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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4:13 - 24:35 묵상, 엠마오 도상에서 만난 예수님

케리그마 2025.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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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오 길에서 열린 눈 – 절망에서 소망으로 바뀐 동행의 복음

누가복음 24장 13절부터 35절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두 제자와 함께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동행하신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 본문은 신앙의 여정에 있어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이 어떻게 가장 놀라운 은혜의 자리로 바뀌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복음의 정수라 할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좌절 속에 고개 숙인 제자들에게 다가오시고, 말씀을 풀어주심으로 마음을 뜨겁게 하시며, 떡을 떼는 순간 그들의 눈을 열어 주십니다. 이 본문을 따라가며, 우리도 주님과의 동행 안에서 어떻게 눈이 열리고 삶이 회복되는지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도상에서의 두 제자와 예수님

 

엠마오로 가는 슬픔의 걸음 – 무너진 기대, 멀어진 시선

본문은 안식 후 첫날, 곧 부활의 아침에 일어난 일입니다. 두 제자가 예루살렘에서 약 11킬로미터 떨어진 엠마오로 향하고 있습니다(13절). 예루살렘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장소이며, 동시에 부활의 아침이 선포된 곳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소식을 들었음에도 그 자리를 떠나고 있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지리적 이동이 아니라, 믿음의 중심에서 떠나는 영적 방황의 표현입니다.

두 제자는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14절)고 합니다. 여기서 '이 모든 된 일'이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여인들의 부활 소식까지 포함됩니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슬픔으로 가득했습니다(17절). 이들의 기대는 무너졌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의심으로 바뀌었으며, 마음은 슬픔에 붙들려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과 동행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더라"(16절). 이는 단지 육안의 시력이 아니라, 영적인 통찰력의 닫힘을 의미합니다. 헬라어 'ἐκρατοῦντο(ekratounto)'는 강하게 붙들린 상태를 뜻하며, 그들의 눈이 하나님에 의해 막혀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먼저 말씀을 듣고 마음이 뜨거워진 후에야 눈을 열어주십니다. 이는 믿음이 보는 것이 아니라, 듣고 깨달음에서 시작됨을 강조하는 구조입니다.

 

예수님은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그들이 가진 기대와 실망을 끌어내십니다. 그들은 예수를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21절)로 믿었지만,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후로는 더 이상 메시아로 보기 어려워졌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위대한 선지자요 능력 있는 교사로는 인정했지만, 십자가 위에서 무력하게 죽으신 그분을 더 이상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고난과 실패 앞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향한 신뢰를 흔들립니다. 메시아라면 그렇게 당하실 리 없다는 인간적 판단은 여전히 우리의 믿음을 제한합니다. 엠마오의 제자들은 그날 아침 부활의 소식을 들었지만, 여전히 절망의 언어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실을 들었지만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풀어 주시는 주님 – 마음이 뜨거워지는 자리

그때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책망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25절). 예수님은 그들의 감정이나 처지를 공감하시는 데 그치지 않으시고, 말씀을 통해 그들의 관점을 교정하십니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26절) 하시며, 구속사의 필연성을 강조하십니다.

 

그리고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부터 시작하여 “자기에게 관한 모든 성경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27절). 여기서 '자세히 설명하다'는 "διερμήνευεν(diermēneuō)"라는 단어로, 성경의 뜻을 명확히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역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성경 전체를 통해 자신의 고난과 영광을 설명하심으로, 제자들의 닫힌 마음과 눈을 말씀으로 준비시키십니다.

 

말씀의 풀어짐은 단지 지적 정보 전달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을 뜨겁게 하고, 생각의 전환을 일으키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후에 제자들은 고백합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32절). 믿음은 설명만으로 생기지 않지만, 말씀은 그 믿음이 자라도록 준비시키는 도구입니다. 오늘 우리도 성경을 듣고 읽을 때, 성령의 조명을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 속에 담긴 주님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은 영혼을 깨웁니다. 말씀은 우리 속에 잠든 갈망을 흔들어 깨웁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진리이심을 인정하게 될 때, 비로소 우리의 눈이 열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오늘도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고 계십니다.

 

떡을 떼실 때 열린 눈 – 공동체와 예배 속에서 드러나는 주님의 임재

제자들이 엠마오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은 더 가실 듯 하셨습니다(28절). 그러나 그들은 간청합니다. “우리와 함께 유하소서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29절). 이 장면은 단순한 식사 초대가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과의 교제를 원했고, 그분의 말씀 앞에 마음이 움직였기에 그를 붙잡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요청을 받아들이시고, 함께 식사 자리에 앉으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님은 떡을 들고 축사하시며 떼어 그들에게 주십니다(30절). 이 장면은 주의 만찬을 연상케 하며, 공동체의 예배와 친교의 중심에서 주님이 계심을 드러냅니다. 그 순간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31절). 여기서 ‘눈이 밝아졌다’는 표현은 단지 시각적인 인식의 회복이 아니라, 영적 깨달음의 순간을 가리킵니다.

 

떡을 떼는 행위는 단순한 식사가 아닌, 복음의 상징입니다. 예수님의 찢긴 살과 흘리신 피를 기념하는 성찬의 행위 속에서, 우리는 그분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마음을 뜨겁게 하시고, 떡을 떼며 눈을 열어주십니다. 말씀과 성례, 곧 말씀과 예배의 자리에서 우리는 살아계신 주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예수님은 그들에게서 사라지십니다. 왜일까요? 이는 주님의 부재가 아니라, 새로운 임재 방식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이제는 물리적인 눈으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그분을 보아야 할 때가 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예수님을 따라 예루살렘을 떠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다시 그 중심으로 돌아가야 할 사명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33절), 부활의 증인들과 다시 만나, 자신들이 어떻게 주님을 만났는지를 증언합니다. “길에서… 떡을 떼실 때에 그인 줄 알게 되었느니라”(35절). 엠마오의 여정은 이해하지 못했던 믿음의 실패에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부활의 증언자로 바뀌는 여정이었습니다.

 

결론

누가복음 24장 13절부터 35절까지의 말씀은 믿음의 여정에서 우리도 겪게 되는 실패와 의심, 깨달음과 회복의 여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는 절망 속에 있었지만, 그 길 위에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분은 말씀으로 그들의 마음을 일깨우셨고, 떡을 떼실 때 눈을 열어 주셨으며, 다시금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 본문은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그대로 반복되는 복음의 역사입니다. 우리도 이해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절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전히 말씀 가운데 우리를 찾아오시고, 예배 가운데 눈을 열어 주시며, 다시 복음의 자리로 우리를 돌이키십니다.

 

오늘, 당신의 엠마오 길은 어디입니까? 낙심 속에 주님이 멀리 느껴지십니까? 그렇다면 말씀 앞에 머무르십시오. 마음이 뜨거워지는 그 순간, 주님은 떡을 떼듯 당신에게 자신을 보이실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금 일어나, 주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삶으로 나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엠마오의 여정은 끝이 아니라, 부활의 시작입니다.


매일성경 4월 본문입니다. 일별 묵상 본문을 클릭하시면 각 본문에 따라 묵상을 따라 설교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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