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누가복음 19:11 - 19:27 묵상, 므나 비유

케리그마 2025. 4. 13.
반응형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자의 삶 – 므나 비유에 담긴 주인의 뜻

누가복음 19장 11절부터 27절까지는 예수께서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주신 중요한 비유의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곧바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실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지만,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생각보다 지연될 것이며, 그 기다림 속에서 제자들이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지를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므나 비유’로 알려진 이 본문은 단지 시간의 연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 반드시 열매와 충성이 요구됨을 강하게 드러냅니다.

귀인으로 떠나는 주인 – 지연되는 나라, 준비되는 종

예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는 본문 서두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심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11절).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예루살렘에 입성하면 로마의 압제를 끊고 즉각적인 통치를 시작할 것이라는 정치적 기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지금이 아니라, 한참 후에 있을 사건임을 선포하십니다.

비유 속에서 한 귀인이 왕위를 받아오려고 먼 나라로 떠난다고 하십니다(12절). 여기서 ‘귀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먼 나라’는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후, 다시 오실 때까지의 종말론적 시기를 가리킵니다. 왕권을 받아 돌아오겠다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과 최종 심판을 암시합니다. 이 비유는 단순한 도덕 교훈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부터 재림까지 이어지는 중간기의 제자도와 충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은 열 명의 종을 불러 각각 한 므나씩을 주며 말합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이것으로 장사하라”(13절). 여기서 ‘므나’는 은화 약 100일치 임금에 해당하는 액수로, 헬라어로 “μνᾶ(mina)”입니다. 종들에게 각각 동일한 액수를 나눠준 것은 모든 제자들에게 공통된 사명이 주어졌음을 의미하며, 이 므나는 단지 돈을 의미하기보다는 복음, 하나님의 말씀, 사명과 같은 영적인 자원을 뜻합니다.

‘장사하라’는 말은 헬라어 “πραγματεύσασθε(pragmateusasthe)”로, 단순히 돈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여 이익을 남기라는 뜻입니다. 복음이 주어진 목적은 단지 보존이나 회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적극적으로 확장되고 적용되어야 할 사명입니다. 주인이 부재한 시간은 단지 대기하는 시간이 아니라, 충성의 기회요, 하나님의 뜻을 삶 속에 실천하는 기간입니다.

종의 충성과 변명 – 믿음의 열매를 요구하시는 하나님

주인이 돌아와 자신이 맡긴 돈으로 종들이 얼마나 장사했는지를 계산합니다. 첫 번째 종은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고, 두 번째 종은 다섯 므나를 남겼다고 보고합니다(16-18절). 이에 주인은 칭찬하며, 각각 열 고을과 다섯 고을의 권세를 맡깁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 믿음으로 충성한 자들이 누릴 영광과 상급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17절)라는 말씀에서, 하나님은 그분의 나라에서 ‘충성’을 가장 큰 평가 기준으로 삼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의 일은 결과보다 동기와 태도, 그리고 꾸준한 충성이 핵심입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동일한 ‘양’이었지만, 결과는 다르며, 평가도 그 결과에 따라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종은 한 므나를 수건에 싸두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20절). 그가 주인에게 한 말은 변명이자 불신의 표현이었습니다. “주인은 엄한 사람이라 맡기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사람이라 하였나이다”(21절). 그의 이 말은 곧 주인의 성품을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주인을 두려워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주인을 신뢰하지 않았으며, 자기 자신만을 위하고자 했습니다. 결국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주인의 뜻을 거절한 셈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종의 말대로 그를 판단하시며, 그 므나를 열 므나 가진 자에게 주라고 하십니다. 주변 사람들이 “주여 저에게는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라고 말하자, 주님은 대답하십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26절). 이는 단지 불공평한 분배가 아니라, 영적인 원리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주신 사명에 충성한 자에게는 더 많은 사명을 맡기시고,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그 기회조차 거두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세계는 ‘기회’를 주시는 은혜의 영역이자, 동시에 ‘책임’을 요구하는 진리의 영역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은혜를 값싸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맡은 바 은사를 보존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열매를 맺어야 하며, 그 열매는 다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할 사명입니다. 우리는 받은 것에 합당한 결과로 주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왕 되심을 거절한 자들 – 마지막 심판의 경고

비유의 마지막에는 주인의 통치를 원하지 않았던 자들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14절에서 이미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라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 속에서 자신을 거절하는 유대 지도자들과 백성들의 태도를 그대로 드러내셨습니다.

27절에 보면, 주인은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그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이는 단순히 극단적인 폭력 묘사가 아니라, 마지막 심판의 현실성을 드러냅니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단지 믿는 자에게 보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고 거절한 자에게는 심판이 따른다는 엄중한 선언입니다.

복음은 모든 이에게 열려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 거절하는 자, 외면하는 자는 결국 스스로를 하나님의 은혜 밖으로 밀어내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은혜와 진리를 선포하셨고,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선명히 드러내셨습니다. 하지만 이를 거절하는 자에게는 결국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은 죄를 덮어주시되, 공의는 죄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묻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 안에서 은혜를 받아 누리는 자들이어야 하며, 동시에 그 공의 앞에서 두려움으로 자신을 돌아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결론

누가복음 19장 11절부터 27절까지의 므나 비유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준엄한 메시지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당장에 임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는 그 날을 잊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주인이 부재한 시간 동안 우리는 ‘믿음의 장사’를 해야 하며, 주님이 주신 복음, 은사, 시간, 삶의 모든 자원을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믿음은 단순히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열매 맺는 것입니다. 충성은 단지 큰일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작은 것에도 정직하게 반응하는 태도입니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곧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곧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며,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그리고 그 길은 단지 고난의 길이 아니라, 다시 오셔서 영광 중에 심판하실 주님의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종말론적 시기를 살고 있는 청지기들입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한 므나,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오심은 지연된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임합니다. 그 날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주인을 맞이하게 될까요?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도록, 오늘도 충성되게 살아가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나라를 소망하는 자로, 한 므나를 생명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자로 거듭나시길 축복합니다.


매일성경 4월 본문입니다. 일별 묵상 본문을 클릭하시면 각 본문에 따라 묵상을 따라 설교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