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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묵상, 마 21:18-19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시다

케리그마 2025.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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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만 무성한 신앙을 넘어서 - 마른 무화과나무와 고난의 실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주간 둘째 날인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 장면은 어떤 면에서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늘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던 예수님께서 열매 없는 나무를 향해 저주의 말씀을 하시고, 그 나무가 곧 말라버렸다는 기록은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문을 주의 깊게 묵상하면, 이 사건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우리 모두를 향한 깊고 심오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고난주간, 예수님은 성전으로 들어가시기 전 이 무화과나무 앞에서 신앙의 실체와 구속의 의미를 강력하게 드러내십니다. 단지 잎만 무성한 신앙, 열매 없는 신앙의 공허함을 예수님은 저주하셨고, 그 심판의 메시지 안에는 오히려 우리를 살리시려는 강한 호소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더욱 깊이 묵상하며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이른 아침의 허기와 눈에 띄는 나무(마 21:18)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마 21:18). 예수님은 고난주간의 새벽, 성전으로 향하시던 중 허기를 느끼십니다. 인간적인 허기이면서도, 이 장면은 영적 갈급함의 상징처럼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눈에 띄게 잎이 무성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십니다. 겉으로 보기엔 충분히 열매가 있어야 할 것처럼 보였던 나무입니다. 그러나 가까이 가보니 잎사귀밖에 없었습니다. 아무 열매도 없었습니다(마 21:19).

이 대목에서 우리는 신앙의 외형과 내면의 괴리라는 무거운 주제를 마주합니다. 무화과나무는 성경에서 종종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호 9:10, 렘 24:5).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겉으로는 율법을 지키고, 제사를 드리고, 경건한 모양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순종, 회개의 열매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허상을 보신 것입니다. 예루살렘 입성 후, 성전이 장사꾼들의 소굴이 되어 있는 것을 목격하신 예수님께서, 이 무화과나무를 통해 한 나라와 한 민족의 영적 상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신 것입니다.

말라버린 무화과나무와 침묵의 경고(마 21:19)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서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마 21:19). 제자들은 그 장면을 곧 목격하게 됩니다. 나무는 즉시 말라버렸습니다. 이 짧은 한 마디 말씀 속에는 무겁고도 침묵 같은 경고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잎사귀만 무성한 신앙, 열매 없는 경건의 모양을 오래 두고 보시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이 사건은 고난주간 안에서 매우 상징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를 향한 마지막 여정을 걷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하나님 백성의 실상을 선포하십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처럼,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 예루살렘의 백성들은 경건해 보였지만, 정작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체계 안에 갇혀, 생명의 왕을 거절했습니다. 결국 그 결과는 마름이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침묵하지만, 그 침묵이 말보다 더 큰 메시지가 됩니다. 열매 없는 신앙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회개의 열매, 사랑의 열매, 순종의 열매가 없다면 그 신앙은 결국 메말라 버리게 됩니다.

외형의 신앙을 넘어서: 우리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 본문은 단지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 각 사람을 향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무성한 잎을 가진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배에 참석하고, 성경책을 들고 다니고, 신앙인처럼 보이는 외형은 있으나, 그 안에 열매는 없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맺고 있는 열매를 살피십니다. 회개의 열매, 성령의 열매, 선한 행실의 열매, 이웃 사랑의 열매, 복음을 전파하는 열매. 이러한 것들이 없을 때, 우리는 예수님의 눈길을 피할 수 없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즉각적으로 반응하십니다. 이는 갑작스러운 분노의 표현이 아니라, 구속사의 시간표 속에서 나타난 예언적 행동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생명과 진리를 결실하길 바라십니다. 우리의 신앙이 잎만 무성한 채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고난과 열매: 십자가의 계절 속에서

고난주간은 잎사귀를 걷어내고, 열매를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한 대속의 사건입니다. 그분이 채찍에 맞으심은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하려 하심이요, 그분이 짊어지신 십자가는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 의의 열매를 맺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사 53:5, 벧전 2:24).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거부한 신앙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열매 없음을 자신의 죽음으로 채우셨습니다. 그분은 잎만 무성한 신앙을 자신의 몸으로 끌어안고,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그리하여 마른 나무 같던 우리로 하여금 다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고,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고난주간은 그 십자가의 능력을 다시 붙드는 시간입니다. 단지 그리스도의 고난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에 참여하여 우리 삶에 열매로 응답하는 시간입니다.

마무리 묵상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차가운 경고로 다가오지만, 동시에 놀라운 은혜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마른 무화과나무 앞에서 슬퍼하셨습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의 열매 없음을 안타까워하셨고, 우리를 향해 그 마음을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희는 열매를 맺고 있느냐?

고난주간의 월요일, 주님은 다시 성전을 향해 나아가십니다. 무화과나무는 마르고, 그 뒤엔 십자가가 서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나무는 지금 어떤 모습입니까? 잎만 무성하고 열매는 없지 않습니까? 아니면 고난을 통과하며 뿌리 깊은 진실함으로 주님 앞에 선 열매가 맺히고 있습니까?

주님은 고난의 여정 속에서도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마른 나무를 다시 살리시는 분, 열매 없는 영혼에 은혜를 부어주시는 분, 그분을 깊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서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마 21:19). 이 말씀 앞에 서서, 우리는 회개의 열매와 사랑의 열매, 십자가의 열매를 맺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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