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증인들] 요한복음 20:19–25 닫힌 문을 여는 평안의 숨결
부활의 증인들: 닫힌 문을 여는 평안의 숨결 (요한복음 20:19–25)
부활의 아침에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무덤 앞에 서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시는 장면, 문이 닫힌 그 공간 안으로 들어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을 함께 바라보게 됩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에서 25절까지의 본문은,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의 임재 앞에서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보여주는 구속사의 심장부입니다. 주님은 닫힌 문 너머의 불안과 공포를 넘어, 평안과 사명을 전하십니다. 이 말씀은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도 동일하게 들려옵니다.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우리에게, 주님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찾아오십니다.
닫힌 문, 굳게 잠긴 심령 (요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요 20:19)
주님의 부활을 들은 날, 그러나 아직 믿지 못한 날의 저녁입니다. 제자들은 두려움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박해가 자신들에게 미칠까 두려워 숨어 있었고, 문을 굳게 걸어잠갔습니다. 그 문은 단지 공간의 문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상징합니다. 의심, 죄책감, 상실감이 겹겹이 쌓인 영혼의 빗장입니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던 자책, 자신들이 기대했던 메시아의 죽음에 대한 혼란, 그리고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막막함이 그들을 문 안에 가두었습니다. 우리도 때로 이들과 같지 않습니까? 마음을 굳게 닫고, 상처와 불안 속에 스스로를 가두며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그 문은 사람은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부활의 주님은 결코 막을 수 없습니다.
평안을 선포하시는 주님의 숨결 (요 20:19–21)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 20:19)
부활하신 주님은 닫힌 문을 통과하여 그들 가운데 서십니다. 그 모습은 마치 창세기의 첫 창조처럼, 어둠과 혼돈 위에 임하신 하나님의 영을 연상케 합니다. 주님은 질서 없는 두려움 가운데 찾아오셔서 첫 말씀으로 평안을 선포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평강은 단지 마음을 달래주는 위로가 아닙니다. 히브리어로 '샬롬'이라 불리는 이 평안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상태, 곧 구속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와 부활의 승리로 이제 제자들과 하나님 사이에 있던 모든 막힌 담이 허물어졌다는 선언입니다. 그 숨결은 평안을 넘어서 새로운 창조의 숨결입니다. 첫 아담에게 불어넣으셨던 생명의 호흡처럼, 부활의 주님은 새로운 존재로 우리를 빚어 가십니다.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신 주님의 흔적 (요 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요 20:20)
주님은 자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십니다. 이는 단순한 신원 확인이 아닙니다. 그 상처는 그들의 배신을 덮고도 남는 사랑의 증거입니다. 손은 십자가에 못 박힌 손이고, 옆구리는 창에 찔린 흔적입니다. 주님은 상처를 숨기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상처로 그들을 품으십니다.
그들의 불신과 도망, 그리고 공포는 주님의 상처 앞에서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실패와 부끄러움도 주님의 손과 옆구리 앞에서는 정죄가 아닌 용서의 증거가 됩니다. 주님의 흔적은 우리에게 평안을 선물하고, 다시 믿음의 자리로 이끄는 은혜의 손길입니다.
그때 제자들은 비로소 기뻐합니다. 슬픔이 기쁨으로, 공포가 감사로, 죽음의 기억이 생명의 고백으로 전환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이 기쁨은 단지 감정의 전환이 아니라, 존재의 변화이며, 사명의 시작입니다.
보내심과 숨을 불어넣으심 (요 20:21–23)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요 20:21–22)
주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제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주님의 대리자로 세움을 받습니다. 이는 단순한 임무가 아니라, 존재의 소명이며, 구속사 안에서 교회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위에 숨을 내쉬십니다. 이 장면은 창조의 모티프를 되살립니다.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신 하나님처럼, 주님은 그들을 새 창조물로 일으켜 세우십니다.
이 숨결은 단지 공기의 흐름이 아니라, 성령의 약속입니다. 그들은 이제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할 자들입니다. 주님의 숨결은 무능한 인간을 사명의 사람으로 바꾸는 권능입니다. 그리고 그 숨결은 지금도 교회 가운데, 예배의 자리에, 기도의 골방에 여전히 흐르고 있습니다.
이어 주님은 죄를 사하는 권세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요 20:23). 이것은 교회의 권위를 말하는 동시에, 복음의 본질을 다시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복음은 죄의 사함이고, 구속은 회복입니다. 이 사명을 받은 제자들은 이제 평안을 전할 자들이며, 상처를 품은 치유의 도구가 됩니다.
의심하는 도마, 아직 닫힌 또 하나의 문 (요 20:24–25)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요 20:24)
그러나 이 자리에 도마는 없었습니다. 그는 공동체에서 떨어져 있었습니다. 의심은 종종 단절 속에서 자라납니다. 도마는 제자들의 증언을 듣고도 믿지 못합니다. 그는 손에 못자국을 보고, 옆구리에 손을 넣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요 20:25).
여기서 도마는 단지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의심하는 자들을 대표합니다. 그의 말은 불신이라기보다는 간절함의 표현입니다. 그는 진짜를 보고 싶었던 사람입니다. 살아 있는 주님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그 어떤 소문도 믿을 수 없었던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도마를 꾸짖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다음 주에 그를 위해 다시 찾아오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의심하는 자도 끝까지 찾아가시는 부활의 주님. 그분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다가오십니다. 문이 닫혀 있어도, 마음이 두려움에 잠겨 있어도, 그분은 여전히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마무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본문은 우리에게 깊은 확신을 줍니다. 부활의 주님은 닫힌 문을 여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평강을 주시는 분이시고, 상처로 사랑을 증명하시는 분이시며, 숨결로 사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두려움으로 문을 닫고 있을 때, 주님은 문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문을 통과하여 우리 가운데 오십니다. 그리고 평안을 말씀하십니다. 그 평안은 우리의 조건과 상관없이, 오직 주님의 부활로부터 오는 평안입니다. 그 평안은 오늘도 우리 삶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됩니다.
이제 우리가 그 평안을 전할 자로 부르심 받았습니다. 부활의 증인은 닫힌 문을 여는 사람입니다. 두려움 속에 갇힌 이들에게 주님의 숨결을 전하고, 상처받은 이들에게 주님의 손을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도 다시 보내심을 받습니다. 이 부활의 아침에, 주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다시 세상 속으로 나아갑시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부활의 숨결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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