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5:2 - 6:3 묵상,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문을 두드리는 사랑, 다시 찾은 신랑
아가서 5장 2절에서 6장 3절까지는 주님의 임재를 향한 갈망과 안타까움, 회복과 연합의 여정을 그려낸 본문입니다. 사랑하는 자가 문을 두드리지만 때를 놓친 신부, 그리고 그분을 다시 찾아 나서는 간절한 여정, 결국 사랑 안에서 다시 회복되는 신랑과 신부의 관계는 구속사 전체를 향한 복음의 깊은 은유를 담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우리 신앙 안에서의 침체, 회복, 그리고 신실하신 주님의 사랑에 대한 가장 문학적이고도 영적인 묘사로 가득합니다.
문을 두드리시는 신랑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아가 5:2)
신부는 잠들어 있습니다. 육체는 쉼에 들었으나 마음은 깨어 있습니다. 여기서 ‘잠들다’는 히브리어 “יָשַׁנְתִּי(야샨티)”는 단지 수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무감각 상태를 은유적으로 표현합니다. 신앙 생활 중에도 우리는 어느새 일상의 피로와 습관 속에서 무뎌지고 주님의 임재에 민감하지 않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런 상태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분의 소리는 여전히 우리의 심령을 울리고 있습니다.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라고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은 다정하고 인격적입니다. 이는 단순한 문을 두드림이 아니라, 언약적 사랑의 호소입니다. ‘머리에는 이슬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다’는 표현은 주님이 얼마나 간절히 우리를 찾으시는지를 보여줍니다. 성경 전체를 통틀어 하나님께서 문을 두드리신다는 장면은 매우 특별한 은총의 모습입니다. 요한계시록 3:20에서도 예수님은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신다고 하십니다. 그 사랑은 강제하지 않으며, 기다리는 사랑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부는 이 사랑에 즉시 응답하지 못합니다.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는가”라는 말은 게으름과 자기중심성의 상징이며, 은혜의 순간을 유보하려는 우리의 모습을 투영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손을 넣으시는 주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었다’는 것은 주님의 인내와 끈질긴 사랑을 드러내며, 우리 심령을 다시 깨우는 은혜의 간섭입니다.
때늦은 응답, 그러나 끝나지 않은 사랑
“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내 사랑하는 자는 벌써 물러갔네” (아가 5:6)
신부는 뒤늦게 응답합니다. 마음이 감동되었고, 손에는 몰약이 흘렀습니다. 몰약은 성경에서 희생과 장례, 기름 부음을 의미합니다. 즉, 이제야 주님의 부르심이 얼마나 귀한지, 그분이 어떤 사랑으로 오셨는지를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신랑은 물러갔습니다. 이는 주님의 임재가 임의적이거나 조건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때에 맞는 순종과 응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교훈하는 것입니다. 은혜는 값없이 주어지지만, 응답이 없는 은혜는 유익을 잃을 수 있습니다.
신부는 거리를 나섭니다. 지난밤처럼 파수꾼을 만나지만, 이번에는 신부를 때리고 상하게 합니다. 여기서 파수꾼은 제도화된 종교나 율법의 차가운 질서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살아 있는 신앙 대신 형식과 외식이 앞설 때, 은혜를 갈망하는 이들은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러나 신부는 물러서지 않습니다. “예루살렘 여자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하며 신랑을 찾는 데 온 힘을 기울입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루살렘 여인들이 신랑에 대해 묻기 시작합니다.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자 가운데서 어떤 자이기에” 이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신부의 열정이 다른 이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뜻입니다. 참된 신앙은 고난 중에도 신실함을 지키는 가운데 타인을 감동시킵니다. 그리고 신부는 신랑의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금과 상아, 향유와 같은 표현은 신랑의 존귀함을 극찬하는 찬가입니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증언하는 교회의 사명을 상징합니다.
다시 찾은 사랑, 연합의 고백
“나의 사랑하는 자는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 동산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며 백합화 가운데에서 쉬는구나” (아가 6:2)
6장에 이르러 신부는 신랑의 거처를 압니다. “그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갔다”는 표현은 주님께서 여전히 우리 가운데 계시며, 자신의 교회, 곧 동산을 떠나지 않으셨음을 말합니다. 이는 요한복음 10장에서 양을 놓지 않으시는 선한 목자의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신부는 고백합니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의 것이요,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나의 것이로다.” 이 문장은 아가서의 중심 주제이자, 구속 언약의 핵심 진리입니다. 히브리어 원어는 단순한 소유 개념이 아니라, 상호적 관계와 깊은 헌신을 포함합니다. 이 고백은 주님의 소유 된 자만이 할 수 있는 신앙의 정수입니다. 관계는 회복되었고, 사랑은 더욱 성숙해졌습니다.
신랑의 자리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동산 가운데, 백합화 사이에서, 양 떼를 돌보시며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길을 잃고 헤매도, 주님의 자리는 늘 동일합니다. 그분은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우리가 일시적으로 그분을 놓쳤을 뿐입니다.
마무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본문은 우리의 신앙의 여러 장면을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의 부드러운 초청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피곤하고 무감각하여 그 음성을 지나치기도 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떠나지 않지만, 우리는 은혜의 때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와 갈망으로 다시 주님을 찾는 이에게는 반드시 회복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신랑을 향한 신부의 간절한 탐색은 결국 그분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게 만들고, 그 찬미는 다른 이들에게도 영향을 끼칩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주님은 떠나지 않으셨고, 동산에서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님을 다시 찾게 된 신부의 고백,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의 것이요, 그도 나의 것”이라는 이 언약의 언어는 우리의 심령에도 새겨져야 할 복음의 언어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지금 깨어 일어나 문을 여십시오. 사랑은 기다리고 있고, 우리는 다시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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