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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9:161-176 묵상,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

케리그마 2025.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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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노래, 영혼의 마지막 고백

시편 119:161-176은 가장 긴 시편의 마지막 연으로서, 말씀으로 살아온 한 신자의 인생 고백이자 마지막 간청의 노래입니다. 고난의 한복판에서 시작되어 말씀에 대한 사랑과 경외로 이어지며, 끝내 방황하는 한 영혼의 회복을 갈망하는 이 고백은 말씀을 따르는 인생이 마주하게 되는 참된 믿음의 깊이를 드러냅니다.

 

말씀을 향한 경외와 기쁨

“고관들이 까닭 없이 나를 박해하였으나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161절). 시인의 삶은 권세 있는 자들의 부당한 박해로 가득했습니다. ‘까닭 없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חִנָּם”(힌남)으로, 불공정하고 이유 없는 핍박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의 중심을 오직 말씀을 경외하는 데 두었습니다. 경외하다, 즉 히브리어 “פָּחַד”(파하드)는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 권위 앞에 떨며 순종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말씀은 억울한 현실 앞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게 하는 기준이며, 외부의 압력보다 더 깊은 내면의 경건을 형성합니다.

 

“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162절). 시인은 말씀을 물질적 소득보다 더 큰 기쁨으로 여깁니다. 탈취물, 히브리어 “שָׁלָל”(샬랄)은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뜻하며, 이는 사람들이 목숨 걸고 쟁취하려는 대상입니다. 그러나 시인에게 말씀은 그러한 것들보다 더 큰 보배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가치와 반대 방향을 향해 있는 이 고백은, 신앙인의 삶이 어떻게 전복적인 가치를 따르는지를 보여줍니다.

 

“내가 거짓을 미워하여 싫어하고 주의 율법을 사랑하나이다”(163절). 시인의 사랑은 단지 말씀에 대한 긍정적 감정에 그치지 않고, 죄에 대한 분명한 배척으로 나타납니다. 거짓, 히브리어 “שֶׁקֶר”(세케르)은 단지 사실을 왜곡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 진리와 반대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거짓을 미워하게 되어 있으며, 말씀은 이 분별을 명확히 세워주는 기준입니다.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오니 주의 의로운 규례들 때문이니이다”(164절). 일곱 번, 히브리어 “שֶׁבַע פְּעָמִים”(셰바 페아밈)은 단순한 횟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함과 지속성을 의미합니다. 하루의 모든 순간을 찬양으로 채우는 자는 삶 전체가 예배로 변화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규례, 즉 말씀의 공의와 의로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사랑하는 자에게 임하는 평안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165절). 평안, 히브리어 “שָׁלוֹם”(샬롬)은 단순히 고요한 상태가 아니라, 관계적 충만함과 영혼의 통합된 상태를 뜻합니다. 말씀을 사랑하는 자는 세상이 주지 못하는 깊은 샬롬을 누립니다. 이 평안은 외부의 환경이 아니라 말씀과의 바른 관계에서 비롯되는 내적 은혜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바라며 주의 계명들을 행하였나이다”(166절). 구원에 대한 갈망은 단지 고난에서의 탈출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 회복되기를 원하는 영혼의 갈증입니다. 시인은 말씀을 행하면서 구원을 바라봅니다. 이는 공로 중심이 아닌, 언약에 근거한 순종의 반응입니다. 행위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은혜를 입은 자의 열매입니다.

 

“내 영혼이 주의 증거들을 지켜싸오며 내가 이를 심히 사랑하나이다”(167절). 영혼이 말씀을 지킨다는 고백은 단지 의지적 결단만이 아니라, 존재 전체가 말씀에 복종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심히’라는 말은 히브리어 “מְאֹד”(메오드)로, 매우 강렬한 정서적 표현이며, 단순한 기호가 아닌 생명의 근원으로서 말씀을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내가 주의 법도들과 증거들을 지켰으니 나의 모든 길을 주 앞에 있나이다”(168절). 말씀을 지키는 삶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걷는 삶입니다. ‘모든 길’, 히브리어 “דְּרָכַי”(데라카이)는 단지 행동만이 아니라 생각과 결정, 감정의 흐름까지 포함하는 표현입니다. 말씀 앞에 서는 자는 자신의 삶의 모든 결정을 하나님 앞에서 투명하게 내어놓을 수 있습니다.

 

방황하는 양, 말씀으로 돌아오는 은혜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나를 구하소서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169절). 시편의 마지막 구절들은 다시 간절한 부르짖음으로 돌아갑니다. 말씀을 사랑하고 지켜온 삶이었지만, 시인은 여전히 하나님의 구원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자신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전적으로 기대는 태도입니다.

 

“나의 간구가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건지소서”(170절). ‘이르게 하소서’는 히브리어 “תָּבוֹא”(타보), 즉 가까이 가게 하다는 의미로, 기도의 방향이 단지 외침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께 다가가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담고 있습니다. 말씀대로 건져달라는 이 표현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기도의 전형입니다.

 

“나의 입술이 주를 찬양하리니 주께서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셨음이니이다”(171절). 찬양은 배움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 자는 그 말씀을 찬양으로 응답합니다. 지식이 머리에만 머무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예배와 찬양이라는 삶의 열매로 나타나야 합니다.

 

“나의 혀가 주의 말씀을 노래하리니 주의 모든 계명들이 의로움이니이다”(172절). 혀가 노래한다는 표현은 단지 입술의 기능이 아니라, 존재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해 돌아섰다는 뜻입니다. 말씀의 의로움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경험된 진리이며 노래할 수밖에 없는 기쁨의 근거입니다.

 

“내 손이 주를 향하여 도움이 되기를 바라오니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였나이다”(173절). 시인은 자신의 손, 즉 자신의 행동과 삶 전체가 하나님께 향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을 잊지 않았다는 이 고백은 단지 기억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중심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지막 두 구절은 놀라운 회개의 고백과 함께 마무리됩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사오며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나이다. 내가 방황하는 양같이 잃어버렸사오니 주의 종을 찾으소서 내가 주의 계명들을 잊지 아니하였나이다”(174-176절). 시인의 마지막 고백은 ‘방황하는 양’이라는 자기 인식입니다. 히브리어 “תָּעִיתִי כְּשֶׂה אֹבֵד”(타이티 케세 오베드)는 “나는 길 잃은 양처럼 떠돌았습니다”라는 깊은 회개의 표현입니다.

 

시인은 지금까지 말씀을 사랑하고 지켜왔다고 고백했지만, 마지막에는 자신이 여전히 연약하고, 주님의 인도 없이는 방황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이는 신앙인의 삶의 결론입니다. 말씀을 지킨다고 자만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주님의 손이 자신을 붙들어주시길 바라는 겸손한 회개입니다.

 

결론

시편 119:161-176은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으로 살아온 한 사람의 전 인생을 담은 고백이며, 동시에 마지막 회개의 간구입니다. 말씀은 고난 속에서도 우리를 붙들며, 불의한 권세보다 더 강한 진리의 능력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붙든 자조차도 결국엔 방황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양이라는 것을 우리는 고백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주의 종을 찾으소서, 다시 말씀으로 이끌어주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말씀을 따르는 인생의 마지막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한 걸음도 설 수 없음을 인정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간절히 구하는 영혼, 그것이 바로 참된 신자의 모습입니다. 말씀을 사랑하고 지키며 끝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는 인생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매일성경 5월 본문입니다. 일별 묵상 본문을 클릭하시면 각 본문에 따라 묵상을 따라 설교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매일 말씀 묵상을 통해 은혜로운 5월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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