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9:1 - 9:19 묵상, 유다인의 반격
역전의 날, 공의가 실현되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에스더서 9장 1절부터 19절까지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백성을 위해 심판과 구원을 동시에 이루시는지를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이 본문은 유다 민족에게 내려졌던 죽음의 선고가 뒤집히고, 오히려 원수들이 심판을 받는 역전의 날을 보여줍니다. 이는 단지 고대 유다인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구속사 속에서 하나님이 악을 심판하시고 의인을 높이시는 궁극적인 주권을 선언하시는 장면입니다. 우리가 이 본문을 깊이 들여다볼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정의를 실현하시며,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정한 날, 역사가 반전되다(에스더 9:1)
“아달월 곧 열두째 달 십삼일은 왕의 명령과 조서가 시행되게 된 날이라 유다인의 대적들이 그들을 제거하기를 바랐으나 도리어 유다인이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들을 제거하게 된 그 날이라”(에스더 9:1). 본문은 시간의 명확한 지점을 제시하며 시작합니다. 아달월 13일은 하만이 유다인을 진멸하겠다고 조서를 내린 바로 그 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날을 유다인의 승리로 바꾸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반전’이라는 주제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반전 드라마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요셉은 노예에서 총리가 되었고, 다윗은 목동에서 왕이 되었으며,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부활하셔서 만왕의 왕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인간의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며, 마침내 그분의 공의와 은혜가 완전히 드러나는 방식으로 완성됩니다.
이 날은 단순한 전쟁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은혜의 날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서 우리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악이 득세하고, 의인이 눌리는 때가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정확한 날과 시간을 정하시고 반드시 공의를 이루십니다.
자기 방어가 아닌 하나님의 정의(에스더 9:2~5)
“유다인들이 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에 모여 자기들을 해하려 한 자를 죽이려 하매… 각 지방 모든 족속이 유다인을 두려워하므로 능히 대적하지 못하였으니… 유다인이 모든 대적을 칼로 쳐서 도륙하고 진멸하고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에게 마음대로 행하고”(에스더 9:2~5). 이 구절을 읽을 때, 우리는 마치 유다인이 복수의 칼을 휘두른 듯한 인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전투는 단순한 감정적 복수나 민족적 폭력이 아닙니다. 이는 방어적 전쟁이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정의의 실현입니다.
본문은 유다인들이 그들의 대적을 ‘진멸’했다고 말하지만, 이 진멸은 그들이 먼저 공격받았기 때문에 행해진 자기 보호적 행위였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유다인이 그 원수들의 재물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에스더 9:10, 15, 16). 이는 단순한 탐욕이나 정복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 실현을 위한 정결한 행동임을 보여줍니다.
성도 여러분, 이 시대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가 무너지는 것 같은 현실 속에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라, 어둠의 세력에 대한 영적인 전투입니다(에베소서 6:12). 그 싸움 속에서 우리는 복수의 정서를 품지 말고,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는 도구로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하만의 아들들과의 전쟁(에스더 9:6~10)
수산 성에서는 유다인이 500명을 도륙하고, 하만의 열 아들도 죽입니다. 그리고 거듭 강조됩니다.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에스더 9:10). 하만의 아들들은 단순히 정치적인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만의 사상과 악의 유산을 계승하려 한 자들입니다. 그들을 제거한 것은 한 가정의 멸망을 의미하기보다는, 악한 계보의 단절을 상징합니다.
성경에는 계보가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계보를 통해 언약을 이어가셨고, 사탄은 그 계보를 끊기 위해 여러 방면에서 공격해왔습니다. 하만의 열 아들의 죽음은 단지 피의 심판이 아니라, 언약의 백성을 대적하는 모든 어둠의 혈통을 하나님께서 끊으시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나 영적인 계보를 이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다음 세대가 믿음 안에 거하고, 악한 사상의 유산이 우리 가정과 공동체에 남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오늘날의 싸움입니다. 하만의 아들들이 몰락했듯이, 교만과 불의의 계보는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두 번의 전투, 한 번의 기쁨(에스더 9:11~19)
왕은 수산 성에서의 전투 보고를 받고, 에스더에게 다시 묻습니다. “왕후여 당신의 소청이 무엇이며, 또 무엇을 구하나이까”(에스더 9:12). 이에 에스더는 수산 성에 하루 더 유다인이 대적들을 제거하도록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이로써 수산에서는 이틀 연속 전투가 벌어지고, 그 결과는 승리로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성 밖과 다른 지방의 유다인들은 13일에 싸우고 14일에 안식하며 잔치를 벌였고, 수산 성의 유다인들은 14일까지 싸운 뒤 15일에 안식하며 즐겼습니다(에스더 9:17~19).
여기서 우리는 전투의 반복이 왜 필요한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수산은 왕궁이 있는 중심지이며, 하만의 영향력이 뿌리 깊던 곳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 악의 잔재를 철저히 제거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 삶 속에서 죄의 뿌리와 정욕의 잔재를 제거하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어떤 죄는 하루 만에 뽑혀나가기도 하지만, 어떤 어둠은 이틀, 삼일, 아니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안식’과 ‘기쁨’이 허락됩니다.
성도 여러분, 구원의 완성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이지만, 성화의 과정은 반복적인 전투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붙들며 진행되는 여정입니다. 에스더서의 이 마지막 전투는 우리에게 이 진리를 가르쳐줍니다. 기쁨은 결국 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결코 어둠에 머물지 않으며, 반드시 잔치의 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결론 정리
사랑하는 여러분, 에스더서 9장 1절부터 19절은 인간의 계획과 억압의 시도 속에서도 하나님이 어떻게 공의를 실현하시며, 그분의 백성을 영화롭게 하시는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줍니다. 하만의 음모는 실패로 돌아갔고, 유다 민족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수치에서 존귀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그 승리는 개인의 영광이 아닌 공동체의 기쁨, 잔치, 연대의 자리로 열매 맺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다음과 같은 교훈을 새길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때는 반드시 오며, 그 때는 공의가 실현되는 순간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백성은 정의와 절제 사이에서 균형 있는 삶을 살아야 하며, 복수의 감정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셋째, 싸움은 반복될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 끝에 기쁨을 예비하시는 분이십니다. 넷째, 악의 계보는 끊어지고, 은혜의 계보는 계속되어야 하며, 우리도 그 계보의 책임을 지닌 자들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받은 이 구속의 복음은 단지 과거 유다 민족의 승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를 위한 복음입니다. 죽음의 명령을 뒤엎는 하나님의 새 조서, 하늘로부터 온 생명의 복음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주님의 승리를 붙들고, 그 기쁨 안에서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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