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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6:1–11 강해 설교

케리그마 2025.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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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대접 심판과 회개 없는 인류의 완악함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심판이 마침내 땅에 쏟아집니다. 그러나 이 심판은 성도에게는 두려움이 아니라 위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 가운데 선포되며, 모든 악이 숨지 못하고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주님께서 오래 참으신 끝에 베푸시는 마지막 경고의 장면 앞에 서 있습니다. 심판은 파멸이 아니라 정결을 위한 불이며, 회개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두려움 대신 믿음의 담대함과 경건한 두려움으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첫째 대접, 악하고 독한 종기 (요한계시록 16:1–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하나님의 일곱 대접 심판이 실질적으로 시작됩니다. 이는 단지 환상이나 상징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진노가 인류의 역사 가운데 구체적으로 임하는 사건입니다.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16:1).

이 말씀에서 ‘큰 음성’(φωνὴ μεγάλη, phōnē megalē)은 하나님 보좌로부터 직접 명령이 떨어졌음을 나타냅니다. 더 이상 유예되지 않고,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대접이 땅에 쏟아지자,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ἕλκος κακὸν καὶ πονηρόν, helkos kakon kai ponēron)가 생깁니다 (요한계시록 16:2). 여기서 ‘종기’는 출애굽기의 여섯 번째 재앙을 떠올리게 하며(출 9:10–11), 이 재앙이 단순한 질병이 아닌 도덕적 타락과 영적 우상의 결과임을 상징합니다. ‘카콘’(kakon)은 내적 부패를, ‘포네론’(ponēron)은 해악적이고 파괴적인 특성을 강조합니다.

이 종기는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에게만 임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무차별이 아니라, 명확한 영적 경계선을 따라 임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입니다.

둘째와 셋째 대접, 바다와 강이 피로 변함 (요한계시록 16:3–7)

둘째 천사가 대접을 바다에 쏟자, “바다가 죽은 자의 피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요한계시록 16:3). 여기서 바다는 인류 문명과 경제의 생명줄이며, 창조 세계의 거대한 부분입니다. 그것이 완전히 피로 변하고, 그 안의 모든 생명이 죽는다는 것은 창조 자체가 하나님의 진노로 흔들리고 있음을 말합니다.

이 ‘피’는 단순한 붉은 액체가 아닙니다. 이는 살육과 부패, 정의롭지 못한 피흘림에 대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응답입니다. 셋째 천사가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았을 때도, 그것들이 피가 됩니다 (요한계시록 16:4).

그리고 요한은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기록합니다.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주께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요한계시록 16:5–6). 이 구절에서 ‘의롭다’는 헬라어 ‘δίκαιος’(dikaios)는 단지 공정하다는 뜻을 넘어서, 하나님의 본성에서 나오는 불변의 정의를 뜻합니다.

하늘 제단에서 응답하듯 또 하나의 음성이 들립니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요한계시록 16:7). 이는 성도들의 고통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며, 그 고난이 결코 잊히지 않았음을 선포하는 구속사의 선언입니다.

넷째 대접, 해의 불이 사람을 태움 (요한계시록 16:8–9)

넷째 천사는 해에 대접을 쏟습니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요한계시록 16:8–9).

이 재앙은 우리가 아는 자연 법칙이 더 이상 유지되지 않는 상황을 말합니다. 해(ἥλιος, hēlios)는 창조 질서 속에서 생명을 유지하는 존재이지만, 이제 그 기능이 변형되어 심판의 도구가 됩니다. 태양은 그 빛으로 생명을 살리던 존재에서, 심판의 불길로 바뀐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고통 앞에서도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또 회개하지 아니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더라” (요한계시록 16:9). 이 구절은 종말의 악은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의지적인 반역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고통이 회개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자기 중심성과 완악함은 얼마든지 강화될 수 있습니다.

다섯째 대접, 짐승의 왕좌에 쏟아진 어둠 (요한계시록 16:10–11)

다섯 번째 천사는 짐승의 보좌에 대접을 쏟습니다.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종기로 말미암아 하늘의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요한계시록 16:10–11).

여기서 ‘어두워졌다’는 표현은 단순한 빛의 상실이 아니라, 영적 질서의 해체를 뜻합니다. ‘보좌’(θρόνος, thronos)는 통치의 중심이며, 하나님의 권위를 대적하던 악의 권세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상징입니다. 그곳에 드리워진 어둠은 애굽의 흑암 재앙(출 10:21–23)과 연결되며, 우상적 권력의 무능과 공포를 드러냅니다.

사람들은 혀를 깨물 만큼 고통을 겪지만, 여전히 회개하지 않습니다. 회개는 단순한 두려움에서 비롯되지 않으며, 성령의 조명 없이는 사람은 심판 앞에서도 하나님을 비방할 뿐입니다. ‘비방하다’(βλασφημέω, blasphēmeō)는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는 의지적 모독을 의미합니다. 죄인의 본성은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며,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이 이 본문이 보여주는 통찰입니다.

결론 정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계시록 16장 1절부터 11절까지의 본문은 우리가 인류의 마지막을 바라보며 느끼게 되는 막연한 두려움을 깨트리고, 거룩한 질서와 공의가 어떻게 하나님의 손에서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무차별이 아니며, 감정적인 폭력도 아닙니다. 그것은 오래 참으신 사랑의 거절에 대한, 창조주께서 가지시는 정의로운 반응입니다. 종기의 재앙이, 바다와 강의 피가, 타는 해와 무너지는 보좌가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은 회개할 시간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을 붙들어야 할 은혜의 시기라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마음은 심판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비방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말씀 앞에 서는 자는 이 심판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의로움을 찬송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 마음의 우상을 버리고, 짐승의 표가 아닌 어린 양의 이름을 이마에 새긴 자로 살아가기를 결단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면 심판의 대접이 쏟아질 때에도, 우리는 유리 바다 위에서 거문고를 들고 찬양하는 자로 서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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