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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2:1-18 묵상, 새로운 왕후를 뽑다

케리그마 2025.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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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세우신 자리를 향한 섭리의 길

에스더 2:1-18은 역사와 우연처럼 보이는 인간의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본문입니다. 유다 공동체의 이름도, 하나님이라는 단어도 등장하지 않지만, 이 장면 속에서는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세우시고 준비하시는지를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폐위된 왕후, 흔들리는 왕의 감정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의 노가 그치매 와스디와 그가 행한 일과 그에 대하여 내린 조서를 생각하니라”(1절). 왕의 분노가 식은 후, 그는 와스디를 그리워하는 듯한 모습으로 회상합니다. 이 회상은 감정적으로는 연민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그의 결정이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 앞에 느끼는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생각하다’는 히브리어 “זָכַר”(자카르)로,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감정이 담긴 반추를 뜻합니다. 한때는 충동적으로 결정을 내렸던 왕이 이제 그 결정의 무게를 실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일깨웁니다. 세상의 권력자라 할지라도 자신의 결정을 후회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참된 지혜와 인도는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선택이 아무리 강해 보여도, 그 안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계획을 하나씩 진행해 가십니다.

 

왕의 신하들은 와스디를 대신할 새로운 여인을 찾자는 제안을 하고, 왕은 그 제안을 기쁘게 여깁니다(2-4절). 이로 인해 페르시아 전역에서 처녀들이 궁으로 불려오게 되고, 하렘의 제도 속에서 철저히 외모와 치장이 중시되는 세상의 시스템이 작동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시스템 속에서도 하나님은 조용히 한 여인을 준비시키십니다.

 

하나님의 사람, 은밀히 준비되다

이때 등장하는 인물이 에스더입니다. “이때에 도성 수산에 한 유다인이 있으니 이름은 모르드개라”(5절). 그는 사로잡힌 자손의 후손이며, 그의 사촌 에스더를 양녀처럼 길렀다고 소개됩니다. 에스더는 아비와 어미가 없는 고아였지만, 모르드개의 손에서 말씀의 정체성과 민족의 영성을 간직한 채 자라난 인물이었습니다.

 

에스더는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라”(7절)고 묘사됩니다. 그러나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진짜 아름다움은 그 외모 너머에 있습니다. 에스더는 세상의 기준에 부합하는 외모를 지녔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녀 안에 있는 겸손과 순종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침묵할 줄 알았고, 상황에 맞게 지혜롭게 처신할 줄 아는 내면의 지혜가 있었습니다.

 

에스더가 궁에 들어갔을 때, 하렘을 맡은 내시 헤개가 그를 특별히 대우합니다(8-9절). 헤개는 에스더를 기쁘게 여겨 그녀를 우대하며 일곱 여종을 붙이고, 좋은 자리에 두었습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단순한 우연이 아닌,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은혜를 입게 하시는 섭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은혜를 입다’는 표현은 히브리어 “חֵן”(헨)으로, 단지 외적인 호감 이상의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호의를 의미합니다.

 

에스더는 자신이 유다인임을 숨겼습니다(10절). 이는 모르드개의 지시였고, 에스더는 그것을 그대로 따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녀의 순종을 보게 됩니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입을 다무는 지혜는 오늘 우리에게도 중요한 영적 교훈을 줍니다.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처녀마다 차례대로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기 전에 여자에 대하여 정한 규례대로 열두 달 동안을 행하되”(12절). 이 정해진 준비 기간은 철저히 육체적 아름다움을 가꾸기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여섯 달은 몰약 기름으로, 여섯 달은 향품과 화장품으로 꾸미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이런 형식적 장식을 넘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마음의 단장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에스더는 왕 앞에 나아갈 때도 자신의 뜻대로 꾸미지 않고, 하렘을 관리하던 헤개가 권한 것 외에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15절). 이것은 그녀의 겸손과 지혜를 보여줍니다. ‘무엇을 구하지 않았다’는 표현은 곧 자신을 주장하지 않고 인도에 따라 움직이는 신자의 자세입니다.

 

그 결과 에스더는 왕의 눈에 은총을 입습니다. “왕이 모든 여자보다 에스더를 더 사랑하므로 그가 모든 처녀보다 왕 앞에 은총과 귀여움을 얻은지라”(17절). 히브리어로 ‘사랑하다’는 “אָהַב”(아하브), ‘은총’은 “חֵן”(헨), ‘귀여움’은 “חֶסֶד”(헤세드)로 각각 표현되는데, 모두가 하나님의 손길이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어들입니다. 이는 단지 인간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와 개입을 보여주는 표현들입니다.

 

에스더는 결국 왕후가 되고, 왕은 그녀를 위해 큰 잔치를 베풉니다. ‘에스더의 잔치’라는 이름이 붙은 그 연회는 인간의 잔치 같지만, 실은 하나님이 마련하신 구속의 계획이 시작되는 선언입니다(18절). 이 자리에서 에스더는 아직도 자신의 민족을 드러내지 않지만, 하나님은 그 중심을 아시고 때에 맞는 일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결론

에스더 2:1-18은 외형적으로는 페르시아 궁중의 경쟁과 한 여인의 미를 향한 준비로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이 깊게 흐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왕의 후회를 사용하시고, 신하들의 조언과 하렘의 구조 속에서도 자신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고아였던 에스더는 인간적 조건으로는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존재였지만,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왕후의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출신이나 배경보다, 우리의 마음과 순종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도 하나님의 이름은 직접 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각자의 삶 속에, 겉보기에는 평범하고 때론 무의미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이끌어 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장소에 우리가 서게 될 그날을 기대하며, 에스더처럼 말씀 앞에 조용히 순종하고, 하나님이 여시는 문에 담대히 들어서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매일성경 5월 본문입니다. 일별 묵상 본문을 클릭하시면 각 본문에 따라 묵상을 따라 설교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매일 말씀 묵상을 통해 은혜로운 5월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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