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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1:1 - 2:7 묵상, 신랑과 신부의 고백

케리그마 2025.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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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노래, 신랑과 신부의 고백 – 아가서에 담긴 거룩한 연합의 서곡

아가서 1장 1절부터 2장 7절은 성경 전체 중에서도 가장 감성적이고 시적인 표현으로 가득한 본문입니다. 단순한 연인의 대화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사랑이 은유적으로 녹아 있습니다. 이 본문은 사랑의 갈망, 만남의 환희, 그리고 그 사랑을 지켜가려는 결단을 섬세한 시어로 표현합니다. 본문을 따라가며 우리는 주님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사랑하고, 기다리고, 누릴지를 깊이 있게 살펴보게 됩니다.

사랑의 갈망 – 신부의 고백과 기다림

아가서는 "솔로몬의 아가라"(1:1)는 제목으로 시작되며, 사랑의 시의 저자와 주제를 소개합니다. 이어지는 2절에서 신부는 곧장 자신의 깊은 갈망을 드러냅니다. "그가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입맞춤을 구하는 이 대사는 단지 육체적 친밀감을 넘어서, 인격적 관계의 깊은 사귐을 상징합니다. 히브리어 원어에서 '사랑'으로 번역된 단어는 '도드'로, 감정적 친밀감과 헌신을 포함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포도주는 당시 즐거움과 풍요를 대표하는 상징이었지만, 신부는 그것보다도 신랑의 사랑이 더 귀하다고 말합니다.

신부는 신랑의 이름이 "부어낸 향기름 같고"(1:3), 처녀들이 그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이름은 곧 인격과 명성을 가리키며, 향기로운 기름처럼 주변에 은은히 퍼지는 인격의 향기입니다. 그 사랑에 이끌린 신부는 "왕이 나를 그의 방으로 이끌어 들였도다"라고 노래하며, 단순한 초청을 넘어 깊은 교제의 자리로 인도된 기쁨을 표현합니다.

하지만 신부는 곧 자신의 외모와 처지를 언급합니다.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1:5). 햇볕에 그을린 피부는 포도원 일을 하느라 외부에 노출되어 있었던 그녀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자신은 남들의 눈에 미치지 못할 수 있으나, 신랑의 눈에는 아름다운 존재임을 확신합니다. 이 고백은 우리 신앙인의 정체성과 연결됩니다. 우리는 세상의 기준으로 보잘것없고 연약할 수 있지만, 주님 앞에서는 사랑받는 자로 여김을 받습니다.

신부는 신랑에게 묻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여, 당신이 양 치는 곳과… 정오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말하라”(1:7). 이는 단순한 만남의 요청이 아니라, 그의 임재 가운데 거하고자 하는 열망입니다. 정오, 가장 햇빛이 강하고 피로가 쌓이는 시간에 그와 함께 쉼을 얻고자 하는 이 요청은 영적 삶에서 주님과의 사귐을 갈망하는 성도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사랑의 응답 – 신랑의 시선과 공동체의 기쁨

신랑은 신부의 질문에 다정하게 응답합니다. 그는 그녀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1:9)라 말하며, 고귀하고 존귀한 존재로 여깁니다. 준마는 전쟁에서 왕을 태우는 가장 귀한 말이며, 이는 신부가 단지 사랑받는 존재가 아니라 존귀히 여겨지는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값없고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존귀한 자로 부르시고, 왕의 사랑을 주십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공동체가 이 사랑을 축하합니다. “우리가 너를 위하여 기쁘고 즐거워하리라”(1:4). 이 사랑은 은밀한 것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기뻐하며 함께 나누는 축제입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과의 사랑은 개인적 체험으로 시작되지만, 결국 교회 공동체 안에서 찬송과 감사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신부는 다시 노래합니다.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2:1). 이는 겸손하면서도 자신이 신랑의 사랑 안에 특별한 존재임을 인식하는 표현입니다. 일반 들꽃일지라도 신랑의 눈에는 가장 사랑스러운 꽃입니다. 이에 대해 신랑은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2:2)라고 응답합니다. 주변과 전혀 다른 독보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 장면은 주님의 눈으로 본 성도의 모습을 아름답게 묘사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세상의 무수한 사람들 가운데 구별하시며, 가장 사랑하는 존재로 여기십니다.

신부는 신랑과의 교제를 묘사하며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치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2:4)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깃발'은 승리와 정체성의 상징입니다. 그녀는 신랑의 사랑 안에서 승리했고, 이제는 그 사랑이 자신의 존재 이유가 됩니다. 그리고 신랑의 사랑 앞에서 피곤하고 허약해진 몸을 “건포도로 힘을 돋우고 사과로 나를 시원하게 하라”(2:5)며 호소합니다. 이 고백은 주님의 사랑 앞에 자신을 완전히 노출하며, 위로와 회복을 구하는 진실한 신앙인의 고백입니다.

사랑의 질서 – 기다림과 깨어 있음의 요청

이 장면의 마지막은 매우 인상 깊습니다. “예루살렘 여자들아…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2:7). 이 구절은 아가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경구로, 사랑에는 하나님의 정한 때가 있으며, 그 사랑은 억지로나 성급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교훈합니다. '흔들다'는 말은 강제로 자극하거나 일으키는 행동을 뜻하며, '깨우다'는 것은 시기를 앞당기려는 시도를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신앙 생활에서도 중요한 교훈이 됩니다. 우리는 주님과의 사랑을 누리기 위해 조급하거나 인간적인 방법으로 관계를 조작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은 기다림 속에서 성숙해지고, 인내 속에서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분의 때를 기다리며 사는 것, 그것이 참된 신앙의 태도입니다.

또한 이 경고는 순결에 대한 교훈으로도 읽혀집니다. 육체적 사랑과 정열이 아닌, 영적이고 인격적인 사랑의 완성을 위해 절제와 순결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아가서는 사랑을 미화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랑의 질서와 책임을 강조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기다릴 줄 아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결론

아가서 1장 1절부터 2장 7절까지는 단지 연인의 시가 아닙니다. 이 본문은 우리 영혼이 주님을 사랑하고 갈망하는 과정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신앙의 시입니다. 신부는 자신의 연약함과 수치를 고백하면서도, 신랑의 사랑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사랑의 임재를 갈망합니다. 주님은 그 갈망에 응답하시며, 신부를 존귀한 존재로 여기고, 잔치의 교제로 초대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랑의 질서와 때를 지킬 것을 요청하십니다. 성도는 주님의 사랑을 억지로 얻으려 하지 않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기다리는 사랑, 주님의 이름 앞에 향기로 퍼지고, 공동체 가운데 찬송으로 울려 퍼지며, 마침내 그 사랑이 우리의 깃발이 되고, 존재의 이유가 되는 삶. 그것이 바로 아가서가 그리는 신앙인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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