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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증인들] 누가복음 24:13–35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

케리그마 2025.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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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증인들: 엠마오로 향한 마음의 불꽃 (누가복음 24:13–35)

부활의 아침에 우리는 상심한 마음으로 길을 따라 걷는 두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의 발걸음은 무거웠고, 그들의 말은 탄식으로 가득했습니다. 절망은 그들의 그림자였고, 실망은 그들의 대화였습니다. 패잔병 같은 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 위에 부활하신 주님이 함께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4장 13절부터 35절까지의 본문은 한 걸음 한 걸음, 우리 인생의 여정을 엠마오라는 도상에서 펼쳐 보여주는 거룩한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은 단지 부활의 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주님이 어떻게 우리와 동행하시는지를 깊이 있게 보여줍니다.

낙심한 자의 길 위에 찾아오신 주님 (눅 24:13–16)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눅 24:13–14)

부활의 날, 그 거룩한 아침에, 두 제자는 예루살렘을 등지고 엠마오로 향합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곳이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일어난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서 등을 돌리고 다른 마을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걸음은 실패와 상실의 여운을 안고 있었고, 그들의 대화는 무너진 희망의 파편을 주워 담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눈이 가리어져 주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눅 24:16). 눈이 가려졌다는 표현은 단순히 시각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의 어둠, 신앙의 침묵, 그리고 상처로 인한 감각의 마비를 상징합니다. 우리가 낙심 속에 있을 때, 주님은 이미 우리 곁에 계시지만 우리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우리에게도 조용히 다가오십니다. 부활의 주님은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뒷모습을 향해서도 따라오시는 사랑이십니다.

마음을 여시는 경청의 대화 (눅 24:17–24)

"무슨 일이냐 하시니... 그들이 머물러 서서 슬픈 빛을 띠더라" (눅 24:17)

주님은 그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으십니다. 침묵으로도, 책망으로도 시작하지 않으시고, 질문으로 그들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단지 정보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닫힌 마음을 여는 열쇠입니다. 대화는 회복의 첫걸음입니다. 그들은 슬픈 얼굴로 말합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눅 24:21)

바로 이 한 문장 속에, 얼마나 많은 좌절이 담겨 있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며 품었던 기대가 모두 무너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끝이라고 말할 때, 주님은 시작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다 포기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주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이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이미 들었지만, 믿지 못합니다. 믿음은 정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신비입니다. 그들의 믿음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설명이 아니라, 임재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임재로 그들의 길에 함께하시며, 천천히 그들의 심령을 깨우시기 시작하십니다.

말씀으로 풀어주신 구속사의 비밀 (눅 24:25–27)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눅 24:25–27)

주님은 먼저 그들의 더딘 믿음을 책망하시지만, 곧이어 말씀을 풀어주십니다. 창세기부터 예언서에 이르기까지, 성경 전체가 가리키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을 설명하십니다. 구속사는 우연한 사건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 속에서 성취된 사랑의 연대기입니다.

예수님의 설명은 단순한 성경 공부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죽은 문자에 생명을 불어넣는 해석이었고, 무너진 마음에 불을 지피는 회복의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이해하기 전에 낙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만나면, 우리의 낙심은 믿음의 기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주님은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말씀의 중심이 되어 직접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성경은 단지 과거의 책이 아니라, 오늘도 살아 계신 주님이 우리를 만나주시는 자리입니다. 구속사는 설명이 아니라 계시입니다. 그 계시의 중심에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떡을 떼는 자리, 눈이 열리다 (눅 24:28–35)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눅 24:30–31)

말씀을 듣는 동안 그들의 마음은 뜨거워졌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은 떡을 떼실 때였습니다. 그분의 손이 떡을 떼는 순간, 그들의 눈이 열렸습니다. 그 손은 못자국이 있는 손이었을 것입니다. 그 손이 떡을 나눌 때, 그들은 그분이 누구신지를 알아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오늘도 떡을 떼시는 자리에서 우리를 만나십니다.

이 장면은 단지 식사의 순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찬의 예표이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신비한 임재의 순간입니다. 떡을 떼는 행위는 단순한 나눔이 아니라,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하는 고백이며, 부활의 주님을 다시 만나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그 순간 주님은 사라지십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속에는 더 이상 공허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곧장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예루살렘, 그들이 떠났던 자리, 낙심의 자리로 돌아가 이제는 소망을 전하는 증인의 자리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걸음은 무겁던 발걸음에서 이제는 복음을 싣고 뛰는 발걸음이 됩니다.

마무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의 여정은 우리 모두의 여정입니다. 때로 우리는 실망하고, 낙심하며, 예루살렘을 등지고 걸어갑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길 위에 찾아오십니다. 말씀으로 우리 마음을 데우시고, 떡을 떼시는 순간 우리의 눈을 여십니다.

이 부활의 아침에, 우리도 주님의 질문을 들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무슨 일이냐? 왜 그렇게 낙심하였느냐?" 그리고 그 질문 속에서 우리는 말씀을 다시 듣고, 주님의 임재를 다시 경험하며, 다시 예루살렘으로 달려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십니다. 때로 우리가 알아보지 못할지라도, 그분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분은 길 위의 주님이시며, 떡을 떼시는 주님이시며, 부활의 생명을 지금도 우리에게 나누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분과 함께 걷는 우리의 여정이, 다시금 불붙는 마음으로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가는 믿음의 걸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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