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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9:145-160 묵상, 내가 전심으로 부르짖었사오니

케리그마 2025.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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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부르짖음 속에서 발견하는 말씀의 진리

시편 119:145-160은 고난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간절히 부르짖는 시인의 기도를 담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 기도의 호흡, 악인들의 압박 가운데서도 주의 인자와 진리에 소망을 두는 믿음의 길을 보여줍니다. 말씀은 고난의 어둠 속에서도 생명을 주며,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끝까지 증언합니다.

 

부르짖는 영혼, 말씀을 향한 전심의 외침

“내가 전심으로 부르짖었사오니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소서 내가 주의 율례들을 지키리이다”(145절). 시인은 자신의 마음을 모두 쏟아내는 전심의 기도로 하나님의 응답을 구합니다. 여기서 ‘전심’은 히브리어 “בְּכָל־לֵב”(브콜 레브), ‘온 마음으로’라는 의미이며, 이는 단지 강렬한 감정의 표현을 넘어, 존재 전체를 하나님께 드린 태도를 나타냅니다. 기도는 입술의 주문이 아니라, 심령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뜻을 향한 부르짖음입니다.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증거들을 지키리이다”(146절). 시인은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간구하면서 동시에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서원을 드립니다. 이는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언약의 반응입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실 때, 인간은 그 은혜에 순종으로 응답하는 것이 마땅한 태도입니다.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라었사오며”(147절), “내가 밤중에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눈을 떴나이다”(148절)라는 고백을 통해 시인은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말씀과 기도로 채우는 삶의 리듬을 보여줍니다. 날이 밝기 전과 밤중이라는 시간은 육체의 피곤함이 절정에 이르는 시간이며, 인간적으로 가장 연약한 때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에 시인은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여기서 ‘묵상하다’는 히브리어 “שִׂיחָה”(시하)는 조용히 되새기며 마음을 집중하는 행위로, 단순한 읽기가 아니라 마음의 깊은 교제를 나타냅니다.

 

기도는 시인의 내면에서만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내 소리를 들으소서 여호와여 주의 규례들을 따라 나를 살리소서”(149절). 하나님의 응답은 그분의 인자하심, 즉 히브리어 “חֶסֶד”(헤세드) 언약의 사랑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살리소서’는 히브리어 “חָיָה”(하야)로, 생명을 불어넣고 영혼을 다시 일으키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말씀은 죽어가는 영혼에 생명을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숨결입니다.

 

가까이 다가오는 악인과 더욱 가까운 하나님

150절은 현실의 위협을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악을 따르는 자들이 가까이 왔사오니 그들은 주의 법에서 머니이다.” 시인은 악한 자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현실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지만, 동시에 믿음으로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주께서는 가까이 계시고 주의 모든 계명들은 진리니이다”(151절). 대조적인 이 두 구절은 매우 강렬한 신학적 고백을 이룹니다. 세상의 위협이 가까이 오지만, 하나님은 더 가까이 계신 분이십니다. ‘가깝다’는 히브리어 “קָרוֹב”(카로브)는 물리적 거리뿐 아니라 친밀함과 인격적 관계를 나타냅니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다는 인식은 말씀에서 비롯됩니다. 시인은 “주의 모든 계명들은 진리”라고 선언합니다. ‘진리’는 “אֱמֶת”(에메트)로, 변함없고 견고하며 신실한 것을 뜻합니다. 인간의 말은 시간에 따라 바뀌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동일하며 그 진리 위에서 우리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가 전부터 주의 증거들을 알고 있었으므로 주께서 영원히 세우신 것인 줄을 알았나이다”(152절). 시인은 말씀을 과거부터 지켜보며, 그 말씀이 변함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고백합니다. 신앙은 단지 이론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말씀의 신실하심을 반복적으로 체험하면서, 우리는 그 말씀이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반석임을 알게 됩니다. ‘세우다’는 히브리어 “יָסַד”(야사드)는 기초를 놓다, 단단히 고정하다는 의미로,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 이전부터 세워진 영원한 기초입니다.

 

고난 중의 간구와 말씀에 대한 절대 신뢰

“나의 고난을 보시고 나를 건지소서 내가 주의 율법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153절). 시인은 자신이 겪는 고난을 근거로 구원을 간청합니다. 그러나 그 고난 속에서도 시인은 율법을 잊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말씀은 고난을 잊게 하지 않고, 오히려 고난 속에서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말씀을 잊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기억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말씀을 삶의 방향으로 삼는 태도를 말합니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변호하시고 나를 살리소서”(154절). 하나님께 변호를 구하는 고백은, 세상 법정에서는 힘없고 억울할 수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정의가 회복된다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여기서 ‘변호하다’는 히브리어 “רִיב”(리브)는 논쟁하다, 재판하다의 뜻으로, 하나님을 공의의 재판관으로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구원이 악인들에게서 멀어지면 그들이 주의 율례들을 구하지 아니함이니이다”(155절). 구원은 말씀을 따르는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이 고백은, 현대의 상대주의적 사고에 강한 도전이 됩니다. 진리는 선택이 아니라 절대적 기준이며, 말씀을 무시한 삶에는 참된 구원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긍휼이 많사오니 주의 규례들에 따라 나를 살리소서”(156절). 이 구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긍휼에 기초해 다시 한 번 생명을 구합니다. ‘긍휼’은 히브리어 “רַחֲמִים”(라하밈)으로, 자궁에서 비롯된 단어로 어머니의 자비와 같은 깊고 따뜻한 사랑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차가운 법정의 판사가 아니라, 자녀를 품는 어머니처럼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나를 핍박하는 자들과 나의 대적들이 많으나 나는 주의 증거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157절). 수많은 위협 속에서도 시인은 말씀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 고백은 말씀이 단지 평온한 삶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고난 중에도 붙들 수 있는 절대 기준임을 보여줍니다.

 

“주의 말씀들을 즐거워하는 자를 보시고 나를 살리소서”(158절). 시인은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생명을 주신다는 사실을 알고, 그 즐거움 안에 자신도 포함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생명의 터전 안에 거하게 됩니다.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이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들은 영원하리이다”(160절). ‘강령’은 히브리어 “רֹאשׁ”(로쉬), 즉 머리 또는 본질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말씀의 본질이 진리이며, 그 진리는 시간과 시대를 초월합니다. 진리는 어느 시대든 도전받고 저항을 받지만, 그 진리 위에서 교회는 세워지고 신자는 살아갑니다.

 

결론

시편 119:145-160은 고난 속에서 말씀을 붙들고 부르짖는 시인의 절절한 기도로 가득합니다. 말씀은 단지 지식이 아니라, 삶의 위기 가운데서도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이며, 진리입니다. 시인은 낮에도 밤에도 말씀을 묵상하고, 악한 자들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하나님의 임재가 더 가까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말씀은 영혼을 살리는 숨결이며, 고난 속에서도 기쁨이 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혼란과 고난 가운데서 더욱 말씀을 붙들고 기도함으로, 그 말씀 안에서 생명과 평안을 누리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은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이며, 그 진리를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와 구원을 주십니다.


매일성경 5월 본문입니다. 일별 묵상 본문을 클릭하시면 각 본문에 따라 묵상을 따라 설교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매일 말씀 묵상을 통해 은혜로운 5월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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