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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증인들] 요한복음 20:26–29 도마여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케리그마 2025.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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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너머 피어난 고백의 꽃 (요한복음 20:26–29)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부활의 계절이 우리 곁에 다시 피어났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누구보다 인간적이고 또 우리와 닮은 제자, 도마의 이야기 앞에 서게 됩니다. 주님의 부활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다고 말했던 도마. 우리는 그를 "의심 많은 도마"라 부르지만, 성경은 그의 입에서 신앙의 가장 순전한 고백을 듣게 하십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 20:28). 요한복음 20장 26절에서 29절은 단순한 회의에서 벗어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눈을 감고 가슴으로 보게 되는 믿음의 전환점이며, 구속사 속에 우리가 모두 서 있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의심에서 믿음으로, 닫힌 문에서 열린 하늘로 나아가는 은혜의 여정을 함께 걷고자 합니다.

다시 찾아오신 주님의 은혜 (요 20: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 20:26)

도마는 첫 번째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못한 제자였습니다. 그는 공동체 안에 있었지만, 부활을 경험하지 못한 채 남아 있었습니다. 그의 입은 부활을 부정했고, 그의 마음은 상처로 닫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여드레 후, 그가 있는 곳에 다시 찾아오십니다. 닫힌 문, 닫힌 마음, 닫힌 시간 속에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이 장면은 부활의 주님이 단지 한 번의 기적을 보이시는 분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분은 기다리시는 분이고, 다시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마음이 굳어 있을 때도,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믿음 없는 나를 위해, 실망과 회의 속에 머물고 있는 나를 향해서도 그분은 문을 통과해 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다시 동일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 20:26) 평강은 부활의 주님이 우리에게 가장 먼저 건네시는 언어입니다. 그것은 무너진 마음을 일으키고, 흔들리는 영혼을 다독이는 창조적인 숨결입니다.

상처로 말하시는 주님 (요 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요 20:27)

주님은 도마의 말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믿지 아니하겠노라" 했던 그 말을, 주님은 그대로 반복하십니다. 그런데 주님의 응답은 책망이 아니라, 초대입니다. 그분은 도마의 조건을 꾸짖지 않으시고, 오히려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며 다가오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상처는 꾸짖는 흔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의 증거입니다.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난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우리의 불신을 감싸는 넉넉한 자비입니다. 주님의 상처는 우리가 손을 대어야 할 증거이고, 마음을 내어드려야 할 은혜의 통로입니다. 그분은 상처를 지우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상처로 자신을 증명하십니다. 구속은 피로 말하는 사랑이고, 그 피는 오늘도 우리를 초청합니다. "와서 만져보아라. 그리하여 믿는 자가 되라."

이 말씀은 단순한 권면이 아니라, 믿음의 기적을 여는 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조건 앞에서 침묵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상처로 응답하시고, 흔적으로 임하십니다. 그리고 그 임재는 도마를 완전히 변화시킵니다.

가장 위대한 고백, 도마의 찬송 (요 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 20:28)

이 한 구절은 요한복음 전체의 신학이 집약된 절정입니다. 도마의 입에서 나온 이 고백은, 예수님을 단지 스승이나 메시아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결정적인 믿음의 선언입니다. 의심하던 입술에서 찬송이 터져 나옵니다. 상처 앞에서 신앙이 피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힘입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이 고백은 철학이 아니라 만남의 결과입니다. 이 신앙은 논리의 정합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랑과의 마주침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도마는 더 이상 만져보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만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는 보지 않고 믿는 자로 거듭난 것입니다.

이 고백 속에는 정체성이 있습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개인적인 관계의 확인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나의 삶에 임재하신 주인이십니다. 이 고백은 교회가 매 예배 때마다 되뇌어야 할 신앙의 본질이며, 성도의 심장 속에서 살아야 할 진리입니다.

보지 않고 믿는 자의 복 (요 2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요 20:29)

이제 주님은 도마를 넘어서, 모든 세대의 성도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를 직접 보지 못했지만, 우리는 믿습니다. 말씀이 증언한 부활, 성령이 깨닫게 하신 부활을 우리는 가슴으로 믿습니다.

이 복은 단지 감정의 확신이 아니라, 존재의 전환입니다. 보지 않고 믿는다는 것은, 보이는 세상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나라를 바라보는 눈이 열렸다는 뜻입니다. 이 믿음은 신비이며, 동시에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복이 여러분의 삶에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보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고, 들리지 않아도 방향을 잃지 않는 그 믿음이, 우리의 남은 인생을 견고하게 이끌 것입니다.

도마는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주님이 얼마나 인내하시고 기다리시는지를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우리는 모두 도마입니다. 그러나 그 도마의 입술에서 가장 위대한 고백이 나왔듯, 우리 안에서도 동일한 믿음이 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마무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은 단지 한 날의 기념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도 나를 향해 오시는 주님의 걸음이고, 내 상처 속으로 들어오시는 사랑의 손길입니다. 닫힌 문도, 무거운 의심도, 슬픔의 벽도 부활의 주님을 막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 각자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너희는 복되다." 그 말은 축복이자, 소망이며, 사명입니다. 이제 우리는 의심이 아니라 고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 앞에 드려진 도마의 찬송처럼 되기를 기도합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이 부활의 계절, 도마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축복하며, 그 고백을 삶으로 살아내는 부활의 증인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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