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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시리즈 2) 마태복음 26장 36-46절 겟세마네의 기도

케리그마 2025.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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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의 기도: 인간 예수의 고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주간 둘째 날에 우리는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기도를 함께 묵상하려고 합니다. 마태복음 26장 36절부터 46절까지의 말씀은 예수님의 고난 가운데 가장 내밀하고도 비통한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이 겟세마네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경험하신 깊은 내적 고뇌와, 동시에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받아들이시는 신적 순종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예수님의 인성, 신성과 구속사적 사명을 더욱 분명히 이해하게 될 것이며, 고난주간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이 말씀 앞에 정직하게 세우게 될 것입니다.

고통의 무게 앞에서 주저앉으신 예수님 (마태복음 26:36-38)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불리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이 장소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기름 짜는 틀’을 뜻하는 gat shemanim에서 유래되었으며, 이는 곧 압력과 분쇄, 무게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이 기도 자리에서 말 그대로 ‘기름 짜이듯’ 무거운 고뇌 속에 짓눌리셨습니다.

그는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셨고, 곧 고민하고 슬퍼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마 26:38). 여기서 ‘고민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lupeō는 단지 불편함이나 걱정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극도의 비탄과 내면적 고통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죽게 되었다’는 말은 비유적 표현을 넘어서, 생명을 갉아먹는 영혼의 고통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이 순간, 인간의 연약함과 두려움을 그대로 드러내십니다. 그는 고난을 모르는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철저히 인간의 감정과 고통을 체험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모습은 히브리서 기자의 고백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히 2:18).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기도 (마태복음 26:39)

예수님은 조금 나아가 얼굴을 땅에 대시고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 26:39).

‘이 잔’은 단순한 고통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잔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상징합니다(사 51:17, 렘 25:15).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공의 앞에 서야 했으며, 그 진노의 잔을 마셔야 했습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의 인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그는 고통을 원치 않으셨고, 두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의 현실 앞에서도, 예수님은 자기 뜻보다 아버지의 뜻을 선택하십니다.

이 장면은 단순히 감정의 표현이 아닙니다. 이는 삼위 하나님 간의 사역적 순종의 표현이며, 하나님의 구속 계획 속에서 성자가 성부의 뜻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신적 조화입니다. 필립피서 2장 8절은 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의 순종은 외적 강요가 아닌, 내적 자원에서 비롯된 완전한 복종이었습니다.

깨어 있지 못한 제자들 (마태복음 26:40-43)

예수님은 기도를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돌아와 보십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마 26:40). 예수님은 반복하여 기도하시는 동안 제자들은 또다시 잠에 빠집니다. 이 장면은 인간의 연약함을 날것으로 보여줍니다.

여기서 '깨어 있으라'는 명령은 단지 졸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는 영적 긴장감 속에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라는 적극적 행위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고통보다 제자들의 상태를 더 염려하십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마 26:41).

예수님의 이 말씀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는 고백입니다. 우리는 의지를 갖고 있어도 실천하지 못합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할 때 졸고, 고난을 앞에 둔 주님을 따라야 할 때 잠들어버립니다. 이 장면은 오늘날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게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에 함께 깨어 있습니까, 아니면 습관처럼 익숙한 예배의 틀 속에 안주하며 영적 수면 상태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에서 얻은 담대함 (마태복음 26:44-46)

예수님은 세 번째로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돌아오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마 26:45-46).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전환을 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고통 속에서 엎드려 기도하셨던 예수님이, 이제는 담대하게 고난을 향해 나아가십니다. 그는 더 이상 무릎 꿇은 자가 아니라, 일어나 고난을 마주하는 왕으로 서 계십니다.

이 담대함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바로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기도 안에서 아버지의 뜻을 다시 확인하셨고, 그 뜻에 자신을 온전히 일치시키셨습니다. 그 결과, 그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능력입니다. 기도는 고난을 제거하지는 않지만, 고난을 이겨낼 담대함을 줍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는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며, 현실을 해석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합니다.

겟세마네의 기도는 고난 앞에서의 회피가 아니라, 고난을 껴안고 순종하는 신앙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이 순간을 통해 예수님은 인간의 대표로서, 그리고 우리의 중보자로서 십자가 사명을 감당하실 준비를 마치신 것입니다.

결론 정리

사랑하는 여러분, 겟세마네의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신 분이십니다. 그는 고난을 두려워하셨지만, 아버지의 뜻 앞에 완전히 순복하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실 것을 알면서도, 기도로써 그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이 고난주간,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 자리에 함께 서야 합니다. 그 깊은 고뇌와 순종을 기억하며, 우리 역시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현실을 바꾸기 전에, 우리의 마음을 바꾸는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입니다.

겟세마네는 외로운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그 외로움 속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가장 깊이 연결되셨습니다. 우리도 그 길을 따를 때, 고난의 현실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로 얻으신 순종의 능력을 오늘 우리도 동일하게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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