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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8:5 - 8:14 묵상,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케리그마 2025.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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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인장으로 마음에 새기라

아가서의 마지막 본문인 8장 5절부터 14절은 사랑의 결실과 그 사랑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주는 고백으로 가득합니다. 시작은 광야에서 올라오는 신부의 회복된 모습으로부터 시작되어, 사랑을 인장처럼 마음에 새기라는 간절한 요청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신랑과 신부가 완전한 연합 속에서 사명을 나누며 종결됩니다. 이 본문은 단지 개인의 사랑을 넘어, 구속사적 맥락에서 하나님의 백성과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연합을 시적으로 노래하며, 사랑의 본질이 얼마나 강하고 거룩한지를 선포합니다.

광야에서 올라오는 신부, 회복의 증거

“그는 그의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광야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가” (아가 8:5)

이 장면은 극적인 전환의 상징입니다. 광야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시험과 연단,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는 장소였습니다. 그런 광야에서 이제 신부가 ‘그의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올라온다’는 것은 회복과 성숙, 그리고 신랑과의 연합이 완성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의지하다’는 말은 히브리어 “רָפַד(라파드)”에서 유래된 것으로, 단순히 기대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위탁하며 맡긴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제 신부는 자신만의 힘으로 걷지 않습니다. 오직 신랑, 곧 사랑하는 이에게 기대어 걷는 법을 배운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성숙입니다. 자신을 부정하고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는 삶, 그것이 광야에서의 성장을 통해 얻게 되는 열매입니다. 광야의 여인은 고난의 흔적을 지닌 존재이지만, 그 고난이 믿음의 순금으로 연단된 이후에 나타나는 모습은 ‘의지하는 자’로서의 존귀함입니다.

이어서 “사과나무 아래에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이는 신랑이 신부를 처음 만난 자리, 다시 말해 은혜가 시작된 장소를 회상하는 장면입니다. 사과나무는 생명과 회복의 상징이며, ‘깨우다’는 말은 영적 각성과 부르심을 암시합니다. 신랑은 그녀의 시작을 기억하고, 그녀의 잉태와 탄생, 곧 전 존재의 기원을 다시 상기시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언약적 사랑이 단지 현재뿐 아니라, 과거와 미래까지 포함하는 전방위적 사랑임을 보여줍니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같이 잔혹하다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인장 같이 팔에 두라” (아가 8:6)

아가서 전체에서 가장 깊고 밀도 높은 신학적 언어가 이 구절에 담겨 있습니다. ‘도장’과 ‘인장’은 히브리어 “חוֹתָם(호탐)”으로, 왕이나 주인이 자신의 소유를 표시하고 보호하며 증명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신부는 이제 자신이 신랑의 인장, 곧 주님의 확증된 소유가 되기를 요청합니다. 이 요청은 단순한 애정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의 본질을 이해한 자만이 할 수 있는 깊은 언약적 헌신의 고백입니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어로 ‘사랑’(אַהֲבָה, 아하바)은 감정 이상의 언약적 속성을 지닌 단어입니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실체이며, 그 어떤 것으로도 대적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택하신 사랑도 결코 변하거나 무너질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은 생명을 끊을 수는 있어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본질을 지닙니다. 죽음을 이긴 사랑, 바로 그것이 십자가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질투는 스올같이 잔혹하다고 합니다. 스올은 히브리어로 ‘무덤’, 또는 ‘음부’를 의미하며, 생명과 단절된 곳입니다. 사랑이 타락하면 질투가 되고, 질투는 본질적으로 파괴적입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질투는 인간의 소유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향해 가지시는 거룩한 열심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다른 신들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끝까지 질투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사랑은 무섭고도 깊은,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사랑입니다.

또한 사랑은 불처럼 타오릅니다. “그 기세는 불길 같으니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이 문장은 유일하게 아가서에서 ‘여호와’라는 이름이 직접 언급되는 구절입니다. 이는 사랑이 단순한 인간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로부터 오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여호와의 불’(שַׁלְהֶבֶתְיָה, 샬헤벳야)은 불의 심지 중 가장 강력한 부분을 가리키며, 완전한 열정과 순수한 심판, 동시에 가장 깊은 헌신을 상징합니다. 이 사랑은 태워 없애는 사랑이 아니라, 정결하게 하고 회복시키는 사랑입니다.

사랑의 열매와 마지막 초청

“우리는 작은 누이가 있는데 그에게 유방이 없도다” (아가 8:8)

이제 사랑은 공동체적 차원으로 확장됩니다. 성숙한 신부는 아직 성장하지 못한 ‘작은 누이’를 돌아봅니다. 이는 성숙한 교회가 연약한 자들을 돌보는 사명을 의미합니다. 작은 누이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지만, 성숙한 자는 그녀를 위한 계획과 보호의 마음을 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좋아하거든 우리는 은망대를 그를 위하여 세우리라.” 이는 보호와 세움, 그리고 그녀가 장차 사랑받을 존재가 되도록 준비시켜야 함을 말합니다.

성숙한 사랑은 자기만의 사랑에 머물지 않습니다. 이제 사랑은 다른 이를 세우는 것으로 확장됩니다. 신앙의 깊이는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가보다, 그 사랑을 어떻게 나누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연합이 깊어질수록 그 사람은 주변을 살피고, 연약한 자를 일으키는 자가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부는 자신의 상태를 고백합니다. “나는 성벽이라 내 유방은 망대 같으니 나는 그의 보기에 화평을 얻은 자 같도다.” ‘성벽’과 ‘망대’는 방어와 보호, 정결함을 상징합니다. 이제 그녀는 준비된 신부, 곧 연합의 합당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 고백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신분의 완전함, 사랑받을 자격을 얻은 자로서의 확신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구절은 신랑에게 드리는 초청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 위에서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라.” 이는 계시록 22장 20절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마라나타의 고백과 연결됩니다. 사랑은 끝을 향해 달립니다.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미 시작된 사랑은 종말을 향한 고백으로 이어집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갈망하는 신부의 마음이, 아가서의 마지막 문장에 담겨 있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가서의 마지막 장면은 사랑이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랑은 광야를 지나며 시작되고, 죽음을 통과하며 강해지며, 결국 공동체 안에서 열매를 맺고, 종말의 날에 주를 기다리는 고백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복음의 사랑이며, 하나님의 백성이 걸어가야 할 사랑의 여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장으로 삼으시고, 여호와의 불과 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태우시며,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도 그 사랑을 품고, 작은 누이들을 세워가며, 마침내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그의 보기에 화평을 얻은 자 같도다.”

그리고 우리는 고백해야 합니다. “오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이것이 아가서의 결론이자, 우리 신앙의 결론입니다. 지금도 그 사랑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우리는 끝까지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로 서 있어야 합니다.


매일성경 4월 본문입니다. 일별 묵상 본문을 클릭하시면 각 본문에 따라 묵상을 따라 설교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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