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증인들] 마태복음 28:1–8 무덤을 찾은 여인들
부활의 증인들: 무덤을 지나 다시 피어난 아침 (마태복음 28:1–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우리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거룩한 주일입니다. 부활절 아침은 단순히 한 명절이 아닙니다. 그 아침은 역사의 새벽이며, 어둠을 밀어낸 구속의 여명입니다. 우리가 함께 나눌 이 말씀은 그 첫 번째 새벽,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역전의 순간, 바로 그 부활의 현장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 말씀은 단지 기록된 문장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살아 있는 증언입니다. 사망이 이겼다고 여겨졌던 순간에, 주님의 생명은 고요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일어나셨습니다.
장례의 땅에 찾아온 생명의 바람 (마 28:1)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마 28:1)
밤이 끝나갈 무렵, 세상은 여전히 죽음의 기운에 젖어 있었습니다. 무덤은 그 죽음의 상징입니다. 슬픔의 조각들이 돌처럼 차가운 그 곳에서 마리아들은 여전히 주님을 찾아갑니다. 그들은 죽음을 돌보러 간 것이지만, 하나님은 생명을 준비해두셨습니다. 어둠은 깊었지만, 동녘은 틀어지고 있었습니다. 무덤을 향해 가는 발걸음은 무겁고, 마음은 아리지만 그 속에 하나님은 이미 새로운 시간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지요.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안식 후 첫날의 새벽"이라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단지 시간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창조의 첫날처럼, 새로운 시작의 은유입니다. 창세기의 혼돈 위에 말씀이 빛을 뿌렸던 것처럼, 그리스도는 무덤의 어둠에 생명의 빛을 다시 던지십니다. 죽음을 통과한 시간, 그것은 창조의 재현이며, 구속의 시작입니다. 그 새벽은 단지 해가 뜬 시간이 아니라, 어둠을 뚫고 오는 구원의 태양,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하늘의 진동, 땅의 경고 (마 28:2–4)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마 28:2–4)
땅이 흔들립니다. 죽음의 문이 열리는 순간, 피조물 전체가 반응합니다. 이 지진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닙니다. 창조주의 숨결이 무덤을 흔든 것입니다. 돌은 굴려졌고, 천사는 그 위에 앉았습니다. 사망이 상징하던 무게가, 이제 더 이상 사람을 억압하지 못하게 된 순간입니다. 이 지진은 구속사의 중력, 죄와 죽음의 도식이 깨어지는 순간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천사가 돌 위에 앉았다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자세가 아닙니다. 정복자의 좌정입니다. 돌은 무덤을 막던 방패였으나, 이제는 생명의 단상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목격한 병사들은 살아 있으나 마치 죽은 자처럼 떨고 있습니다. 무덤 앞에서 죽음은 초라해지고, 부활은 위엄을 드러냅니다. 살아계신 주님 앞에서 모든 권세와 두려움은 힘을 잃고, 무릎을 꿇습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부활이 어떤 능력인지를 알려줍니다. 무덤을 지키던 권력, 인간의 두려움, 로마의 창과 칼도 그리스도의 부활 앞에서는 떨고 서야 했습니다. 그 어떤 죽음도, 그 어떤 묶임도, 부활의 주님 앞에서는 무력합니다. 천사의 의자 삼은 돌은 더 이상 막힘의 상징이 아니라, 생명의 관문이 되었습니다.
말씀의 반전, 두려움 속 기쁨의 씨앗 (마 28:5–7)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그가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마 28:5–7)
천사는 두 여인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이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선포입니다. 사망의 그림자 아래 있던 자들에게, 이제 생명의 주가 일어나셨다는 선언입니다. 죽음이 이긴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이기셨다는 승리의 알림입니다. 죽음이 닫은 입은 다시 열렸고, 그 음성은 생명으로 울려 퍼졌습니다.
천사는 그들에게 주님의 부활을 목격한 첫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줍니다. 이제 이 여인들은 단순한 애도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살아계신 주님의 전령이 되었습니다. "그가 살아나셨다"는 말은 단지 부활의 정보가 아니라,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완성되었음을 알리는 복음의 중심입니다. 이는 창조주께서 죄와 죽음, 모든 무너진 것을 다시 회복하신다는 선언입니다.
갈릴리로 먼저 가신다는 말씀은 단순한 만남의 예고가 아닙니다. 갈릴리는 예수님이 처음 사역을 시작하신 곳입니다. 다시 갈릴리로 가신다는 것은, 다시 처음부터 교회를 세우신다는 상징입니다. 죽음을 지나 새로운 공동체, 부활의 공동체를 시작하신다는 선언입니다. 갈릴리는 낯설지만 친숙한 곳, 실패와 좌절을 딛고 다시 시작되는 부활의 현장입니다.
떨림과 기쁨의 동행 (마 28: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마 28:8)
그 여인들은 떨림과 기쁨을 안고 무덤을 떠납니다. 이 두 감정은 서로 모순되어 보이지만, 복음 안에서는 하나로 만납니다. 경외의 떨림, 그리고 구원의 기쁨. 바로 이것이 진정한 신앙의 정서입니다. 무덤 앞에서 눈물 흘리던 여인들이 이제는 생명의 증인으로 달려갑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빨리'와 '달음질'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죽음의 자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복음을 들고 달려가는 자로 변화된 것입니다. 부활의 복음은 단순히 듣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전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이 여인들처럼 부활을 목격한 자, 복음을 전할 사명을 받은 자입니다. 믿음은 느린 걸음으로 남지 않습니다. 부활을 만난 이들은 반드시 속도를 가집니다.
여기서 부활은 사건이 아니라 방향이 됩니다. 무덤에서 제자들에게, 절망에서 소망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우리는 모두 그 여인들의 발걸음을 이어가는 자들입니다. 부활은 나를 일으켜 세우는 능력이요, 나를 달리게 하는 복음입니다.
마무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본문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 아닙니다. 이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의 시작입니다.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은 죽음을 준비했지만, 하나님은 생명을 준비하셨습니다. 그 무덤은 비어 있었고, 그 돌은 굴려졌으며, 그 땅은 흔들렸고, 그 말은 선포되었습니다.
부활은 단지 죽음을 이긴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문이 열린 사건입니다. 그 열림은 오늘 우리 삶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기쁨으로 달려가야 할 이유,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이 부활의 아침에, 우리도 여인들처럼 달려 나아갑시다. 무덤이 아니라 생명을 향하여. 슬픔이 아니라 기쁨을 향하여. 부활의 증인으로 다시 살아갑시다. 무덤을 지나, 다시 피어난 아침으로 걸어갑시다. 우리도 새로운 갈릴리에서 주님을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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