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5:1-14 묵상, 왕이 금 규를 그에게 내미니
하나님의 시간에 움직이는 용기와 교만의 갈림길
에스더 5:1-14는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고백한 에스더가 마침내 왕 앞에 나아가는 장면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절박한 용기 뒤에서 작동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동시에 자신을 높이다 멸망으로 달려가는 하만의 교만이 날카롭게 대조됩니다. 이 본문은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사람의 마음과 타이밍, 상황을 정교하게 이끌어가시는지를 보여주며, 신자가 언제 말하고 언제 기다려야 하는지를 배우게 합니다.
왕 앞에 선 에스더, 하나님의 은혜를 입다
“제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뜰 곧 왕의 궁 앞에 서니…”(5:1). ‘제삼일’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시간 표시가 아니라, 앞선 3일 금식 기도 후의 믿음의 발걸음을 의미합니다. 에스더는 죽음을 각오하고 왕 앞에 서며, 그녀의 외모나 지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에 기대어 이 자리에 나아갑니다. ‘예복을 입었다’는 것은 단순히 왕후로서의 복장을 말하지만, 동시에 그녀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로서의 자세를 갖추었음을 상징합니다.
왕은 그녀를 보는 순간 은혜를 베풉니다. “왕이 금 규를 그에게 내미니”(5:2). 페르시아의 궁중법에 따르면 부름 없이 왕 앞에 서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이 규례의 벽이 하나님의 은혜로 무너졌습니다. 왕의 금 규는 곧 하나님의 긍휼을 상징하며, 하나님이 지금 이 자리를 열어주고 계심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왕은 에스더에게 묻습니다.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5:3). 이 말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 왕의 호의와 총애가 그녀에게 집중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에스더는 이 기회를 즉시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지혜롭게 상황을 인도하며 “오늘 왕이 하만과 함께 잔치에 오시기를 원하나이다”(5:4)라고 초청합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아래 준비된 자는 성급하지 않다는 것을 배웁니다. 에스더는 서두르지 않습니다. 상황을 읽고, 사람의 마음을 살피며, 하나님이 이끄시는 때에 반응합니다. 이는 단지 전략이 아니라, 믿음의 표현입니다.
기다림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섭리
왕과 하만은 곧바로 잔치에 참석합니다. 왕이 다시 묻습니다.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냐?”(5:6). 하지만 에스더는 또다시 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왕의 은혜를 입었고 왕이 즐거워하시면 내 소원대로 내일도 왕과 하만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겠사오니 그때에 아뢰리이다”(5:8).
에스더는 다시 하루를 연기합니다. 이는 인간적으로 보면 불확실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하루’의 시간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바로 그 밤, 왕은 잠이 오지 않게 될 것이며, 모르드개에 대한 보상이 기록된 역대일기를 읽게 되는 중요한 전환점이 열릴 것입니다(6장 참조). 에스더는 그저 마음에 감동하시는 대로 순종했지만, 하나님의 시간은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이 기다림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신앙의 교훈을 줍니다. 기도했기 때문에 당장 말해야 할 것 같고, 모든 문이 열렸을 때 밀어붙여야만 승리할 것처럼 느껴지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때로 멈추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언제나 정확하며, 우리는 그분의 인도하심에 맞춰 한 걸음씩 걸어가야 합니다.
높아진 마음, 무너질 준비를 마친 하만
이제 장면은 하만에게로 전환됩니다. 하만은 왕과 함께 잔치에 참여하고, 왕후 에스더의 독대 초청까지 받은 사실에 우쭐해져 있습니다. 그는 “그날 하만이 마음이 기뻐 즐거이 나오더니”(5:9)라고 묘사됩니다. 여기서 ‘기뻐하다’는 히브리어 “שָׂמַח”(사마흐)는 활짝 웃고 흥분하는 감정입니다. 그는 권력의 정점에 서 있으며, 왕과 왕후 모두에게 총애를 받는다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한 사람, 모르드개 앞에서 무너져 내립니다. “하만이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있고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몸을 움직이지도 아니하는 것을 보고”(5:9). 하만의 교만은 자신에게 절하지 않는 모르드개의 모습 하나로 인해 완전히 깨어집니다. 이것은 교만한 자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아무리 큰 영광을 얻어도, 한 가지 모욕 앞에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이기심과 미움, 그리고 자기 숭배의 본성입니다.
하만은 집으로 돌아가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자기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를 불러 그에게 자랑하여 이르되… 왕이 나 말고는 아무도 왕후 에스더와 함께 잔치에 참여하게 하지 아니하였고, 내일도 내가 왕후와 함께 잔치에 초대되었느니라”(5:10-12). 여기서 그는 자신의 권세, 부, 자녀들, 명예, 그리고 왕후의 초청까지도 자랑거리로 나열합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이 그의 내면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은 것을 보는 동안에는 이 모든 일이 내게 만족하지 아니하도다”(5:13). 하만은 모든 것을 가졌지만,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한 사람 앞에서 분노로 이성을 잃어갑니다.
그의 아내와 친구들은 조언합니다. “높이가 오십 규빗 되는 나무를 세우고 내일 왕에게 모르드개를 그 나무에 매달기를 구하라”(5:14). ‘오십 규빗’은 약 23미터에 해당하는 높이로, 보여주기 위한 과장된 죽음의 상징입니다. 하만은 단지 모르드개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 앞에 그의 권위를 과시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계획은 곧 하나님의 반전의 무대가 될 것입니다. 하만이 준비한 나무는 결국 그의 심판을 위한 도구로 바뀌게 됩니다.
결론
에스더 5:1-14는 두 가지 길이 동시에 펼쳐지는 장면입니다. 한쪽에서는 죽음을 각오하고 믿음으로 왕 앞에 선 에스더의 조심스러운 걸음이 있으며, 다른 한쪽에서는 자신을 높이며 분노로 눈이 먼 하만의 교만한 길이 있습니다. 이 둘은 겉보기에 한 공간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목적지로 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타이밍을 하나님께 맡기며, 때로 말하지 않는 것도 순종이라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반대로, 교만한 자는 자신이 쌓은 높음 속에서 미련하게 파멸을 준비합니다. 에스더는 섬세한 믿음의 순종으로 한 민족의 구원의 서막을 열고 있으며, 하만은 스스로 높아져 더 큰 심판을 예비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 이 두 사람 중 누구의 길을 따르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순종의 타이밍을 기다리는 신앙입니까? 아니면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는 것 같아도 교만한 욕심과 인정 욕구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은 아닙니까?
하나님의 섭리는 지금도 정밀하게 움직이고 있으며, 그 가운데 쓰임 받을 자는 말보다 무릎으로 준비된 자입니다. 오늘 우리의 작은 선택과 지체가 하나님의 큰 계획에 연결되어 있음을 믿고, 그분의 때에 맞춰 믿음으로 걸어가기를 소망합니다. 에스더처럼, 조용히 그러나 담대히 하나님의 시간 속으로 나아가는 신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매일성경 5월 본문입니다. 일별 묵상 본문을 클릭하시면 각 본문에 따라 묵상을 따라 설교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매일 말씀 묵상을 통해 은혜로운 5월 보내시기 바랍니다.
'성경토픽 > 매일성경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스더 4:1-17 묵상, 죽으면 죽으리이다 (0) | 2025.05.01 |
---|---|
에스더 3:7-15 묵상, 하만의 계략 (0) | 2025.05.01 |
에스더 2:19-3:6 묵상 문지기 모르드개 (0) | 2025.05.01 |
에스더 2:1-18 묵상, 새로운 왕후를 뽑다 (0) | 2025.05.01 |
에스더 1:1-22 묵상 왕후 와스디를 폐하다 (0) | 2025.05.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