지금도 주님은 그 연합으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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