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6:12–21 강해 설교
아마겟돈의 전야, 무너지는 거짓 권세와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왕국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마침내 모든 악의 세력을 향해 마지막 대접을 쏟으십니다. 그러나 이 심판의 순간에도 주님은 자기 백성을 기억하시며, 거짓 권세는 무너지고 하나님의 나라는 완전하게 임합니다. 혼돈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은 질서 있게 성취되고 있으며, 심판은 끝이 아니라 구속의 마침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심판의 두려움을 넘어서, 하나님의 공의와 신실하심을 찬송하는 믿음의 눈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여섯째 대접, 유브라데 강이 마르다 (요한계시록 16:12)
요한은 여섯째 천사가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는 것을 봅니다. “그 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더라” (요한계시록 16:12). 유브라데 강은 구약에서도 이방 세력의 경계이자 위협으로 자주 언급되며(사 8:7), 여기서 ‘물이 마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심판의 무대가 준비되고 있다는 상징입니다.
‘마르다’는 헬라어 ‘ἐξηράνθη’(exēranthē)로서, 자연스러운 고갈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의도적으로 통제된 사건임을 나타냅니다. 동방에서 오는 왕들은 단지 지리적 세력만이 아니라, 악한 연합군 전체를 의미하며, 그들의 길이 열리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 계획이 시간 안에 성취되어 간다는 뜻입니다.
세 영의 거짓 기적과 아마겟돈 전쟁 (요한계시록 16:13–16)
그 다음 요한은 입에서 개구리 같은 더러운 영들이 나오는 장면을 봅니다.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새 영이 나오니 개구리 같더라” (요한계시록 16:13). 이 영들은 ‘귀신의 영’(πνεύματα δαιμονίων, pneumata daimoniōn)이며, ‘이적을 행하는 자들’로 묘사됩니다. 이들은 땅과 온 세계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과의 전쟁에 동원합니다 (요한계시록 16:14).
이 개구리 같은 영은 출애굽기의 개구리 재앙(출 8:1–15)을 떠오르게 하며, 우상을 섬기는 나라에 내리는 영적 혼란과 부정함을 상징합니다. ‘거짓 기적’은 참된 기적을 흉내 내지만, 그 목적은 회개가 아니라 미혹입니다.
그리고 아마겟돈이라는 전쟁터가 등장합니다.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요한계시록 16:16). 아마겟돈(Ἁρ Μαγεδών, Har-Magedōn)은 문자적 지명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최종적 승리가 선포될 종말론적 전쟁터를 상징합니다. 구약의 므깃도 골짜기는 수많은 전쟁이 있었던 곳으로, 이 상징은 인류 역사의 절정에서 벌어질 진리와 거짓,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의 권세 간의 충돌을 가리킵니다.
이 전쟁은 전투가 아니라 심판이며, 하나님께서 직접 악을 소멸하시는 주권적 개입입니다. 성도는 이 전쟁에 참여하는 자가 아니라, 주님의 승리를 찬송하는 증인이 됩니다.
일곱째 대접, 하늘에서 내려진 음성과 지진 (요한계시록 16:17–18)
일곱 번째 천사가 대접을 공중에 쏟자, “보좌로부터 ‘되었다’ 하는 큰 음성이 나더라” (요한계시록 16:17). 여기서 ‘되었다’(Γέγονεν, Gegonen)는 헬라어 완료형으로, 하나님의 계획이 더 이상 지연되지 않고 완성되었음을 선포하는 선언입니다.
이 선언은 창조의 ‘있으라’와 대조되는 종말의 ‘되었다’입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말씀으로 시작되었다면, 심판은 이 말씀으로 마무리됩니다.
곧이어 “번개와 음성과 우레가 있고 큰 지진이 있어 사람이 땅에 있어 오므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요한계시록 16:18). 지진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현현을 상징하는 대표적 현상입니다(출 19:18, 마 27:51). 이 지진은 단순한 자연 재앙이 아니라, 우주적 규모의 질서 재편, 곧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도래를 의미합니다.
큰 성 바벨론의 무너짐과 하나님의 진노 (요한계시록 16:19–21)
지진의 결과로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졌다’고 말합니다.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되었으니 하나님께서 자기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그 성에 주셨더라” (요한계시록 16:19).
바벨론은 요한계시록 전반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미혹하고 핍박하는 거짓된 문명의 총체를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억하신다’는 것은 심판의 유보가 끝났다는 뜻입니다. 이 표현은 종종 구속의 맥락에서 사용되지만(창 8:1), 여기서는 정의를 위한 기억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οἶνος τοῦ θυμοῦ, oinos tou thymou)는 앞서 예고된 대로(14:10) 이제 바벨론에게 완전히 부어집니다. 그들이 쌓아올린 영광과 권세는 하나님의 거룩한 손에 의해 산산이 무너집니다.
이제 무게 약 한 달란트 되는 ‘우박’이 하늘에서 떨어집니다 (요한계시록 16:21). 이는 출애굽기의 일곱 번째 재앙과 연결되며, 하나님의 형벌이 하늘로부터 내리는 절대적인 심판임을 상징합니다. 한 달란트는 약 34~45kg에 해당되며, 상징적 무게를 통해 피할 수 없는 파괴를 드러냅니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그 심판 앞에서도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비방합니다. 이들은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의 고통을 이유로 하나님을 모독합니다. 인간의 완악함은 외적인 고난이 아니라, 내적인 영적 죽음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깊이 기억해야 합니다.
결론 정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계시록 16장 후반부는 인류 역사 전체가 향하고 있는 결정적 종말의 순간을 보여줍니다. 유브라데 강이 마르고, 개구리 같은 영들이 모이며, 아마겟돈이라는 전쟁터가 준비됩니다. 그러나 이 모든 혼란은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전개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눈앞의 전쟁이 아니라, 그 모든 전쟁의 끝에서 선포될 “되었다”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 음성은 패배의 선고가 아니라, 완성의 선언이며, 심판의 절정이자 구속의 결말입니다.
바벨론은 무너지고, 땅은 갈라지며, 하늘에서는 우박이 떨어지지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여전히 서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비방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찬양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 앞에 서서 경건한 두려움과 흔들리지 않는 소망으로 다시 결단해야 합니다. 주님의 날은 임하고 있으며, 그 날을 준비하는 자는 이미 아마겟돈의 전쟁터에서 승리한 자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육에 있지 않고, 찬양과 믿음과 거룩한 인내에 있음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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