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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오경 강해/창세기강해

창세기 17장 강해

by 케리그마 2023.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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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7장 개요

아브람이 99세가 되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람을 찾아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축복하시고,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시기로 하고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도록 할례언약을 맺으십니다. 사래를 사라로 바꾸시고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모든 가족이 할례를 행합니다.

 

창세기 17장 설교

 

구십구 세에 나타나신 하나님

 

하갈이 이스마엘을 때 아브람의 나이는 86세였습니다. 그로 13년이 흘러 지금은 99세가 되었습니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에 이삭이 태어난 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아직 모릅니다. 생각해 봅니다. 13년 동안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지 않았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나타났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성경에 기록한 필요가 없어 기록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역으로 생각하면, 아브람이 이스마엘을 낳고 지금까지 지나온 시간은 중요하지만 무의미한 시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학자는 이 시간을 '아브라함의 잃어버린 시간'이라 말합니다. 아브라함을 이스마엘을 낳고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언약을 성취한 것으로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이스마엘을 보면 정말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마엘은 아니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린 때로 아브라함처럼 특별히 말씀에 어긋나지 않고 죄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일 수 있다고 라고 생각해 버릴 수 있습니다. 아니면, 굳이 다른 아이가 필요해? 이스마엘로 충분한 것 같은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 주저앉고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해 버릴 수 있다는 것이죠.

 

길었던 시간, 하지만 이제 때가 되어 하나님은 아브람을 찾아오십니다. 사람의 때와 하나님의 때는 분명히 다릅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자 아브람을 찾아 오셨습니다.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돼라

 

하나님은 아브람에 완전함을 요구하십니다.(2절) 그 완전함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문맥을 통해 추측해 본다면 인간의 불완전한 이해와 추측에 근거하지 말고 언약의 말씀에 근거하여 생각하고 생활하라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너의 모든 기준은 너의 생각이나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에 두라는 것이죠.

 

하나님은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아브람은 '큰 아비지'이며, '아브라함'은 '많은 무리의 아버지'란 뜻입니다.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이름이지만, 작은 차이는 아닙니다. 홀로 큰 존재가 아니라 모든 민족의 기원이 되는 존재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이름의 변경은 아브라함의 사명의 치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 갈라디아서 3: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다 할례를 받으라

 

하나님은 언약을 주신 다음 아브라함에 아브라함에 속한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도록 하십니다. 할례를 통하여 자신의 살의 일부가 잘리고, 피를 흘림으로 죽고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할례를 세상과의 구별이자 단절이며 죽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할례를 이스라엘 백성들만 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상당히 많은 국가들이 할례를 행했습니다. 할례 자체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할례를 명하신 하나님의 언약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웃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래를 사라로 부르도록 합니다. '사래'는 '나의 공주'라는 뜻이고, '사라'는 공주라는 뜻입니다. 이름이 객관화된 것처럼 보입니다. 누군가의 공주가 아니라, 모든 민족과 열방들의 공주이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그렇든 사라도 이제 '자신'의 좁은 한계를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능력을 작고 초라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끝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에서 열국의 어머니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라에게 아이가 있을 것이라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웃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도발적으로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18절)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도 연약한 인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년'(21절)에 사라에게 찾아올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보다 훨씬 위대하시고 뛰어나십니다. 우리는 상황과 한계에 갇히지만 하나님은 갇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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